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모] ‘삼풍백화점 붕괴’ 때 세딸 잃고 장학재단 세운 정광진 변호사

1996년 11월 5일 국립 서울맹학교 삼윤장학재단 기념비 제막식에서 기념 촬영한 모습. 왼쪽부터 국립맹학교 김장현 당시 교장, 김명섭 국회의원, 정광진 변호사 부부, 기념비 제작한 백석 이근배 교수. <사진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사료관 오픈아카이브>

육신의 눈은 캄캄했으나 밝고 맑은 마음의 딸 유지 이어 눈 어두운 이들에 빛을 주고 간 정광진 변호사. 그는 28년 전, 삼풍 붕괴참사 당시 세 딸을 잃었다. 그는 딸들을 한꺼번에 잃고 삶의 막장을 봤다.

정광진 변호사는 눈 안 보이는 큰 딸 치료비 탓에 법복을 벗었다. 그런데 세딸이 한날 한시에 저 하늘 별이 됐다. 그마저 19일 별로 하늘에 올랐다. 향년 85세. 서울법대 졸업 후 1963년 제1회 사법시험에 합격했다. 13년간 고법 판사까지 하다가 옷을 벗었다.

눈이 안 보이는 딸 윤민(당시 29세) 치료비 대기 위해서였다. 1978년 법복을 벗고, 변호사로 변신했다. 큰 딸은 가족의 소망과 염원에도 시력을 못 찾는다. 그러나 향학 투혼으로 1988년 과감하게 미국에 가 명문 버클리대에서 석사학위를 받았다.

딸 윤민은 동병상련의 시각장애인과 함께 하려 늘 애썼다. 한 치 망설임도 없이 스스로 서울맹학교 교사가 된다. 그런데…하늘을 참으로 원망해야만 할까?

윤민은 1995년 6월 29일 삼풍백화점 붕괴 때 숨을 거둔다. 왜, 하늘은 선한 사람들을 먼저 데려가곤 할까? 너무나 안타깝게도 둘째 윤정 셋째 윤경도 언니 윤민과 함께 삼풍 붕괴때 변을 당했다. 고인은 보상금(7억원)과 개인 돈을 보태 ‘삼윤장학재단’을 만들었다. 큰 딸 모교요 첫 직장이기도 한 서울맹학교 재단에 거금을 넣었다.

눈 안 보이는 딸을 위해 변호사가 돼 착한 삶을 살았건마는…큰 딸 윤민은 5살 때 한쪽 눈을 잃은데 이어 12살 때 양쪽 다 실명했다. 그 딸은 시력을 끝내 되찾진 못했다.

하지만 1988년 미국 버클리대 유학길에 올라 향학의 투혼을 발휘했다. 기어코 석사를 마치고, 돌아와 같은 처지의 이들을 위한 삶을 살았다.

세 딸, 윤민 윤정 윤경은 생필품을 사러 삼풍백화점에 갔다가 참변을 당했다. 큰 딸이 눈 안보이는 이들을 위하겠다며 교사된 지 불과 9개월째였다. 세 딸의 갑작스런 죽음으로 고인은 변호사 생활을 중단할까 고민했다. 고인은 도저히 참기 어려운 고통을 이겨내고 승화시키는 결단을 한다. 장학재단을 만드는데 힘을 쏟은 거다.

그 장학재단, 오른 손이 한 일을 왼 손이 모르게 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누군가 언론에 그 뭉클한 사실을 알렸다. 고인과 가까운 사이 법조인들 상당수는 이미 알고 있었다. 재단 설립 당시 소식을 접한 김영삼 전 대통령도 감동을 받았던 모양이다.

“정광윤 변호사가 베푼 고귀한 사랑은 세 딸의 못다한 꿈을 이루는 일일뿐 아니라 앞 못보는 어린 학생들에게 어둠을 밝혀주는 ‘희망의 빛’으로 영원히 남을 것입니다.”

장학재단 이름 ‘삼윤’은 세 딸들 이름에서 따와 지었다. “맹인들에게 빛이 되려던 딸을 대신하려…”고 했다.

유족으로는 부인 이정희씨, 외손자 윤상원 등이 있다. 빈소 분당서울대병원 장례식장 3호실, 발인 22일 오전 7시30분, 장지 용인 평온의숲 시안공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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