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의 알프스’ 키르기스스탄 ‘탐방기’
텐산산맥의 만년설, 이식쿨호수 절경에 눈 황홀
지구상에 ‘땅’이란 뜻의 ‘스탄’이 나라의 이름 끝인 곳은 7개국이다. 키르기스스탄 카자흐스탄 우즈베키스탄 투르크메니스탄 타지키스탄과 파키스탄 아프가니스탄.
남쪽의 파키스탄과 아프가니스탄을 제외한 5국은 ‘탄탄 독수리 5형제’로도 불린다. 이들은 구 소련의 그림자가 여전히 짙은 국가들이라고 할 수 있다.
경북 이철우 지사를 비롯한 지자체 장들도 ‘탄탄대로’ 진출에 관심이다. 잠재력이 큰 이들 국가들과 자매결연 등 선린을 도모하려는 움직임이다. 아시아 복판 중앙아시아는 중국 신장 위구르 자치구와 스탄 5국을 가리킨다. 텐산산맥 이북 드넓은 초원의 유목지역과 남쪽 타클라마칸 사막의 오아시스 지대다.
실크로드를 통한 동서교류의 자취, 문명과 종교가 섞인 하이브리드의 현장이기도 하다. 개발도상국 키르기스스탄(GDP 1500달러)을 일주일 간 방문해 신선한 충격을 받았다.
국토 면적이 한반도의 90%가 넘는 넓은 땅에 겨우 690만명이 살고 있다. 북위 39도~43도, 카자흐스탄 타지키스탄 우즈베키스탄 및 중국과 국경을 접한 내륙국가다.
80여개 민족으로 키르기즈(72%) 우즈벡(14.5%) 러시아(6.4%) 인이 다수를 점한다. 종교는 이슬람교(75%) 러시아정교(20%) 기독교(5%) 등이다. 우즈베키스탄을 경유하는 게 비행시간이 가장 짧다. 한국과 시차는 3시간.
화폐는 솜(SOM), 달러는 호텔과 백화점이 아니면 받지 않는 곳이 많다. 개발의 손이 덜 닿아 자연환경이 온전하게 보존돼있는 천혜의 관광지다. 교민 수는 1000여명, 카레이스키(고려인) 1만7000여명이 거주한다.
12월 2일 비슈케크 한 호텔에서 한국-키르기스스탄 수교 30주년을 기념한 ‘한국의 날’ 행사가 열렸다. 에이스리서치 대표 조재목 박사는 ‘고향의 봄’과 ‘독도 아리랑’을 하모니카 연주로 분위기를 띄웠다.
한영용 보주차박물관장은 정성껏 헌다례를 했다. 나는 ‘좋아’를 붓으로 쓴 필로그래피 시연을 했다. 키르기스어로 ‘쏘눈’은 ‘아주 좋아’(very good)라는 뜻.
용인 민속촌과 비슷한 ‘소노파라’ 창립자 주마딜은 쏘눈을 입에 달고 산다. 이번에 백태현(KKC, 한국학센터) 소장 안내로 방문해 나와 주마딜은 형제지의를 맺었다. 키르기스스탄 인 중 최초의 형님을 만든 셈이다.
대만 전 국회의장 왕진핑 등 형들이 있긴 하지만 중앙아시아에선 최초다. 주마딜은 몇년 전 타계한 장형과 함께 소노파라를 20여년에 걸쳐 만들었다. 유르트(몽골의 게르)와 흙돌집이 즐비하고 귀한 전시품과 유물이 가득한 명소다.
유르트에서 맛있는 란과 빵을 복분자와 비타민 잼에 찍어 차와 함께 실컷 먹었다. 유르트는 보온기능이 뛰어나고, 심신을 편안하게 만든다. 충북 제천의 호수가 풍광이 좋은 곳에 유르트로 ‘노마드 마을’을 만드는 방안을 협의 중이다.
기타 연주와 노래를 즐기는 로맨티스트 주마딜은 올해 중 한국을 방문할 예정이다. 7학년(70대)인 데도 매일 냉수마찰을 하며 건강을 유지한다. 한국에 오면 그와 만날 계획이다.
키르기스스탄은 앞으로 각광받을 농업과 텐산산맥과 이식쿨 등 관광자원이 무궁무진하다. 며칠 지내지 않았지만 살고싶은 마음이 절로 들 정도로 인심 좋고 풍광도 매우 뛰어나다.
일년 내내 녹지 않는 만년설로 유명한 텐샨산맥이 도로 양옆으로 나란히 달리는 게 절경이다. 이곳을 달리던 중 당나라의 시선 이태백(이백)의 고향이 여기라고 백태현 교수가 말한다. 중국 3곳이 이미 이태백을 선점하려고 열을 올린다. 문화관광 차원의 이태백 홍보전이 나름 치열한 거다.
해발 1600m의 이식쿨 호수는 둘레가 400km로 바다라는 게 오히려 어울린다. 동서 길이 177km, 가장 넓은 곳이 57km로 가늘고 긴 눈 모양을 이룬다. 세계에서 2번째로, 제주도 3배 넓이의 산정호수다. 바람이 불면 파도까지 친다. 청록빛의 호수는 명징하고 환상적인 분위기를 자아낸다.
평균 수심도 1m를 조금 넘는 정도. 바이칼이나 천지와는 천양지차다. 투르크 어로 이식(Issyk)은 따듯하다, 쿨(Kul)은 ‘호수’. 따듯한 호수로 산에서 유입되는 빙하의 얼음 물이 염분과 만나 증발하면서 약한 짠맛이 난다. 화산작용으로 인해 이식쿨은 겨울 혹한에도 얼지 않는다.
여름 관광지로 유명해 유럽, 러시아와 중동의 부호들도 즐겨 이곳을 찾는다고 한다. 지금 이곳은 한적하고 겨울을 느끼게 해준다. 부부 사이인 백태현 교수와 미나라(일명 미나리) 총장의 빌라가 이곳 리조트 타운에 있다.
여기서 2박 동안 조재목의 심금을 울리는 연주와 7080 노래 경연을 밤늦게까지 했다. 이식쿨 리조트 타운과 지근거리인 루크 오르도(Rukh Ordo, 종교박물관)에도 볼거리가 가득했다.
영화관 실크스크린을 올리면 이식쿨 호수가 그림같이 나타나 숨을 멎게 한다. 이식쿨이 워낙 절경이라 대통령 여름 별장이 세계종교박물관과 붙어 있을 정도다. 세계 5대 종교인 가톨릭과 정통 기독교, 유대교, 이슬람 및 불교를 상징하는 각종 조형물들과 예배당이 종교박물관 내 즐비하다. 입구에 들어서면 바로 불교관이 나온다. 누구나 칠 수 있는 범종은 조계종에서 기증했다.
눈을 휘둥그레하게 만든 작품을 만든 주역은 키르기스스탄의 위대한 문학가다. 레닌 만큼이나 저명한 사회주의 사상가라고 백태현이 말했다. 종교 간 이해와 평화를 도모하기 위한 영적 중심지이자 출발점이 되게하려는 게 기획설계자의 의도다.
하지만 우리에겐 그의 이름은 낯설다. 그의 저작 또한 국내에 전혀 소개된 바가 없다.
키르키스탄은 의외로 문무를 상찬하는 나라다. 동서간 문명의 교류지라서 그럴까? 첫날 찾은 비슈케크의 중앙광장 큰 건물 벽에는 시인ㆍ소설가ㆍ사상가의 대형 사진이 걸려있다.
국립박물관에서 5명의 위인들을 그린 대형 초상을 오랫동안 응시했다. 그 중 3명이 펜을 쥔 시인ㆍ학자ㆍ사상가들인 문인이다.
둘은 키르기스 등 부족 리더인 칼을 든 용맹한 족장이다. 용맹한 정복자도 현창했지만, 위대한 시인ㆍ사상가나 문인들을 더 우러르는 묘한 나라다. 앞서 우리는 촐폰알타에 들렀다. 키르기스 5대 암각화 유적지 중 하나다. 양날 도끼, 말, 낙타, 개, 산양, 늑대, 눈 표범(설표) 등 7000개의 암각화가 바위에 새겨져 있다. 그냥 노천에 방치해놓아, 암각화의 빛이 바래고 희미해져간다. 세월의 비 바람에 견딜 장사가 어디 있으리요!
투명 유리관을 씌우던 해야할 텐데…언제까지 노출한 채로 둘지…우리도 못 살던 시절에 반구대 암각화를 오랫동안 방치한 바 있다. 그렇듯이 키르기스스탄 역시 암각화 문화유산을 못 챙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