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가 방문한 학교들은 직접적인 피해를 입지 않았지만, 밝고 순수했던 아이들의 모습이 생생히 떠오른다. 네팔은 크게 북쪽의 산악지역과 남쪽의 평야지역으로 나뉘며, 세이브더칠드런은 두 지역 모두에서 활동하고 있다. 아동들이 처한 어려움에는 비슷한 점도, 다른 점도 있다. 7년 전 산악지역을 방문했을 때, 초등학교 1~2학년 아이들이 두 시간을 걸어 학교에 간다는 말을 듣고 놀란 적이 있다. 산악지역은 마을도 학교도 드물기 때문에 작은 학교 하나라도 더 세워 아이들의 통학 시간을 줄이는 것이 중요한 과제다.

이번에 방문한 평야지역은 반대로 인구가 밀집해 과밀학급과 열악한 교육환경이 문제다. 한 교사가 80명의 학생을 담당하는 초등학교의 모습은 필자가 어린 시절 겪었던 우리나라의 사정과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다만 우리는 경제성장을 통해 그런 상황을 개선했지만, 50년이 넘게 유엔의 최빈국(LDC) 목록에 남아 있는 네팔은 그러지 못했다. 여기에 카스트 제도의 유산인 ‘불가촉천민’ 출신 아동에 대한 차별이 남아 있어, 모든 아이가 함께 배우는 통합교육을 정착시키는 일도 쉽지 않다.
이번 네팔 대홍수는 빈곤과 분쟁뿐 아니라 기후변화 역시 아동의 미래를 위협하는 중요한 요인임을 보여준다. 사실 모든 종류의 인도적 위기 상황에서 사회적 약자, 특히 아동과 여성이 가장 큰 피해를 입는다. 예를 들어 전쟁으로 인한 난민의 대부분이 아동과 여성이라는 사실은 통계로도 확인된다. 성인 남성은 직접 전투를 수행하거나 집을 떠나 있는 경우가 흔하다는 점을 고려하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수많은 아이들이 세계 곳곳에서 자신과 아무 관계없이 일어난 분쟁으로 폭력의 최대 피해자가 되고 있다. 가자 전쟁이나 이란 전쟁 모두 아동 희생자가 전체 사망자의 30% 정도에 이른다. 민간인을 방패막이로 내세우는 비인도적 행위도 많아지고, 병원과 학교를 대상으로 하는 공격까지 늘어나고 있다. “모든 전쟁은 아동에 대한 전쟁”이라는 에글랜타인 젭 세이브더칠드런 창설자의 말이 더욱 절실하게 다가온다.
기후변화는 홍수·산불·가뭄·태풍 등 자연재해를 증가시키며 인도적 위기를 악화시키고 있다. 유니세프에 따르면 전 세계 아동의 절반에 가까운 10억 명이 기후위기로 생존과 발달에 위협을 받고 있다. 그럼에도 국제적 공동 대응보다 자국의 단기적 경제이익에 집중하는 국가가 많다. 기후변화의 근본 원인을 해결하지 못한 채 인도적 지원이라는 사후약방문에만 의존한다면 인류의 미래는 더욱 불안해질 것이다. 네팔 대홍수의 경고를 심각하게 받아들여야 할 때다.
인도적 위기가 아동에게 끼치는 피해는 개인을 넘어 사회 전체의 미래에 장기적인 영향을 준다. 굶주림과 질병에 고통받을 뿐 아니라 학업 중단으로 미래를 포기해야 하는 아이들이 늘기 때문이다. 폭력과 재해로부터 아동을 보호하지 못하는 세상은 누구에게도 안전하지 않다. 내 아이와 남의 아이를 구분하지 않고 세계 모든 아동이 위기를 극복하고 제대로 성장할 수 있도록 국제사회가 함께 노력해야 한다.
오는 11월 20일은 국제사회가 정한 ‘세계 아동의 날’이다. 1989년 그날 유엔에서 아동권리협약이 채택된 것을 기념한 날이다. 당시 유엔 사무총장 페레즈 데 케야르(Pérez de Cuéllar)는 “사회가 아동을 어떻게 대하느냐가 그 사회의 정당성과 미래를 결정한다”고 말했다. 37년이 지난 지금도 이 메시지는 여전히 유효하며, 전 세계 모든 사회에 과제로 남아 있다. 여러 가지 이유로 아동이 희망을 갖고 성장할 수 있는 세상을 아직 이루지 못했기 때문이다.

우리의 미래는 아동에게 달려 있다. 우리 세대가 다음 세대의 주인공들을 제대로 보호하고 지켜내지 못한다면 인류의 진보와 지속가능한 발전도 기대하기 어렵다. 특히 지난해 합계출산율 0.8로 세계 최저 수준의 출산율을 기록한 우리나라에는 더욱 중요한 과제다. 국내적으로는 아이를 키우기 좋은 사회를 만들고, 국제적으로는 인도적 위기에 처한 아동들을 구해야 한다는 이중의 시대적 책임이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아이들의 울음소리가 필요한 나라에 살고 있지만, 다른 나라 아이들의 울음소리에도 침묵하지 말아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