[아시아엔 플라자] 1박2일 예산기행
“예산하면 사과, 추사고택 정도 밖에 떠오르지 않아요.”
“예산 처음이신가 봐요? 곧 도착하는 예당저수지부터 대흥 슬로우시티, 황새마을, 의좋은 형제공원, 수덕사, 임존성,?가야산, 삽교평야 등 중부권에선 알아주는 명소가 예산에 다 있어요” 아시아기자협회와 아시아엔(The AsiaN)?일행을 맞이한 예산군?녹색관광과 이혜정씨의 설명이다. 주니어 아자 외국인?유학생 등 협회 일행은 10~11일 충절의 고장 예산군을 다녀왔다.
예산은 충남 북서부지역 중간에 위치해 동쪽과 북동쪽으로 천안시와 아산시가 있고 남동쪽에는 공주시와 대전광역시, 서쪽과 남서쪽에는 홍성군과 보령시가 각각 자리 잡고 있다. 이씨와 함께 마중 나온 채수근 계장은 “무한천과 삽교천이 지역을 감싸 흐르고 명산인 가야산과 덕숭산이 높아 솟아 있으며 기름진 예당평야가 펼쳐져 아름다운 지형을 갖춘 곳이 예산”이라고 말했다.
일행이 처음?방문한 곳은 예화여고. 여학생들이 정성껏 심고 가꾼 야생화 수백점을 전시중이라고 했다.?‘우리들, 우리꽃 이야기’라는 주제로 열린 이번 전시회는 지난 2009년부터 시작해 올해로 5회째를 맞고 있다.?전시회에는 학생들이 손수 기른 범부채, 금낭화, 매발톱 등 다양한 품종의 야생화를 비롯해?애호가들이 소장하고 있는 진귀한 야생화 작품들도 선보여?눈길을 끌었다. 관람을 마친 사람들에겐 채송화 등 야생화를 선물해 직접 키울 수 있는 기회도 선사했다.
예화여고를 나와?예당저수지 향했다. 어스름이 내려앉은 저수지는 깊고 넓었다. 국내 최대 인공 저수지란다. 여의도 면적의 3.7배에 달해 바다로 착각이 들 정도다. 행정구역상 예산에 있지만 당진 논밭에도 물을 대주는 예당저수지다.
저주지 인근?돌고래식당서 고소한?메기 민물새우 매운탕으로 저녁을 해결한 후?10분 정도 차를 타고 가니 대흥 슬로우시티가 나왔다. 대흥 슬로우시티는 세계 슬로시티협회가 121번째로 지정한 곳이며 국내서는 6번째다. 이 곳의 교촌한옥서 하루를 묵기로 했다.
어둑해진 논밭에 헤드라이트가 비치자 개구리 울음소리가 요란하다. 좁은 도로를 굽이굽이 지나 드디어 한옥 도착. 앞마당에 붉은 빛깔 겹벚꽃이 가로등 불빛에 환하다.?집 주인인 현종식 예산 대흥슬로시티협의회 부회장은 ?“할아버지께서 살던 집을 원형 그대로 복원했다”고 설명했다. 마루는 오랜 세월의 흔적이 묻어났다. 아궁이엔 장작이 쌓여있다. 보일러 선을 깔지 않고 옛 방식을 그대로 고수했다.
현 부회장의?말에 따르면 교촌한옥은 백제시대 축조한 이름 모를 사찰터의 기단석 위에 춘향목으로 지은 정교한 건축물이다. 1996년에는 금동보살입상이 출토되기도 했다. 안방, 사랑방, 별채 등으로 구성됐다. 독채를 하루 빌리는데 40만원. 집주인은 “돌맹이 하나라도 선조의 숨결을 간직하는 마음으로 복원했고 생태체험코스, 힐링체험코스 등을 만들 계획”이라고 했다.
방문객을 환대해주기 위해 늦은 저녁?최승우 예산군수가 직접 찾았다. 최 군수는 유학생들에게 추사의 세한도가 새겨진 명함집과 예산 사과와 쌀로 빚은 막걸리를 대접하며 “황새의 도시 예산에 온 것을 환영한다”고 말했다. 2009년 6월 문화재청은 멸종됐던 황새복원대상지로 예산을 선택했다. 올해 말을 목표로 예산군 광시면 대리 일원에 13만6958㎡ 규모로 황새복원 핵심시설을 조성하고 있다.
늦은 밤 이병효 <아시아엔> 칼럼리스트겸 <오늘의 코멘터리> 대표의 ‘근대사 강연’이 이어졌다. 에티오피아, 벨기에, 중국, 멕시코, 이집트, 미국에서 온 유학생들은 진지한 모습으로 듣고 고개를 끄덕였다. 이병효 대표는 한국이 대기업을 통해 압축성장이 가능했던 이유, 군부독재, 민주화 항쟁 등에 대해 일목요연하게 설명했다. 특히 강원대에서 박사과정을 밟고 있는 멕시칸 사울은 “멕시코의?발전모델로 한국을 공부하고 있는데, 오늘 강연을 통해 한국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힐 수 있었다”고 소감을 전했다.??
이튿날 이른 아침, 산책 겸 100m 거리에 있는 대흥항교로 향했다. 대흥항교는 조선 태종 5년 처음 지은 것으로 전해진다. 1997년 12월 충남기념물 제136호 지정됐다. 향교는 조선 초기부터 공자를 비롯해 여러 성현께 제사를 지내고 인근 마을의 교육을 위해 나라에서 세운 교육기관이다.
향교는 문이 닫혀 있는 날이 많다. 이날은 향교 제례의식이 있는 날이다. 1년에 두 번 있는 제사에 맞춰 왔으니 운이 아주 좋다. 향교의 어른들은 의식을 거행하기 위한 준비로 분주했다. 공자를 모신 명륜당을 중심으로 한국 유교의 대학자들 초상이 걸린 방이 양쪽에 자리 잡고 있다.
향교 앞, 은행나무와 느티나무 잎사귀가 얽힌 거대한 나무 한 그루가 눈에 들어왔다. 느티나무가 은행나무 중간에 뿌리를 내렸다. 은행나무 잎은 앙상했고, 느티나무 잎은 생생했다. 젊은 느티가 늙은 은행의 기를 모두 빨아먹는 듯 했다. 인근의 한 주민이 “마을 사람 중에 은행나무가 죽기 전 느티나무를 잘라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고 전했다.
한옥으로 돌아가니 관광과 직원들이 와 있다. 의좋은 형제 공원서 장터가 열리니 거기부터 가보자고 했다. 예산은 의좋은 형제의 고향이다.
이곳에서 만난 향토문화 해설사는 “옛 초등학교 교과서에 실린 ‘의좋은 형제’이야기는 예산의 실존인물인 이성만, 이순 형제의 실화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형은 아우를 걱정하고 아우는 형을 걱정해 밤중에 볏단을 몰래 날라다 쌓아주었다는 내용이다. 조선조 예산에서 호장을 지낸 이성만과 이순 형제가 나눈 형제애가 백성들에게 귀감이 된다고 해 연산조 3년에 우애비를 건립했고, 1956~2000년 초등학교 교과서에 수록됐다.
장터는 뻥튀기 소리와 물건을 구경하러 온 사람들의 발걸음으로 흥겨웠다. 소쿠리에 담긴 작고 깨끗한 계란, 손수 담근 간장, 땅콩, 깨 등 농산물, 짚으로 엮은 바구니들 하나하나가 모두 정겹다. 금강산도 식후경. 허기를 채우기 위해 장터 한 곳에 마련된 천막 식당으로 들어갔다. 예산의 작물로 만든 손두부와 빈대떡의 맛이란. 또 원조 장터국수는.
요기를 채운 후 들른 곳은 대흥면사무소(면장 민태형)?옆에 자리한 동헌. 향토해설사 말에 의하면 1970년대까지는 동헌에서 실제 행정업무를 봤다고 한다. 이곳은 전원드라마 ‘산 넘어 남촌’의 세트장으로 사용되기도 했다. 해설사는 벚꽃 피는 시기만 되면 전국의 사진가들이 세트장의 벚꽃을 찍기 위해 몰려든다고 귀뜸했다.
오전 10시30분. 다시 대흥항교로 발걸음을 옮겼다. 제례의식을 참관하기 위해서다. 최승우 군수를 비롯해 고장의 어른들이 공자부터 여러 대학자들의 제사의식을 거행 중이었다. 함께한 유학생들은 모든 게 신기하다. 중국 산둥반도서 온 유학생 신링은 공자의 위패가 이곳에서도 진열된 모습에 뿌듯한 모습이다. 언제 끝날지 모르는 반복되는 절에 힘들기도 할 텐데, 잘 따라한다. 이집트에서 온 호쌤 무함마드는 모든 의식이 끝난 뒤 의복을 빌려 사진을 찍기도 했다.
향교를 나와 이번 기행의 마지막 장소인 수덕사로 향했다. 석가탄신일을 앞둔 수덕사는 불자, 관광객들로 북적였다. 수덕사는 예산군 덕산면 사천리 덕숭산에 있는 사찰이다. 백제 15대 침류왕 2년(358년)에 수덕각시라는 관음 화신이 중생 제도를 위해 창건했다는 전설을 지녔다. 700년 역사를 자랑하는 국보 제49호인 대웅전은 척 보기에는 위엄을 풍긴다. 산 위에는 비구(남자 중)가 거처하는 정혜사가 있으며, 서쪽에 비구니(여자 중)가 사는 총림이 있다. 관음 바위, 미륵 석불, 만공탑, 전원사 등이 있다. 특히 담징이 그린 대웅전 벽화가 유명하다. 이응로 화백과 나혜석, 일엽스님, 박귀희(이응로 화백의 부인)의 애절한 삶의 이야기가 살아있는 수덕여관도 꼭 들려야 하는 명소다.
예산에는 서두에 관광부서 직원이 말했듯 이들 장소 외 가봐야 할 곳이 많다. 매헌 윤봉길 의사의 충의사, 망국의 설움 간직한 백제 부흥군의 거점 임존성, 추사고택, 삽교평야 등. 이 고장 출신 이종상 서울대 미대 명예교수는 예산을 “근대 양복 패션의 메카, 정보통신의 발원지”라고도 말한다. 알면 알수록?더 궁금해지는 예산. 다음을 기약하며 서울행 차에 올랐다.
PS. 이종상 교수의 예산 예찬은 6월25일 창간하는?월간지 매거진N을 통해?만나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