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아시아사회칼럼

[발행인 칼럼] 인도 ‘바퀴벌레당’과 올림픽공원 70일…”우리 목소리를 듣고 있는가”

2026년 8월 15일 오전 7시 30분 올림픽공원 현장

지난 6월 3일 지방선거에서 일부 투표소의 투표용지가 부족해 투표가 중단되거나 지연되는 일이 벌어졌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도 투표용지 부족 사실을 인정하고 사과했다. 이틀 뒤인 6월 5일부터 서울 올림픽공원 일대에서는 이를 계기로 선거관리와 투·개표 과정에 문제를 제기하는 시민들의 시위가 시작됐다. ‘부정선거’, ‘재선거’, ‘선관위 해체’, ‘사전투표 폐지’, ‘당일투표 수개표’ 등의 문구가 적힌 벽보와 손팻말이 등장했다.

장마와 40도에 육박하는 폭염이 끝나가고 어느덧 가을 문턱에 들어선 광복절 아침, 그 시위는 70일을 훌쩍 넘기고 있었다. 참가 인원은 그때그때 달라지지만, 구호는 두 달 넘게 한결 같다. “부정선거 재선거” “당일투표 수개표.”

8월 15일 아침, 현장에서 1989년생 청년 한 사람을 만났다. 인천에서 오는 그는 일주일에 서너 차례 이곳을 찾는다고 했다. 직장생활을 하면서도 시간을 내 지하철을 갈아타고 현장에 나온다는 것이다. “언제까지 이렇게 할 것 같으냐”고 물었더니 그는 “그런 생각은 하지 않으려고 한다. 금방 끝나겠거니 한다”고 답했다. 한 사람이 뜸해지면 또 다른 얼굴이 나타난다. 고양시에서 오는 사람, 지방에서 혼자 올라오는 사람도 있다고 했다. 누가 대규모로 동원하는 집회라기보다 각자 형편에 따라 자리를 이어가는 모습이다.

2026년 8월 15일 오전 7시 30분 올림픽공원 현장

현장의 일상도 인상적이다. 참가자들은 자신들이 머문 자리를 치우고 쓰레기를 분리해 버린다. 시민운동의 품격은 큰 구호보다 자신이 앉았던 자리를 어떻게 정리하느냐에서 드러나는지도 모른다. 적어도 내가 지켜본 올림픽공원 현장은 그렇게 비교적 절제되고 조용하게 이어지고 있었다.

현장을 지탱하는 것은 거창한 조직만이 아니었다. 이곳에서 마시는 물과 음식도 대부분 이름 없는 자원봉사자들이 보내온다고 했다. 광복절 아침에는 한 스님이 포도 50여 송이를 가져와 참가자들에게 일일이 나눠줬다. 나는 그 스님을 이전에도 본 적이 있다.

7월 17일 아침 7시40분경 올림픽공원

제헌절인 7월 17일 이곳에 들렀다가 그가 시민들에게 도시락을 나눠주는 모습을 우연히 목격했다. 한 달 가까운 시간이 흘렀는데도 같은 사람이 다시 같은 자리에서 음식을 나누고 있었다. 구호보다 이런 장면이 더 오래 마음에 남았다.

시위 60일을 전후한 무렵 아시아엔에 반가운 원고 한 편이 도착했다. 1년 넘게 글을 보내지 않았던 인도의 닐리마 마터 아시아기자협회(AJA) 회원이 오랜만에 보내온 글이었다. 인도 청년들이 자신들을 모욕하는 데 쓰인 ‘바퀴벌레’라는 말을 오히려 생존과 저항의 상징으로 뒤집어 ‘바퀴벌레잔타당’(Cockroach Janta Party·CJP)이라는 이름으로 목소리를 내기 시작한 과정을 다뤘다.

8월 5일자 <아시아엔>의 인도 바퀴벌레당 관련 닐리마 마터 기자의 기고 글

인도 청년들의 문제의식은 분명하다. 기존 정치와 사회가 자신들의 목소리를 제대로 듣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실업과 교육, 시험의 공정성, 정치권의 무책임 등에 불만을 가진 젊은이들은 거리와 소셜미디어에서 자신들만의 언어와 상징을 만들어냈다.

그들이 택한 상징이 ‘바퀴벌레’라는 점은 역설적이다. 사람들이 싫어하고 없애려 하지만 좀처럼 사라지지 않는다. 열악한 환경에서도 살아남는다. 청년들은 자신들을 깔보고 밀어내는 데 사용됐던 말을 오히려 “우리는 쉽게 없어지지 않는다”는 생존과 저항의 이름으로 바꿨다.

이 운동이 얼마나 오래 지속될지, 실제 정치세력으로 성장할지는 알 수 없다. 이들이 제기하는 주장이 모두 옳다는 뜻도 아니다. 그러나 청년들의 불만을 미성숙한 감정이나 일시적인 소동으로만 치부한다면 중요한 것을 놓칠 수 있다. 듣지 않은 목소리는 없어지는 것이 아니다. 다른 모습으로 다시 나타난다.

닐리마 마터 기자의 위 제목의 글

닐리마의 글을 읽으며 나는 올림픽공원의 벽보들과 그 곁을 지키는 사람들을 떠올렸다.

물론 인도의 청년운동과 한국에서 선거관리 문제를 제기하는 시민들의 시위는 전혀 다른 사안이다. 발생 배경도, 참가자도, 주장도, 정치적 목표도 다르다. 둘을 같은 운동으로 묶을 수 없고, 그렇게 해서도 안 된다. 다만 두 현장에서 공통으로 들리는 질문 하나는 있다.

지난 6월 9일 밤 올림픽공원 <사진 이상기>

“우리의 목소리를 듣고 있는가.”

올림픽공원의 시민들이 ‘부정선거’를 주장한다고 해서 실제 부정선거가 입증된 것은 아니다. 투표용지가 부족했던 선거관리상의 문제와 선거 전체가 부정하게 치러졌다는 주장은 전혀 다른 차원의 문제다. 의혹과 확인된 사실은 엄격히 구분해야 한다. 근거가 확인되지 않은 주장을 사실처럼 확대하는 것은 오히려 선거와 민주주의에 대한 신뢰를 해칠 수 있다.

그러나 반대편도 돌아봐야 한다.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을 모두 무지하거나 선동된 사람으로 몰아붙인다고 의혹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조롱한다고 불신이 없어지는 것도 아니다.

특히 이번 시위의 출발점에는 실제 투표용지 부족으로 투표가 중단되거나 유권자들이 기다려야 했던 선거관리상의 문제가 있었다. 선거관리기관은 투표와 개표, 투표함 관리와 전산 처리, 이의제기와 검증 절차를 시민들이 이해할 수 있도록 투명하게 공개하고 설명해야 한다. 사실과 다른 주장에는 자료와 증거로 분명하게 답하면 된다.

언론의 책임도 돌아봐야 한다. 올림픽공원 시위는 70일 넘게 이어지고 있지만 대부분 언론에서는 다뤄지지 않았다. 참가자들의 주장에 동의하느냐와 취재할 가치가 있느냐는 별개의 문제다. 두달 넘도록 시민들이 한 장소에 모여 국가기관에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면, 언론은 적어도 왜 이들이 이곳에 나왔고 무엇을 주장하는지, 그 근거 가운데 확인된 것은 무엇이며 사실과 다른 것은 무엇인지 취재해야지 않을까? 보도하지 않는다고 현상이 사라지는 것도 아니고, 침묵한다고 불신이 줄어드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언론이 우리를 외면한다”는 또 다른 불신을 키울 수 있다.

물론 언론은 시위 참가자들의 주장을 확인 없이 받아쓰는 확성기가 되어서는 안 된다. 동시에 불편한 현장이라는 이유로 외면해서도 안 된다. 사실과 의혹의 경계를 확인하고, 왜 일부 시민들이 국가기관과 언론의 설명을 믿지 못하게 되었는지까지 파고드는 것이 취재다.

인도의 청년들은 자신들을 조롱하던 ‘바퀴벌레’를 이름으로 삼았다. 올림픽공원의 시민들은 70일 넘게 “부정선거 재선거” “당일투표 수개표”를 외치고 있다.

바퀴벌레는 밟는다고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불신도 그렇다. 불신을 줄이는 길은 억압이나 조롱이 아니다. 사실에 근거한 설명과 투명한 검증, 그리고 불편한 질문이라도 끝까지 들으려는 인내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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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기

아시아엔 기자, 전 한국기자협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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