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6년 5월 2일 저녁, 나는 자카르타 대통령궁에서 조코 위도도 인도네시아 대통령을 만났다. 오후 6시15분부터 30분간 예정된 면담이었다. 조코위 대통령과 오랜 인연을 맺어온 에디 수프랍토 당시 아시아기자협회 수석부회장이 자리를 주선하고 배석했다. 이야기는 예정 시간을 훌쩍 넘겨 저녁 7시가 지나서야 끝났다.
자리에서 일어서는데 조코위 대통령이 미안하다고 했다. 저녁을 대접하지 못해서라는 것이다. 이유가 뜻밖이었다. 야당 의원들과 저녁 약속이 잡혀 있다고 했다. 그는 야당 정치인들과 자주 저녁을 함께하며 이야기를 나눈다고 말했다.
처음 듣는 얘기는 아니었다. 에디 기자는 그전부터 조코위가 야당 의원들을 자주 만나 밥을 먹으며 그들의 이야기를 듣는다고 내게 여러 차례 말해줬다. 그래도 대통령 본인에게 직접 들으니 느낌이 달랐다.
당시 조코위에게는 그럴 만한 이유도 있었다. 2014년 대통령에 취임할 당시 그의 연립정부는 의회 의석의 40%에도 미치지 못하는 소수파였다. 야당과 손잡지 않고서는 국정을 원활하게 끌고 가기 어려운 구조였다. 이후 PAN, PPP, 골카르 등이 차례로 정부 쪽에 합류하면서 2016년에는 조코위 지지연합이 의회의 확실한 다수로 커졌다.
물론 그 과정 모두를 아름다운 ‘협치’라고만 부를 수는 없다. 야당을 끌어들이는 과정에서 권력과 자리를 나눴고, 야당 내부의 분열에 정부가 영향을 미쳤다는 비판도 있었다. 그러나 한 가지는 분명했다. 조코위는 반대편을 만나지 않는 것을 정치적 원칙으로 삼지 않았다. 오히려 만나고, 밥을 먹고, 설득하고, 필요하면 손을 잡았다.
조코위가 대통령이 되기 전부터 그를 가까이서 도운 사람들도 있었다. 에디 수프랍토 기자와 무함마드 야민 대통령 특별보좌관, 그리고 조코위의 비서실장을 지낸 핵심 측근 테텐 마스두키가 그들이다. 에디에 따르면 이들은 조코위가 자카르타 주지사를 거쳐 대통령에 도전하는 과정에서 일찍부터 힘을 보탰다. 특히 야민은 이후 조코위 지지조직의 핵심으로 활동했다. 2019년 야민이 세상을 떠났을 때 조코위는 직접 빈소를 찾아 조문했다.
그로부터 보름 뒤인 2016년 5월 17일, 조코위 대통령은 국빈 방한 중 아주대학교를 찾았다. 나는 아시아기자협회를 대표해 그에게 ‘AJA Award 2016’을 수여했다. 이어 조코위는 당시 김동연 아주대 총장과 함께 아주대 학생들과 인도네시아 교민들을 초청한 토크 콘서트에 참석했다. 한 시간가량 이어진 자리에서 조코위는 자신의 소통 방식에 대해 “현장에서 사람들과 직접 이야기하다 보면 어려움을 알게 되고 해결책을 찾을 수 있다”는 취지의 말을 거듭했다.
조코위는 2019년 재선에 성공했다. 그리고 두 차례 대통령선거에서 맞붙었던 최대 정적 프라보워 수비안토를 국방장관으로 불러들였다. 정치란 때로 어제의 적과 오늘 손잡는 일이라는 것을 보여준 셈이다.
그렇다고 조코위 정치의 후반부까지 미화할 생각은 없다. 임기 말에는 장남 기브란 라카부밍 라카가 프라보워의 러닝메이트가 돼 부통령에 당선됐다. 후보 자격을 둘러싼 헌법재판소 결정까지 겹치면서 조코위는 ‘정치 왕조’를 만들었다는 거센 비판을 받았다. 그의 민주주의 유산에 대한 평가 역시 크게 엇갈린다.
그럼에도 10년 전 자카르타 대통령궁에서 들었던 “야당 의원들과 저녁을 먹는다”는 말은 지금도 기억에 생생하다.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 6월 국민의힘 주호영·박덕흠 의원 등 야당 중진들과 골프를 친 데 이어 지난달에는 김태호 의원 등과도 골프 회동을 했다. 대통령 쪽에서는 반대편의 목소리를 듣기 위한 소통이라는 취지로 설명한다. 회동에서는 개헌 문제와 지역 현안 등도 오갔다고 한다.
이를 두고 정치권의 시선은 엇갈린다. 조국혁신당은 “협치를 도모하는 취지 자체를 부정하지는 않는다”면서도, 12·3 사태의 책임 규명과 개혁이 진행되는 상황에서 국민의힘 인사들과 가진 골프 회동은 “깊은 실망을 안겨준다”고 비판했다. 국민의힘 일각에서도 대통령이 야당 지도부와 공식 대화에 나서기보다 개별 중진들을 만나 ‘갈라치기’를 하는 것 아니냐는 경계가 나왔다. 반면 야당 안에서도 골프라는 형식 자체를 정치적 공격거리로 삼을 필요는 없으며, 대통령이 반대편의 목소리를 들으려는 시도라면 긍정적으로 볼 수 있다는 의견이 있다.
비판에는 귀 기울일 대목이 있다. 대통령과 야당 의원의 비공개 만남은 누구를 만나 무슨 이야기를 했는지, 공식적인 여야 협상과 어떤 관계에 있는지에 따라 ‘소통’과 ‘밀실정치’의 경계가 달라질 수 있다. 특히 개헌처럼 국가의 기본 틀을 바꾸는 문제가 골프장에서만 논의되는 모습으로 비친다면 국민이 의문을 갖는 것도 당연하다. 조코위의 사례가 보여주듯 ‘협치’라는 이름으로 야당을 무력화하거나 권력을 나눠 갖는다면 그것 역시 건강한 민주주의와는 거리가 멀다.
그러나 그렇다고 대통령이 야당 의원과 골프를 친다는 사실 자체를 문제 삼을 일은 아니라고 본다. 중요한 것은 골프를 쳤느냐가 아니라 왜 만났고 무엇을 논의했으며, 그 만남이 공개적인 정치와 국정 운영을 더 원활하게 만드는 데 기여했느냐일 것이다. 오히려 우리 정치에는 공식 회담만으로는 나누기 어려운 이야기를 터놓을 수 있는 자리가 더 많아져야 하지 않을까.
국회에서는 얼굴을 붉히며 싸우더라도 함께 밥을 먹을 수 있어야 한다. 골프장에서 네댓 시간을 걸으며 상대방의 속내를 들을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다음날 다시 치열하게 논쟁하는 것, 그게 국회의 모습이면 좋겠다.
협치는 생각의 차이를 없애는 일이 아니다. 야당을 여당 편으로 만드는 것도 아니다. 서로 다르다는 사실을 인정하면서도 만나고, 듣고, 설득하는 것이 정치다.
조코위의 정치를 그대로 본받자는 뜻은 아니다. 그의 정치에도 분명 빛과 그늘이 있었다. 다만 반대편 사람들과 기꺼이 마주 앉아 밥을 먹고 이야기를 나누었던 정치의 기술까지 외면할 이유는 없다.
정치는 적을 친구로 만드는 일만은 아니다. 생각이 다른 상대와도 마주 앉아 밥을 먹고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것, 그것 또한 정치다.

2016년 5월 2일 저녁, 조코위가 내게 미안하다고 했던 이유를 10년이 지난 지금 다시 생각한다. 대통령과 저녁을 함께하지 못해 섭섭했던 기억은 없다. 오히려 그가 만나러 간 사람들이 야당 의원들이었다는 사실이 오래 남았다.
국회는 상대를 만나 치열하게 논쟁하되, 끝내 의견이 다르면 다시 맞서고, 그러면서도 다음날 또 마주 앉을 수 있어야 한다. 한국 정치에도 그런 밥상과 골프장이 조금 더 많아졌으면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