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브라마푸트라 강이 굽이치는 이곳에는 퇴적물로 생긴 섬 ‘쫄’이 많다. 섬이 형성된 지 10년쯤 지나 안정되면 사람들이 들어와 살기 시작한다. 땅이 비옥하고 정부 소유라 빈곤층이 이주해 정착하지만, 행정기관이나 병원은 없다.

우리가 방문한 카파시아라고 불리는 섬은 15년 전쯤 형성됐고 10만 명이 넘는 주민이 살고 있다. 정부로서는 이들의 이주를 정식으로 인정해 행정기관을 설치하고 인프라 시설을 만들어 줄 수도 없고, 그렇다고 거주민들을 무시할 수도 없는 애매한 상황이다. 도로도 없어서 자동차 대신에 조랑말이 끄는 달구지가 교통수단이다. 주민들은 병원 진료가 필요할 정도로 아프면 1시간 정도 배를 타고 육지로 가야 한다. 하지만, 사람들은 임신과 출산을 병원에 갈 일로 생각하지 않기 때문에 유산이나 유아 사망률이 높다. 사실, 방글라데시 전체가 아시아에서 유아사망률이 가장 높은 국가 중 하나다. 그래서 세이브더칠드런은 이곳에 약 15억원의 예산을 투입하여 산부인과 보건소를 수립, 운영하고 있다.

그곳에서 만난 임산부들은 대부분 10대 후반의 젊은 여성들이었다. 어떤 이는 18세에 세 번째 아이를 임신 중이었다. 나는 통역을 통해 그들에게 한국도 불과 몇십 년 전만 해도 산파의 손에 의존하던 시절이 있었다는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그리고 언젠가는 이곳에도 좋은 병원이 세워질 것이니, 그때까지 보건소를 잘 이용해 달라고 당부했다.
매년 이런 개발도상국 현장을 다니며 느끼는 것은, 우리나라 역시 불과 한 세대 만에 도움받는 나라에서 돕는 나라로 변했다는 사실이다.
몇 년 전 어떤 잡지와의 인터뷰에서 그런 이야기들을 했다. 나중에 인터뷰 기사를 보니 제목이 “타인을 위한 삶”으로 달려 있었다. 기자가 발간 전에 제목을 의논했더라면 나는 그런 제목에 동의하지 않았을 것 같다. 내가 하고 있는 일들이 타인을 위한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다. 다만 ‘나’와 ‘우리’를 어디까지로 보느냐의 문제, 즉 정체성 인식의 차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를 좁게 인식하면 가족이나 친척 이외에는 모두 ‘남’일 수 있다. 더 확대해 지역(“우리가 남이가?”)이나 학벌을 중심으로 우리를 인식할 수도 있다. 하지만 오늘의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우리’와 ‘그들’의 경계선은 국가라고 생각한다. 국가는 인류가 만든 모든 조직 단위 중 가장 강한 강제력을 보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국가 중심의 정체성은 소위 ‘국뽕’이 횡행하는 비민주국가에서 더욱 뚜렷하지만, 선진국이라고 예외는 아니다. (“America First!”)
나는 젊은 학생들에게 자신을 한국인일 뿐 아니라 인류의 한 사람, 즉 세계시민으로 인식하라고 말한다. 그들에게 이렇게 묻는다. “무기징역을 살고 있는 죄수가 감옥에서 쓰레기 분리수거를 요청받았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그는 이미 최고 형량을 살고 있으므로 규정을 어기더라도 더 큰 불이익은 없다. 자발적으로 분리수거에 동참할 수도 있고 무시할 수도 있다. 나는 학생들에게 그런 상황에 처한다면 어떻게 할지를 스스로 생각해 보라고 한다.
모든 인간은 동물과 마찬가지로 생존이 가장 중요하다. 우리의 존재가 신의 의도로 창조되었든, 진화를 거쳐 우연히 생겨났든 한 가지는 분명하다. 살아남기 위한 강력한 본능이 우리 모두에게 주어졌다는 점이다. 개체로서 생존하기 위해 먹고, 종족으로 생존하기 위해 짝짓기를 한다. 아무도 먹고 짝짓기 하려는 욕구에 저항할 수 없다.
그렇게 생각하면, 앞으로 남은 삶을 감옥에서 보내야 하는 장기수도 인류의 생존에 기여할 수 있다. 우리 모두는 자녀가 있든 없든, 인류 전체가 계속 살아가도록 나름의 역할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기후변화로 우리 후손이 멸종의 위기에 처하는 것을 막는 것은 ‘타인’을 위한 일이 아니라 ‘나’를 위한 일이다. 이렇게 생각한 장기수는 이튿날 쓰레기 분리수거를 하기로 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