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마스의 사나이’ 찰스 디킨스①] ‘인간적인 너무도 인간적인’


‘메멘토 모리’…수전노 스쿠루지의 환골탈태·개과천선

크리스마스의 사나이’ 찰스 디킨스는 올리버 트위스트로 사회 고발도 했다. 10년 간, 10파운드 지폐의 주인공이었다. 엘리자베스 2세 재위 중인 1992~2003년 가장 많이 쓰인 지폐에 그의 얼굴이 새겨졌다. 찰스 디킨스가 영국을 비롯한 기독교 문화권에선 ‘크리스마스의 사나이’로 여겨졌기 때문이다. 비단 서구권에서만이 아니라, 수전노 스쿠루지를 변화시킨 사람으로 영원히 우리의 마음 속에 남아 있다.

스쿠루지 영감

수전노의 대명사처럼 쓰이는 스쿠루지는 인색하기 짝이 없고 얼음장같이 차가운 사람이다. 불쌍한 사람을 도와주지 않는 것은 물론, 피붙이인 조카에게조차 놀부같이 냉정한 사람이었다. 그러던 중 크리스마스 전날 밤, 욕심 많고 사나운 구두쇠 스쿠루지에게 동업자 친구가 죽어 유령으로 찾아온다.

죽어서도 쇠사슬에 묶인 채 고통받는 친구가 마음을 고쳐 착하게 살지 않으면 똑같은 운명에 처할 거라고 경고한다. 유령과 함께 과거 현재 미래에서 손가락질 당하는 비참한 자신의 모습을 똑똑하게 목도한다. 이 와중에 가장 소중한 것을 희생하며 사랑하는 사람에게 따스한 마음의 선물을 전하는 가난한 부부를 보게 된다. 마침내 스쿠루지는 옛날을 반성하고 성탄절 아침, 사랑과 인정이 넘치는 이로 거듭난다.

크리스마스 캐럴

권선징악의 뻔한 통속적 스토리텔링일 수도 있다. “스쿠루지는 벼룩의 간을 빼먹는 그런 인간이었다. 스쿠루지는 쥐어짜고 비틀고 움켜쥐고 긁어모으고 낚아채고 매달리는 욕심 많은 늙은 죄인, 따듯한 불을 피우기 위해 한 번도 부시로 맞아 보지 않은 부싯돌처럼 냉혹하고 무정했으며 닫힌 조가비 속의 굴처럼 비밀스럽고 폐쇄적인 외톨이었다…”

통속적 스토리텔링이나 플롯을 뛰어넘는 탁월한 묘사가 크리스마스 캐럴에 생명력을 부여했다. 디킨스가 아니었다면, 가족이 모여 식사하는 서양의 전통 명절 성탄절의 “메리 크리스마스!”가 덜 풍성했으리라. “아아! 나는 갇히고 얽매이고 쇠사슬에 꽁꽁 묶인 채 아무 것도 몰랐지. 불멸의 존재들이 얼마나 오랜 시간 쉬지 않고 노력해야 세상이 유익해지는지 알지 못했네…아무리 후회해 본들 이승에서 놓쳐버린 기회를 다시는 만회할 수는 없다는 사실을 몰랐지. 아아, 그게 나였다네. 그게 나였어!”

메멘토 모리(Memento mori). ‘죽는다는 것을 기억하라’, ‘죽음을 잊지 마라’로 번역되는 라틴어 문구다. 천재 디킨스는 이 문구를 떠올리면서, 스쿠루지라는 인물을 창안했을 거다. “휘몰아치는 눈보라도 스쿠루지처럼 인정사정 없지 않았으며, 억수같이 퍼부어 대는 장대비도 그처럼 무자비하지는 않았다.”

이런 탁월한 인물 묘사가 크리스마스 캐럴을 불후의 명작으로 만든 거다. 디킨스의 탁월함은 19세기 중반 시대상과 인간군상을 생생히 그려내서다. 소설 속에 나온 캐릭터들의 생동감과 감칠맛을 더한 유머 코드는 금상첨화. 그 스토리텔링에는 힘이 있고, 복잡한 관념보다는 일상의 주제에 집중했다. 그래서 그의 글은 재미나고 페이지가 술술 넘어간다. 그렇다고 디킨스가 흥미 위주의 소설만 쓴 건 아니다.

디킨스는 불우한 유년을 보낸 탓에 사회문제에 관심이 깊었다. 1834년 탄생한 ‘신빈민법(New Poor Law)’을 통렬하게 고발했다. <더 타임스>를 비롯한 유수의 신문들도 이 법과 제도의 문제를 지적했다. 문학으로 승화시킨 디킨즈의 감동적인 필치는 호소력이 훨씬 컸다. 아동노동의 참상을 다룬 <올리버 트위스트>나, 사법제도의 문제를 고발한 <황폐한 집>이 대표적이다.

실제로 디킨스는 영국의회 출입기자로 활동했으며 개혁운동가들과도 밀접한 관계를 유지했다. 디킨스는 빅토리아시대 최고 인기작가였으며 당대 최고의 셀럽이었다. 셰익스피어 다음으로 위대한 소설가이자 ‘천재 중의 천재’로 평가받는다.

톨스토이와 도스토옙스키도 그에게 존경의 염을 표했을 정도다. 빅토리아 여왕 시대는 영국문학 ‘제2의 전성기’였다. 유럽 부르주아들에게 영국 소설은 필수교양 중 하나. 마르크스 등 당대의 사상가들은 19세기 유럽을 언급할 때, 디킨스의 작품을 빼놓는 법이 거의 없다. 문학적 역량 못지않게, 그는 마케팅에도 천부적 재능을 발휘했다. 신문 연재소설이라는 새로운 분야를 개척해 반석에 올린 선구자다.

결정적 순간에 이야기를 끊는, 이른바 ‘절단 신공’으로 관심을 끌었다. 연재소설에서 다음 회를 간절하게 기다리게 하는 클리프행어(cliffhanger) 기법이다. 영어로 밧줄이나 절벽, 끄트머리에 매달린 자를 뜻한다. 연재소설에서 최고로 고조된 갈등 중간에 끊어버리거나 새로운 갈등이 분출하는 시점에 얘기를 끊는 무자비함이다. 신대륙 아메리카에서도 그의 작품은 인기 상한가였다. 디킨스의 소설을 실은 배가 부두에 닿으면 인파가 몰렸다. 낭독회 때 미국 팬들이 디킨스를 보겠다고 구름처럼 몰렸다. 문학사를 통틀어 대중과 가장 가깝게 지낸 작가 중 한명이다.

아놀드 하우저의 <문학과 예술의 사회사>에선, 디킨스의 계급의식은 낮춰 본다. 하지만 그의 대중성만은 인정한다. 독자를 손아귀에 쥐락펴락하는 펜의 힘은 어쩔 수 없다는 듯 말이다.

찰스 디킨스의 명성에 비해 우리나라에는 번역본이 적다. 특히 수준 높은 디킨스 소설의 번역본은 드물다. 작품의 인기에 비해 그의 문장은 매우 긴 편이다. 정규교육을 거의 못 받고 작가가 된 탓에서 그럴 거다. 조지 엘리엇을 비롯한 당대 문장가들에 비해 비문도 많다. 좋게 말하면, 개성적이지만 난삽한 문장들이 속출한다. 빈민층의 삶에 깃들인 은어, 속어 구사가 너무 많기도 하다. 또한 역자들이 영국 근세생활사에 능통하지 못해서일 것이다.

<올리버 트위스트>는 창작과비평이나 민음사, <크리스마스 캐럴>은 현대문학, <두 도시 이야기>는 창작과비평이 낫다. <작은 도릿>은 한국문화사, <위대한 유산>은 민음사 번역본이 좋다. <에드윈 드루드의 비밀>은 2000년 찬섬 판이 유일하다. 비유를 직역해 눈뜨고 못 볼 ‘개 번역’으로 악명이 높았다. 그마저 절판돼 한동안 번역본 자체를 찾기 어려울 정도였다. 2017년, B612북스에서 ‘로스트’ 제목으로 다시 나왔다. <데이비드 코퍼필드>와 <황폐한 집>은 동서문화사 간이 유일하다.(계속)

찰스 디킨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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