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승우의 시선] 박제 될 뻔한 북한산 수리부엉이 추억
[아시아엔=최승우 전 17사단장, 예산군수 역임] 1983년 연대장 부임 후 어느 무더운 여름날, 나는 주임상사의 공식 업무보고를 받은 후 대화 중이었다. 그의 말을 그대로 표현하면 이랬다.
“연대장님, 병사들 5명이 사투 끝에 공관 근처 다리 밑에서 엄청 큰 부엉이를 잡았는데 표구를 한다기에, 이번에 새로 부임하신 연대장님은 날짐승 표구하는 걸 싫어하실 게 분명하니 여쭈어보고 결정하자고 해서 일단 보류시켰습니다.”
대단한 관심과 흥미를 유발시키는 얘기였다.
“그래, 부엉이가 어디에 있지?”
“예, 연대장님 공관 창고에 보관하고 있습니다.”
“그럼 함께 가보지.”
이렇게 해서 부엉이를 보러가게 되었다. 주임상사의 업무보고 때 자연 생태계에 대한 내 견해를 분명히 해 주었기에 부엉이는 표구사 직행 신세를 면했던 것이다. 40년 지난 지금 생각만 해도 아슬아슬하고 동시에 얼마나 다행스러웠는지 모르겠다.
나는 자연 다큐 TV프로를 당시에도 상당히 즐기는 편이라서 시청하는 것은 물론 <동물의 세계> 테이프는 100개 이상 구입해서 다 보았다. 예전에는 도로상이나 주변에 야생동물이 ‘로드 킬’ 상태로 죽어있는 모습을 보면 그저 단순히 마음 아팠던 생각뿐이었지만 TV 시청이나 테이프를 보다보니 동물들도 어느 면에서는 인간 이상의 깊은 사랑을 나누는 것을 더 느끼게 됐다.
가족이 분명 있는데 우선 어미가 죽었을 경우 그 새끼들은 자연히 굶어죽는다는 생각과 걱정이 앞섰고 새끼를 잃은 어미에 대한 걱정 역시 깊어졌다. 나는 고향 예산의 시골에서 취학 전과 6년간 초등학교 시절 자연과 동물을 접할 수 있는 기회는 많은 편이었다.
당시 <파브르 곤충기>를 비롯한 동물에 관한 여러 책을 접했기에 비교적 관심이 컸었다. 동물들은 인간과 같은 탐욕이 없고 오직 생존을 위한 삶을 살아갈 뿐이며, 새끼에 대한 정성은 경외심마저 들었다.
주임상사 얘기를 들은 후 공관에 도착해서 병사 3명이 창고 안에 있던 부엉이를 조심스럽게 안고 나와서 날개를 펼쳐 보였다. 예상을 넘어서 어른이 양 팔을 벌린 그 이상이었다. 발은 마치 수십년 묵은 더덕처럼 심하게 울퉁불퉁했고 발톱은 손가락만큼이나 컸으니 사투 끝에 잡았다는 말에 이해가 갔다. 대낮이라서 부엉이가 앞을 잘 보지 못해 잡혔을 것이다.
공관 잔디밭 위에 한쪽 다리가 굵고 긴 끈으로 묶여진 상태인데도 의연히 서있는 부엉이의 늠름하고 의젓한 모습이 참으로 멋있었다. 몸집이 하도 크니까, ‘혹시 북한산 산신령일지도 모른다’고 쑤군대는 목소리도 뒤에서 들려왔다.
그 무렵 불가사의한 일이 벌어졌다. 지금도 좀처럼 이해 못할 일이다. 주변 30m 이내에 100년생 가량의 소나무 두 그루 있었는데 10분도 채 안되어 약속한 듯이 아마도 1백여 마리의 까치들이 그 큰 소나무들을 완전히 뒤덮고 요란하게 울기 시작했다. 순간 느낌에 북한산 지역 까치가 모두 다 모인 것 같았다.
수십 마리도 아니고, 어떻게 알고 한꺼번에 백 마리 이상의 까치가 일시에 몰려올 수가 있는지 내 기준과 상식으로는 불가사의할 정도의 희한한 일이었다. 20여분 계속 울어대다 무슨 약속이나 한 듯이 한 순간에 모두 사라져 버렸다. 당시에는 부엉이에 관심이 있어서 무심했지만 내 상식으로는 도저히 있을 수가 없는 일이었다.
천만다행으로 당시 순간순간 ‘부엉이가 지금 살아있다는 사실’이 무엇보다 중요한 일이었고 너무나 감사한 일이었다. 당시 관행상 사로잡힌 부엉이는 으레 당장 표구사로 직행했어야 했고 나는 표구된 상태의 부엉이를 보게 되었을 것이다.
만약에 표구해온 모습을 보았다면 나는 억장이 무너지는 고통을 느꼈을 것이며 그 충격은 분명히 부대업무에도 큰 영향을 주었을 것이다. 나는 큰 아픔에 따른 마음의 상처를 간직하고 살아야 했을 것이다. 생각만 해도 끔찍하고 아찔했다.
연대장 취임 직후 주임상사 업무보고 후 의사소통을 위한 대화 중에 북한산이야말로 자연생태계의 보고(寶庫)로서 보호 차원에서 내 뜻을 간략히 피력했고 특히 표구와 분재에 대한 내 평소 생각을 확실히 얘기했기 때문에 내 뜻이 주임상사에게 정확히 전해졌음을 알 수 있었다.
부엉이는 하루저녁 머물게 해서 고기도 배불리 먹여서 다음날 어두운 새벽녘에 일찍 풀어주려고 했는데 무슨 의미이던 간에 까치들의 격렬 시위를 겪고 당장 보내줘야 할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미처 암수 구분도 못하고 초저녁에 고기 좀 먹이고, ‘사랑하는 부엉이야! 이곳 북한산에서 부디 건강하게 오래오래 잘 살아라’ 하는 속마음을 전하면서 풀어주었다.
나는 말을 아무에게나 하는 편이 아니었다. 하지만 그 이후부터 되도록이면 특히 신뢰의 대상인 가까운 지인과 선후배 동료에 대해서는 내 마음을 솔직히 전해야 되겠다는 생각을 더욱 갖게 되었다. 나의 뜻있는 말 한마디가 천연기념물 수리부엉이의 귀중한 생명을 구했기 때문이었다.
지금도 ‘동물의 세계’를 비롯해서 TV영상을 통해서 어떤 부엉이를 보면 잠시 연을 맺었던 북한산 수리부엉이 생각과 함께 분명히 성장하고 있을 그 새끼들까지 나름대로 상상을 해본다. 당시는 그렇게도 아슬아슬했지만 이제는 ‘너무나도 아름다웠던 그 추억의 상념’ 속에 깊이 잠기곤 한다.
세월이 지나 회상컨대 지금처럼 휴대폰이 있었다면 평생 간직할 수 있는 아름답고 희귀한 사진들을 많이 찍어서 간직할 수 있었을 것이다. 특히 까치들의 알 수 없는 ‘격렬한 데모시위’ 때문에 사진병을 급히 불러 ‘그 부엉이와의 기념사진’ 그리고 ‘까치들의 시위 모습 사진’을 찍을 생각을 미처 못 했던 것, 그리고 하루 저녁은 못 재워도 좋은 고기라도 배불리 먹여서 보내주지 못하고 당장 풀어 보내주었던 일은 우리 인간의 정으로 볼 때 참 아쉬운 생각이 든다.
북한산 수리부엉이는 내 평생 마음속 깊이 간직돼 있다.<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