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최승우 전 육사 생도대장 ‘육사인이 오늘을 사는 자세’

육군사관학교 캠퍼스 <사진 권영호 육사교장>


아래 글은 최승우 예비역 소장(전 예산군수)이 육사 생도대장이던 1986년 <육사신보>에 기고한 글입니다. 38년의 긴 시간이 지났지만, 지금도 여전히 육사인, 나아가 군인들에게 던지는 메시지가 생생하게 울려옵니다-편집자

젊은 시절부터 육사인(陸士人)은 피와 땀과 먼지가 뒤범벅이 된 교육 훈련 속에서 조국과 민족의 장래를 생각하며 꿈과 이상을 키워왔으며 보다 높고 원대한 목표를 향해 그리고 보다 성숙한 인간이자 군인이 되기 위하여 용솟음치듯 끓어오르는 정열을 불태워왔다.

그러므로 ‘육사’ 라는 한마디 단어에서 우리 모든 육사인이 느끼는 감회와 애정은 무엇이라고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가슴 벅차기만 하다. 우리의 뇌리 속에 항상 내재하고 있는 “화랑대, 지인용(智仁勇), 청백대열, 국가간성, 명예와 긍지, 용기, 인내, 국가, 민족, 충성… ” 등의 연상(聯想) 단어들은 우리 육사인에게는 단순한 단어나 용어 그 이상의 의미를 지니고 있으며 차라리 심장부 깊숙한 곳에서부터 힘을 모아 터져 나오는 영혼(靈魂)의 외침으로 표현하고 싶다. 그리고 이것은 땀과 눈물의 참된 가치를 몸소 체험하여 알고있는 사람들만의 가슴속에서 마음과 마음으로 뜻과 뜻으로 이어지는 한없이 길고도 짧은 대화의 시작이기도 하다.

그래서 더욱 나도 육사인의 한 사람이라는 것이 자랑스럽다. 육사의 전통 속에서 우리의 선배들이 그러했고 우리 동료들이 그러했고 또 우리 후배들이 이러한 긍지를 계속 지켜나가리라는 것을 확신하기 때문이다.

모교의 생도대장으로서 재임기간 1년은 본인이 우리 육사인의 이 같은 정신적 유산에 대한 자랑과 믿음을 재확인할 수 있기에 충분한 기간이었다. 분명 우리에게는 꿈과 이상이 있으며 축적된 커다란 잠재능력이 살아 숨쉬고 있다. 그러고 확실한 것은 분명히 올바른 목표지향을 위한 노력을 우리는 계속 해왔다는 사실이다.

아울러 우리들 존재에 대한 자긍심을 느끼는 이 시점에서 “衆人以拂意爲憂 而君子憂從快意處起” 즉 ‘평범한 자는 제 마음대로 되지 않는 것을 걱정하지만 군자는 이와 반대로 도리어 근심이 유쾌한 마음속에서 생긴다’는 글귀를 생각하고 싶다.

설령 모든 것이 만족스런 현실에서도 미래를 대비하는 자세는 역사의식이 없어서는 절대로 불가능하다. 우리 육사인의 숭고한 이상과 긍지가 자위자족의 수준에서 머물지 않고 시공을 초월하는 불멸의 생활철학이 될 수 있기 위해서는 어제와 오늘 그리고 오늘과 내일 사이에서 분명한 좌표의식(座標意識)을 망각해서는 안되기 때문이다.

나는 비록 역사학자는 아니지만 나름대로의 평범하고도 소박한 아마추어 역사관을 갖고 있다고 자부한다. 그 내용인즉 역사란 과거의 단순한 사실만으로 구성되는 것이 아니고 역사책이나 박물관의 진열장 속에서 발견하는 것만도 아니며 오늘 하루를 성실하게 살고 있는 현실 속의 무리, 즉 우리 모두의 마음속에 살아 숨쉬어 약동하는 ‘그 무엇’ 이라고‧‧‧‧‧. 우리에게 있어서 역사는 결코 아득하게 먼 곳으로부터 들려오는 메아리가 아니며 또한 우리 스스로는 이어받은 역사를 보다 의미 있게 만들고 다듬어가서 후배들에게 넘기는 역사 속에서 살고 있는 주인공들이라는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나에게 중요한 것은 그제보다는 어제요 어제보다는 오늘 그리고 오늘보다는 내일이어야 한다. 만약 오늘이 오늘로서 끝나고 내일을 외면하는 오늘이라면 오늘의 긍지와 만족은 한낱 무가치한 것으로 퇴색되어 버리고 말 것이다.

젊은 시절의 아무리 높디높은 이상이나 불같은 정열도 그 숭고함을 지킬 수 있기 위해서 우리는 오늘의 끊임없는 수신과 반성에 인색해서는 안 된다고 믿는다. 내일의 영광을 위하여 오늘을 어떻게 사느냐하는 문제와 오늘과 내일을 설계하기 위해 어제로부터 무엇을 배워야 하는가를 생각해 보자는 것이다.

역사는 인류에게 많은 교훈을 남겨주고 있다. 그러나 수많은 사람들이 역사적인 사실들을 충분히 알고 있으면서도 근본적인 문제에서 실패들을 거듭하는 것은 극히 인간적이면서도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고 본다. 즉, 역사가 묵묵히 보여주고 있는 진리를 강 건너 불로만 보고 진정 자기 자신의 것으로 소화시키지 못했거나 오늘을 진실 되게 살아갈려는 노력이 부족했거나 둘 중의 하나일 것이다.

가치의 내면화와 진실한 오늘의 삶을 위한 노력! 이는 수많은 부하를 지휘하고 지도하는 입장에 서있는 우리 모든 육사인이 솔선수범하기 위해서라도 항시 수신의 제1조로 삼아야 할 문제라고 생각한다. 옛 말에 강 물위의 배 지나간 흔적은 금방 사라지나 사람은 인생의 족적을 남긴다고 했다. 로마가 하루아침에 이루어 질 수 없었듯이 위대한 꿈과 이상의 실현은 단계적인 노력 없이는 불가능한 것이었다. 높은 목표를 향해 하나하나 쌓아 올라간 노력과 자취가 없이 그리고 젊은 시절의 이상과 비전이 탈바꿈하거나 퇴색되는 것을 지속적으로 예방하는 노력도 없이 갑자기 무엇이 이루어지리라는 것을 어찌 기대 할 수 있겠는가?

우리는 한 인간으로서 또 군인으로서 어떻게 생을 살아야 하는가에 대하여 본질적이고도 근간을 이루는 많은 원칙들을 우리 주위에서 수없이 들어왔다. 비록 그러한 본질적인 문제를 다루는 것은 아니나 이상 언급한 내용의 맥락에서 우리 모두가 문제의식을 가지고 조직을 위하고 수신을 위해서도 함께 생각하고 행동 실천해야 할 중요한 사항들을 몇 가지 제시해 보고자 한다.

첫째, 우리는 혹시 자기 자신은 가치의 내면화를 뒷전으로 미루고 부하들에게만 강요한 적은 없는가? 지휘자로서 이중적인 행동을 보인다거나 말로는 부하들이 직언을 해야 한다고 외치면서 실제로는 직언을 회피하거나 싫어하는 태도를 보이는 것 등이 그 실례가 될 것인즉 허공에 대한 외침은 메아리가 없게 마련이다.

둘째, 우리는 혹시 물줄기를 외면하고 물방울에 집착하고 있지는 않는가? 문제와 가치의 핵심과 본질에 역점을 두어야만 하는데 지엽적이고 외적인 면에 치우쳐서는 안 된다는 말이다. 아울러 북극성은 우리 육사인에게 항상 올바른 길잡이 이었음을 상기시키고 싶다.

셋째, 우리는 혹시 유형의 득(得)만을 추구함으로 무형의 큰 손실을 모르거나 외면하고 있지는 않은가? 득과 실은 유무형으로 항상 共存하고 있는 것이다. 유무형 득실의 균형을 잘 살리는 지혜를 갖도록 노력해야한다. 판단 부족 그리고 눈앞의 극히 작은 개인적인 이익, 안일함에 현혹되어 일차원적이고 단세포적인 사고의 차원으로 혹시 전락되어 있지는 않은가? 전체의 이익을 위하고 전체를 살리는 균형 감각이 오늘의 깊은 반성 없이 가능할 것인가?

넷째, 우리는 혹시 너무나 실현 불가능한 완벽만을 추구하고 있지는 않은가? 흔히 말하는 100% 완전무결 이라는 말은 기계적 오차를 염두에 두고 하는 표현이지 인간생활에 적극 적용하기에는 극히 어려운 것이 아닐까? 완전무결하지 않은 인간이 개개인과 조직에 대해서 그것도 의미 없는 완전무결을 강요하는 것은 커다란 모순일 뿐만 아니라 완전무결할 수 없는 완벽을 너무 강조하다 보면 本末이 전도되기 쉽다. 이런 식으로 입버릇처럼 부하들에게 목표달성이라는 명분으로 무리한 실현 불가한 완벽을 강요를 해서는 결코 안 된다고 본다.

다섯째, 우리는 혹시 부하들의 개성을 살리지는 못할망정 개성을 없애는데 기여한 역할을 한 적은 없는가? 부하들의 인격과 자존심을 꺾고 계급과 힘으로만 지휘를 하려든다면 특히 유사시 어려울 때 그들로부터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복종과 조직의 단속력(結束力)을 기대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각 개인의 살아있는 개성이 그 인간의 재목 됨됨이를 돋보이게 한다고 볼 때 부하들에 대한 올바른 개성관리(個性管理)는 곧 인재육성 관리로 직결된다고 할 수 있다. 개체의 다양성이 없는 획일화된 인간은 기계의 부속품과 무엇이 다르겠는가? 또한 부하의 문제 제기를 불평분자 또는 문제아로 매도하기는 쉽다. 그러나 우리가 보다 크고 본질적인 것을 생각한다면 그러한 이의제기도 조직과 집단의 발전을 위하여 수렴하려는 노력이 반드시 있어야 할 것이다.

여섯째, 우리는 혹시 우리 조직과 집단을 이끌어 가는 힘의 소재를 잘못 파악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즉 하부구조를 도외시하고 너무나 상부만을 의식해온 것이 아닌가? 동서고금의 역사를 통해 우리가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은 힘의 원천이 뿌리에 있다는 것이다. 뿌리를 무시하고 상부에만 시선과 마음을 돌리는 지휘자는 상부에 대한 의무와 책임을 다하는 것도 아니요 상급자를 진정 올바르게 보좌하는 것도 아니며 불충(不忠)하는 자로 보고 싶다. 지휘자는 모름지기 부하를 어려워하고 두려워할 줄 아는 상급자가 되어야하며 부하들로부터 항시 냉엄한 평가와 심판을 받고 있다는 사실을 항상 인식하고 있어야 한다.

이상 여섯 가지 외에도 우리는 혹시 하고 생각할 수 있는 수많은 사항들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어떤 내용이 되든 간에 모든 맥락은 하나로 수렴될 수 있을 것이다. 즉 몸이 똑바른데 그 그림자가 굽어질 리가 절대로 없다는 사실이다. 상급자가 올바르게 하는데 부하가 잘못할 리가 없고 상급자가 진실하게 오늘의 삶을 위한 노력을 기울일 때 부하가 딴전을 피울 수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 모든 오늘의 노력은 우리 육사인의 명예와 긍지를 더욱 빛내줄 뿐만 아니라 젊은 날의 꿈을 결코 헛됨이 없이 실현시킬 수 있는 첩경이 될 것이다.

그리하여 역사를 생각하며 사는 우리 모든 육사인은 단순히 과거의 환상을 먹고사는 陸士人 이기를 고집하기보다는 진정 역사를 알고, 알려고 노력하며 두려워할 줄 알고 창출하는 육사인이 되려고 노력해야 할 것임을 강조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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