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군 장성 142명, 6·25전쟁에 자식 내보냈다”
최승우 예산군수, 15년째 사재 털어 미 참전용사 보은행사
‘바람의 딸’ 한비야씨는 최승우(72·육사21기) 예산군수를 ‘영원한 청년’ ‘자유로운 영혼’이라고 부른다. 최 군수는 항상 최선을 다하고 자신을 낮춘다. 그가 15년째 해마다 6~7월 미국 각 도시와 보훈병원을 돌며 6·25 참전용사 ‘보은행사’를 벌여온 사실은 세상에 거의 알려지지 않았다. 최 군수는 “목숨 바쳐 나라를 구해준 분들께 감사하는 일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라고 했다.
올해는 7월13일 미국 워싱턴 앨링턴 국립묘지 밴플리트 장군과 밴플리트 2세 묘소를 찾아 참배했다. 이어 14일 오후 1시 버지니아 해거스타운 아메리칸 리전 홀에서 워싱턴DC, 버지니아주, 메릴랜드주 출신 참전용사와 가족·친지 등 3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참전용사들에게 기념메달을 걸어주었다. 그리고 예년처럼 짧은 연설을 했다. 그는 밴플리트 2세가 어머니께 보낸 편지를 읽어내려 갔다.
“사랑하는 어머니, 눈물이 편지를 적시지 않았으면 합니다. 저는 한국전에 참여하기 위해 비행훈련을 받았습니다. B-26 폭격기를 조종할 것입니다. 아버님께서는 ‘한국인들이 두려움 없이 살 권리’를 위해 싸우고 있습니다. 드디어 제게도 미력이나마 보탤 시기가 온 것 같습니다. 저를 위해 기도하지 마십시오. 대신 저희
승무원들을 위해 기도해 주십시오.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그것은 조국이 언제나 저에게 부여한 의무와 책임입니다.”
최 군수는 연설을 이어갔다. “밴플리트 2세 중위는 웨스트포인트 졸업 후 다시 공군에 입대해 조종사가 되어 아버지 밴플리트 대장과 나란히 한국전에서 싸웠습니다. 중위는 압록강 남쪽 순천지역에 단독 출격해 늘 생명처럼 여겼던 의무와 책임을 다하다가 적의 포격을 맞아 실종됐습니다. 아들 소식을 보고받은 당시 8군사령관 밴플리트 대장은 압록강 주변 지도를 한동안 응시한 후 ‘내 아들 수색작전에 도를 넘지 말라’는 취지의 명령을 내렸습니다. 며칠 뒤 ‘그 정도면 충분하다’며 수색작전을 중지하도록 명령했습니다. 6·25전쟁 당시 142명의 미군장성이 아들을 한국전에 보냈습니다. 이 중 35명이 전사하거나 부상당했습니다. 이 자리에 함께 하신 여러분은 모두 밴플리트 2세의 정신을 함께 나눈 위대한 영웅들이며 개인 신념에 따라 국가의 명령을 행동으로 실천한 대한민국의 영원한 은인이십니다.”
자리를 꽉 메운 80·90대 노병들은 감격의 박수를 그칠 줄 몰랐다. 최 군수는 메릴랜드 보훈병원을 찾아 병상에 누워있는 노병들 손을 꼭 잡고 “선배님, 감사합니다. 오늘의 대한민국은 바로 선배님 덕분입니다”라고 했다.
보은행사를 갖게 된 계기는 1999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육군 소장 전역 후 현대사회연구소장을 맡고 있던 최 군수는 그해 6월 중대장 시절 부하였던 은병곤(66) 당시 테네시태권도유도학회 회장으로부터 전화를 받는다. “중대장님! 테네시주 낙스빌시에서 7월11일을 ‘최승우 장군의 날’로 정해 초청을 하겠답니다. 꼭 오십시오.” 한국인 특유의 부지런함과 태권도로 신뢰를 쌓아온 은씨 등이 최 군수를 추천한 것이다. 미국 주정부나 도시가 한국인을 위해 기념행사를 갖는 것은 드문 일이다. 이후 최 군수와 미국 각 도시의 인연이 이어졌다.
최 군수는 올해까지 9개주, 30개 도시와 지역 보훈병원에서 한국전 참전용사들을 위한 보은행사를 벌였다. 감사메달을 전달하고, 병상의 노병들을 위문한다. 줄잡아 7000명. 대한민국 정부도, 내로라 하는 기업·단체도 미처 하지 못한 일을 한 예비역 장성 개인이 묵묵히 해온 것이다. “휠체어를 타고 행사장에 오셔 ‘우리가 피땀 흘려 지킨 한국이 자유를 되찾고 경제발전을 이뤄 너무 고맙다’고 말씀하실 땐 눈시울이 뜨거워집니다.”
“오늘의 대한민국, 선배님 덕분입니다”
그가 방문해 기념메달을 전달한 킬린, 템플, 낙스빌, 클락스빌 등 4개 시는 ‘최승우 장군의 날’을 지정해 고마움을 표시했다. 켄터키주에선 ‘명예장교(Kentucky Colonel)’ 증서를 수여했다. “산호세시는 작년 6월25일 태극기 게양식과 함께 시청 앞 국기게양대에 태극기를 45일간 내걸었다. 캘리포니아주 사상 처음 일이라고 하더라”고 그는 전했다.
그는 2006년 예산군수에 당선된 이후에도 매년 미국을 방문해 참전용사들에게 감사메달을 전했다. 그동안 2억 여원의 비용을 자비로 부담했다. 업무에 지장이 없도록 휴가를 이용했음은 물론이다. 그는 무슨 일이든 건성으로 하는 법이 없다. 하급자나 어린 사람에게 전화할 때도 본인이 직접 건다. 처음 대하는 사람들은 “진짜 장군 출신 맞아? 저렇게 겸손할 수 있나?”며 묻곤 한다. 군 시절부터 남에 대한 존중과 배려가 몸에 밴 탓이다. 군수에 당선된 이후 예산군수실은 활짝 열려있다. 사전 약속 없이도 그를 만날 수 있다.
최 군수는 캐슬린 스티븐스 전 주한 미국대사와 각별한 인연을 갖고 있다. 평화봉사단원으로 예산에서 가르쳤던 스티븐스 대사가 2008년 10월 부임 후 33년 만에 예산을 찾았을 때 일이다. 최 군수는 스티븐스 대사의 이미지가 새겨진 목제 항아리와 1975년 당시 예산중학교 전경을 담은 그림을 선물했다. 그리고 스티븐스 관련기사를 일일이 확대 편집해 20쪽 넘는 앨범을 만들어 전달했다. 스티븐스는 한동안 눈물을 글썽였다고 한다. ‘주한 미 대사’가 ‘군수’를 서울 관저와 집무실로 10차례 이상 초대하고 예산을 3차례 방문하며 우정을 이어 갔다.
최 군수의 미국 방문과 관련해 빼놓을 수 없는 인물들이 있다. 그의 초중고교 동창으로 보스턴에서 마취과 의사로 일하고 있는 김은한 박사, 방미 때마다 통역을 도맡아온 이병효발행인, 코헨 회장, 마이클 글래지 회장, 맥킨리 회장, 김승남 박사, 유근배 회장, 하세종씨, 마틴 핑스턴씨, 콘스탄트 시의원, 챔벌린씨 부부, 홍양희 회장, 송이화 기자, 귀도 디어본 시장, 빅터 애쉬 RFA 회장, 리자 험프리 회장, 전 CIA 국장 페트레이어스 장군, 롬니 전 매사추세츠 주지사 등등. 최 군수는 그들의 이름을 빠짐없이 기억하고 일일이 열거했다.
최승우 군수는…베트남전 전투헬기 조종, 예산군수로 고향 발전에 헌신
예산이 고향인 최 군수는 베트남전 참전용사다. 위관장교 시절 전장에서 육군 UH-1헬기 조종사로 활약했다. 귀국 후 60년대 후반 경부고속도로 건설 때 이한림 당시 건설부장관 특명으로 한 달 간 이 장관이 탄 헬기를 조종하며 경부고속도로 노선 예정지를 살폈던 일은 꼭꼭 숨겨져온 비화다. 이 장관은 “이 일은 대통령과 나만 아는 일이니 절대 외부에 알려선 안 된다”고 했다. 입이 무겁고 임무에 충실한 최 군수의 인품을 보여주는 일화다.
최 군수는 군 시절 자율적인 부대지휘로 유명했다. 육사 생도대장이던 1987년 12월 대통령선거 때는 생도들에게 자율투표를 허용했다. 사단장 때는 미리 예정된 당번병들과의 회식 약속을 지키기 위해 직속상급지휘관(중장)이 주관하는 부부동반 만찬에 “부하와의 선약을 지켜야 한다”며 불참한 일화도 있다. 조성식 동아일보 기자는 한국을 대표하는 장성 7인의 이야기를 담은(늘푸른소나무, 2005)에서 최 군수에 대해 “명령과 복종을 금과옥조로 삼는 군에서 이례적으로 자율과 책임, 정과 신뢰를 지휘철학으로 삼았다. 그가 지향했던 군은 한마디로 ‘민주군대’였다. 상급자와 하급자간, 장교와 사병간 대화를 중시하고 지시보다는 설득을 중시했다”고 썼다.
예산군은 최 군수 취임 이후 황새농법으로 생산한 무농약 유기농 쌀과 슬로시티 조성 등으로 삶의 질이 눈에 띄게 향상됐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장군님 너무 훌륭합니다.
이렇게 훌륭한 장군님이 계시다는 사실 만으로 같은 한국인 이라는 것이 자랑스럽습니다.
존경 합니다.
백수 까지 강건 하시길 기원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