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의 ‘자유와 번영’에 대한 감사를 어찌 잊겠습니까?

1992년 2월 4일 첫 만남 이후 11년이 지난 2003년 6월 워싱턴을 방문한 최승우 장군 부부가 리스카시 주한 미군사령관 부부와 다시 만났다. 

이 글은 육군 제17사단장이던 최승우 예비역 소장이 1991년 2월 4일 부대를 방문한 당시 리스카시 주한 미군사령관에게 훗날 보낸 편지글입니다. 최 장군은 1995년 예편 후, 1999년부터 코로나 발생 직전까지 19차례 미국의 한국전쟁 참전용사가 있는 각지를 다니며 메달과 기념품 등을 전하며 감사행사를 이어왔다. 최승우 장군 내외는 2003년 워싱턴에서 오찬 회동을 가진 후 지금껏 우정을 나누고 있다. <편집자> 

존경하는 리스카시 사령관님께

사령관님 안녕하십니까? 2003년 워싱턴에서 내외분 만나 뵌 이후 그동안 많은 세월이 지났습니다. 그동안 건강하시고 평안히 잘 지내실 줄 믿습니다. 처음에는 간단한 안부 인사를 드리고 다음 기회에 그동안 저의 소식과 생각들을 좀더 상세히 전해드리려는 마음으로 편지를 시작했는데 처음 저의 뜻과는 달리 장문의 서신을 보내 드리기로 마음을 바꾸었습니다.

사령관님에 대한 저 나름의 옛정과 이에 따른 많은 생각들은 참 많았습니다. 너무나 오랜만에 드리는 서신이라 설레는 마음과 한편, 기쁜 마음으로 글을 쓰고 있습니다.

사령관님에 대한 여러 호칭이 있겠지만 제게는 ‘한미연합사령관’으로 인연을 맺은 분이시기에 ‘사령관님’이라는 호칭이 보다 정감있게 느껴집니다. 인간은 만남의 인연으로부터 성장 발전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먼저 사령관님과의 최초 만남을 생각하면서 제 마음에 간직되어온 지난날 사령관님과 저와의 짧았던 아름다운 추억과 그 이후 저의 소식을 전해드리겠습니다. 구체적인 내용은 별도 저의 약력으로 대신하겠습니다.

1991년 2월 4일 최승우 소장이 지휘하던 17사단장을 방문한 당시 리스카시 주한미군사령관을 최 소장이 헬기장에서 영접하고 있다. 

사령관님께서는 1991년 2월 4일 월요일 오전 10시 제가 지휘하는 17사단을 방문하셨습니다. 저는 40시간 전에 사령관님 순시를 통보받고 사실 당혹감을 금치 못했던 생각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제가 아는 한, 당시 ‘한미연합사 창설’ 이래 연합사령관의 한국군 부대 공식방문은 사령관님께서 처음이셨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당시 토요일 오후 늦게 갑자기 상급부대로부터 연락 받은 내용은 ‘리스카시 연합사령관 2월 4일(월요일) 오전 10시에 사단 방문’ 이외에는 어떤 목적과 의도의 방문인지, 내가 특별히 준비할 사항이 무엇인지, 그런 깜짝 방문에 대한 어떤 언급조차 듣지 못했기에 당시 궁금증은 물론, 부담감이 컸었던 것도 사실이었습니다.

한국군 부대의 경우에도 상급지휘관의 계획에 없는 불시 예하부대 공식방문도 최소한 5일 이상의 시간 여유를 갖게 되는데 더욱이 당시 연합사령관의 방문은 토요일 오후 6시 통보 접수로부터 월요일 오전 10시 사단 방문시까지 수면 취침시간 포함해도 정확히 40시간밖에 여유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우선 영문 브리핑 준비가 최우선이라 생각했었기에 작전 계획부터 사단장의 부대 지휘방침에 이르기까지 밤새워 준비했고 일요일 오전 중에 모두 마칠 수 있었습니다. 사령관님과의 첫 대면은 월요일 아침 10시 헬기장 도착에서였습니다. 그 후 회의실에서 부대 현황과 작전계획 전반에 걸친 중점설명 보고와 브리핑을 통해서 공식적인 첫 대면을 한 이후 뜻 깊은 인연이 시작되었습니다.

최승우 소장이 지휘하던 17사단장을 방문한 리스카시 주한미군사령관과 부대 간부들이 사진촬영을 하고 있다. 1991년 2월 4일 이날 방문에는 김진영 당시 연합사부사령관 등이 동행했으며 17사단 상급부대인 수도군단 장석린 군단장이 배석했다. 

브리핑을 마치고 토의 질의시간에 사령관께서는 저의 여러 질문들에 대해 솔직히 답변을 잘해 주셨으며 특히 후에 제가 이어서 말씀드렸던 핵심 내용은 ‘내가 김일성이라면 강력한 기갑전력으로 취약한 김포반도 돌파를 통해 수도권을 포위, 우회 기동과 함께 문산 축선 공격으로 전방 전투병력에 대한 한강 이북에서 포위섬멸 작전을 분명히 구상하겠다’는 저의 생각과 그리고 인류 역사상 인간 의지에 의해 극복되지 않은 장애물은 결코 없었기에 제 구상의 충분한 가능성을 기반으로 맥아더 장군의 성공적인 인천상륙작전의 예를 들었습니다.

저는, 사령관께서도 공감하시는 느낌을 가졌습니다. 당시 미래 예측 판단면에서, 적의 도하장비와 장애물 극복능력 그리고 전투의지를 고려 시, 적이 초전에 김포반도 도하 난관만 극복한다면 김포반도야말로 더욱 한국판 아르덴느가 될 수 있는 충분한 가능성을 갖고 있으며 나아가 수도권이 포위 고립되는 심각한 상황을 충분히 설명 내지 토의할 시간이 없었지만, 이러한 가능성은 핵을 가진 지금 더욱 현실화될 수 있고 기계화부대 편성 변화를 통한 적의 전략변화에서도 감지가 되고 있습니다.

당시에도 제가 중요하게 생각해왔던 적의 땅굴 작전은 시간제한상 문제제기를 못했습니다. 만약 땅굴로 적 특수작전부대가 사전 침투하여 기습 선점을 하고 지상군과 연결 ‘아르덴느식 포위섬멸 작전’을 펼친다면 가공할 위협으로 작용하리라 믿어 의심치 않았습니다.

그 이후부터 사령관님으로부터 사랑과 신뢰를 진정 제가 느낄 수 있었던 이유는 연합사에서 사령관님을 뵙게 될 때에는 바쁘신 중에도 친절히 맞이해 주셨고 특히 저의 짧은 영어에도 저의 말을 경청해주셨던 사령관님의 여러 가지 배려가 눈에 선합니다.

특히 사령관님께서는 연합사령부 건물에서 마침 헬기장으로 향하던 바쁘신 걸음을 멈추고 저를 사무실로 다시 데리고 들어가 커피시간을 갖고 따뜻이 맞이해주셨습니다. 당시 모습들을 평생 아름다운 추억으로 고이 간직하고 있습니다.

저는 사령관님의 그 따뜻한 정과 신뢰를 제 마음속에 계속 간직했고 특히 2003년도 워싱턴에서 사령관님 내외분을 모셨던 오찬 시에도 감사의 말씀을 깊이 못 드렸던 것이 아쉬웠습니다.

사령관님께서는 전례 없이 한국군 부대를 방문하셨는데 저로서는 당시 영광스러운 일이었습니다만 그 많은 부대 중에 제가 지휘하는 17사단을 선택하여 깜짝 방문하신 이유가 지금까지도 궁금해 하고 있었습니다.

저는 김영삼 대통령 취임(1993년)후 진행된 소위 군내 사조직 관련 대상으로 육군소장으로 정년 전역(1995년 6월30일)했으며 그 후 지속적으로 보람된 사회활동을 해왔습니다.

개인적으로 매년 국가와 민족의 은인, 한국전쟁 참전용사들을 위한 보은행사를 19년 동안 미국 전역에서 해왔던 사실을 무엇보다 저의 일생을 통해 최고의 보람된 일로 여기고 있습니다.

제가 군에서 계속 근무를 했었다면 그런 기회는 분명 없었을 것이며 나아가 대한민국과 한국인의 생명을 구해준 미국과 참전용사 분들에게 보은행사 기회를 저에게 주신 하나님께 항상 감사드리고 있습니다. 2018년으로 19년째 행사를 마치고, 지난 3년간 코로나로 중단된 이후 20년째 행사를 구상하고 있습니다.

그동안 미국에서 20여개 주, 60개 이상의 도시 및 지역의 공식 행사를 통해서 저는 총 9,000명 이상의 노병들과 손잡고 껴안던 감동적인 순간들을 가슴속 깊이 고이 간직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매 행사마다 주 연설자로서 다음의 말을 반드시 포함하여 노병들께 전했습니다.

“….. 우리는 통상 ‘인권’을 인류의 ‘보편적인 가치’라고 합니다. 하지만 저는 ‘보은’이야말로 우리가 삶 가운데 항상 간직하고 행동 실천해야 하는 ‘삶속의 고귀한 가치’라고 생각합니다. 은혜는 태평양 건너 멀리 떨어진 머나먼 거리라고, 또한 50년 이상의 세월이 지났다고 결코 잊혀 질 수 없고 잊어버려서도 절대 안 되는 즉, ‘시공을 초월하는 고귀한 최고의 가치’인 것입니다.

우리가 어려서부터 들어온 욕하는 말 가운데 ‘은혜도 모르는 자’, ‘배은망덕한 자’란 말이 있었습니다. 사람은 결코 은혜를 잊어서는 안 됩니다. 우리 대한민국의 뜻 있는 절대다수의 국민들은 국가와 국민의 ‘생명의 은인’인 미국, 그리고 참전용사들 덕분에 오늘날 이렇게 자유와 번영을 누리는 국가로 성장 발전해왔음을 깊이 잘 알고 있습니다.

저는 지금 민간인으로 개인 신분이지만 대한민국 국민들의 ‘감사의 목소리’를 이 자리를 통해 전해드립니다. 저 또한 개인적으로 매년 보은행사를 해올 수 있었던 원동력은 여러분들과의 지속적인 우정의 포옹을 통한 ‘사명의 에너지’였습니다.

워싱턴 한국전쟁기념공원에는 여러분들이 너무나 잘 알고 있는 헌사, 여러분의 위대한 조국, 미국이 전하는 장엄한 감동적인 서사시가 다음과 같이 새겨져 있습니다. 저는 이 자리에서 여러분들께 경건한 마음으로 전해드리고 싶습니다.

“OUR NATION HONORS HER SONS AND DAUGHTERS WHO ANSWERED THE CALL TO DEFEND A COUNTRY THEY NEVER KNEW AND A PEOPLE THEY NEVER MET. ·····”

특히, 저에게 깊은 감동을 준 이 서사시의 짧은 구절만큼은 저의 연설 후미에 반드시 포함해서 전달했습니다.

사령관님께서는 연합사령관으로 재직하셨기 때문에 현재 대한민국의 현실을 누구보다도 잘 아시고 걱정하실 줄 믿습니다. 특히 한국을 극진히 사랑하셨고 한국 방위에 누구보다도 깊이 전념하셨던 분이셨음을 저는 잘 알고 있습니다.

현재 대한민국은 내부적으로 극심한 위기에 처해있다고 저는 판단하고 있습니다. 저 역시 사관학교 시절부터 전쟁사를 통해서 얻은 교훈 즉 인류역사는 전쟁의 역사였고 진정 평화를 위해서 국가는 전쟁에 항시 대비하는 국가 안보태세를 굳건히 강화함이 무엇보다 제일 중요한 과제라는 사명감을 지니고 살아왔습니다.

역사적으로, 어리석게도 적의 말을 믿은 결과 멸망하거나 참화를 당했던 국가의 예는 많이 있었습니다. 우리의 주적은 과거 수십 년간 한미동맹을 약화 내지 파기시키려했고 미군을 이 땅에서 철수시키는데 온갖 노력을 집중해 왔으며 지속적인 물밑 사상전을 전개하여 오늘에까지 이르렀다고 봅니다.

저는 미국과의 굳건한 동맹이 있는 한 결코 한국이 침몰하지 않을 것으로 확신합니다. 또한 저는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는 격언을 통해서도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굳게 믿고 있습니다.

2차세계대전 이후 아메리칸 밸류 즉,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굳건히 다진 미국의 동맹국인 한국을 결코 버리지 않을 것임을 저는 굳게 믿습니다.

과거 우리 국가와 민족은 미국으로부터 크나큰 두 번의 ‘생명 구원의 은혜’를 입었습니다. 하나는, ‘일본 식민지로부터 해방’이고 다음은, 6.25한국전쟁에서 미국의 참전으로, 무엇보다 ‘미국 젊은이들의 거룩한 희생’ 덕분으로 오늘날의 자유 번영을 누리며 굳건한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이룩하게 된 결과입니다.

그리고 저는 오늘의 현실은 세 번째 맞게 될 심각한 위기로 보고 있습니다. 그러나 저는 미국과의 굳건한 동맹이 존재하는 한 역시 극복할 수 있는 과정임을 굳게 믿고 있습니다.

앞으로 분명히 하나님의 역사가 이번에도 반드시 있을 것이라는 굳건한 믿음을 저는 간직하고 있습니다. 저는, 포기하는 국민에게는 하나님의 시련극복의 은혜는 물론, 미국의 도움도 기대하기 어려울 것으로 믿습니다.

뜻있는 절대다수의 대한민국 국민들은 물론, 저 역시 나름 사명을 다할 것입니다. 사령관님께서는 누구보다 대한민국을 잘 알고 사랑하셨음을 저는 굳게 믿기에 이렇게 스스럼없이 저의 생각들을 피력했습니다.

사령관님께서는 제 생각을 이해하고 수용하실 것으로 제 나름 믿었기에 처음에는 간단한 안부서신이 이렇게 긴 편지가 되었습니다. 감사합니다.

2019년 새해를 맞아 사령관님 내외분 건강과 가정의 행복을 기원합니다. 안녕히 계십시오.

최승우 예비역 육군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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