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순·안도현·배일동의 ‘시와 판소리’ 오대산 캠프나비에 메아리

홍천 나비캠프 이동순-안도현-배일동의 ‘시와 삶, 그리고 노래‘ 토크 참가자 단체사진

2022년 한 여름으로 접어들던 지난 7월 1일 오후, 장맛비가 사나흘 퍼붓고 모처럼 맑게 갠 강원도 홍천 오대산 600고지 샘골 ‘캠프나비. 이동순-안도현 시인과 판소리 배일동 명창이 펼치는 ’시와 삶, 그리고 노래‘ 토크에 참여하기 위해 멀리 완주에서 서울·인천·강릉·예천·양평 등지에서 50여명이 아침부터 달려왔습니다. 사돈에다 한때 사제지간이기도 했던 이동순, 안도현 시인과 배일동 명창의 토크를 생생하게 듣고 느끼기 위해서였겠지요. 바람 한점 없이 40도에 가까운 무더위 속 참가자들은 저마다 그늘을 피해 자리했습니다. 이들은 2시간여 힘찬 박수와 “얼~쑤~”로 호응하며 토크에 몰입했습니다. 그 후 80일, 이글거리며 내리쬐던 땡볕은 초가을 陽光으로 탈바꿈하고, 푸르디푸른 녹음은 어느새 갈색으로 물들고 있습니다. 당시 시와 노래 토크를 온라인 지면을 통해 <아시아엔> 독자들과 공유합니다. <편집자>

왼쪽부터 배일동 명창, 이동순 시인, 안도현 시인

[아시아엔=이원섭 마케팅 큐레이터] <아시아엔> 주관으로 오대산 캠프나비에서 열린 ‘시와 삶, 그리고 노래’ 토크쇼에 참여하는 기회를 가졌다. 평소 익숙했던 안도현 시인의 토크를 현장에서의 직접 듣는다는 설렘도 있었으며, <개밥풀> 이동순 시인을 직접 뵙고 싶었다.

7월 1일 금요일 오전 아시아엔 발행인 이상기 선배와 오늘 행사에 사회를 보는 배일동 명창, 그리고 김용길 <동아일보> 기자와 함께 길을 떠났다. 어제까지 쏟아 붓던 장맛비가 언제 그랬냐는 듯 행사 장소인 강원도 홍천 오대산 600고지 나비캠프까지 새파란 하늘에 뭉게구름, 새털구름 쇼를 연신 펼쳐냈다. 고속도로를 벗어나 한가한 국도에 접어드니 장맛비 탓인지 내린천의 물이 우렁차게 흘러내린다.

오후 3시 행사 시간 전에 도착하니 이미 천막과 그늘막 등을 치는 손길들이 땀을 뻘뻘 흘리며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시작까지는 시간이 좀 남아 캠프나비(NABE, Natural Being)를 둘러 보았다. 산좋고 물좋은 심신산골 펜션에서 보아왔던 번듯한 건물 대신 허름한 비닐하우스가 캠프 이름대로 ‘내추럴 비잉’이었다.

행사 참가자들 숙박을 위해 몇 동의 텐트가 설치되고 있었다. 비닐하우스 바로 동편 앞엔 아시아엔 창간 4주년과 6주년 기념 식수를 볼 수 있었다. 행정구역상 강원도 홍천군 내면인 이곳 산으로 오르는 중턱쯤에는 자작나무 숲도 있어 산책하기에 최적이었다. 무엇보다도 해발 600고지에 위치해서인지 무더위도 못 느끼겠고 모기 파리 등도 없어 말 그대로 최상이었다. 물론 펜션마다 설치돼 있는 샤워시설이 없어 캠프 옆 계곡을 이용해야 했다. 

이동순 시인

행사 시간이 다가오니 참가자들이 속속 모이고 어색한 눈인사로 행사를 맞이했다. 사회를 맡은 소리꾼 배일동 명창은 행사 모두에 이동순-안도현 두 시인을 간단히 소개했다.

1950년 경상북도 김천 출생인 이동순 시인은 올해 등단 50년을 맞았는데 1973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마왕의 잠’으로 등단해 첫 시집 <개밥풀>을 시작으로 최근 <고요의 이유>까지 21권의 시집을 내며 활발한 활동을 잇고 있다.

안도현 시인은 이동순 시인보다도 일반인 인지도가 높아 이날 행사에도 그를 보고 싶어 온 참가자들이 많은 듯했다. 1961년 경북 예천 출신인 안시인은 1981년 대구매일신문 신춘문예에 ‘낙동강’ 이 당선되며 등단해 누구나 외울 수 있는 석 줄 시, ‘너에게 묻는다'(연탄재 함부로 발로 차지 마라/너는/누구에게 한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느냐)로 사랑을 받고 있다.

이상기 <아시아엔> 발행인은 “이번 행사가 문단 선후배이자, 사돈관계인 이동순 시인과 안도현 시인의 통찰을 경청하는 한편, 작년 12월 작고하신 박상설 선생이 20여년 전 세운 캠프나비에서 열려 더욱 뜻이 깊다”며 “전국에서 오신 참석자들이 시뿐 아니라 자연의 넉넉함도 가져가길 바란다”고 했다.

사회자인 배일동 명창은 꼼꼼한 사전 조사를 통해 이동순-안도현 두 시인의 등단 과정과 시인 및 개인으로서의 삶을 구수한 목소리로 이끌어냈다. 특히 중간중간 두 시인의 싯구절을 판소리로 엮어내 청중 속에선 박수와 탄성이 쏟아졌다. 말 그대로 최고 수준의 시와 삶, 그리고 노래의 축제 한마당이 되었다.

안도현 시인

이동순, 안도현 두 시인은 참 많이 닮았다. 태어난 곳, 어렸을 적 부모님을 여윈 아픔, 시골 감성, 23살 나이에 신춘문예 당선(이동순 시인은 1973년 ‘마왕의 잠’, 안도현 시인은 1984년 ‘서울로 가는 전봉준’) 그리고 백석까지…

그래서 서로 끌렸나 보다. 사돈까지 맺어 지금 여기 강원도 홍천 심심산골에 나란히 참석했다. 두 분이 사돈관계가 된 데에는 백석이라는 또 다른 시인이 있었다. 분단 이후 최초로 백석의 시전집을 발간하고 우리 문학사에 백석을 복원시킨 백석 전문가인 이동순 시인이 영남대 교수로 재직할 당시 백석평전을 준비하던 안 시인이 감수를 요청하면서 같이 작업해 정이 들었다고 한다. 이후 이 시인의 아들과 안 시인의 딸이 부부의 인연을 맺었다.

두 시인은 행사장소인 캠프나비를 어떻게 느꼈을까? 사회자 질문에 이 시인은 “고속도로, 국도를 지나 캠프 입구 비포장도로에 접어드니 이런 곳이 있었구나” 하고 감탄했단다. 한국전쟁 때 같으면 난리가 나도 몰랐을 너무 좋은 곳이라고 한다. 이런 장소에서 행사가 열려 기대되고 흥분도 된다고 했다. 시간 되면 아코디언 연주도 하고 싶다고 했다.

안 시인은 “경북 예천에서 3시간 걸려 처음 왔는데 아! 강원도가 이런 곳이구나” 했다. 그는 “행사 전 잠시 산책을 했는데 올해 처음 본 꽃이 캠프나비에 있어 감동이었다”고 한다. 토크 쇼가 끝나면 청중들도 꼭 보시라고 한 함백꽃이었다. 해발 600m 이상에서만 볼 수 있는 꽃인데 북한 국화로 북한에서는 목란이라고 부른다. 지금 이 옆에 계곡에서 세차게 흐르는 물소리도 한몫 한다고 한다. 두 시인 모두 이런 아름다운 자연 속에서 배명창의 소리도 어울어지면 좋겠다는 바람을 말한다.

본격 시작된 토크에서 이 시인은 자신의 시의 원천은 어려서 자라며 보고 놀았던 시골의 모든 것들이라고 했다. “저 농기구는 왜 저렇게 생겼을까? 농사일을 마치고 자리잡고 쉬고 있는 농기구가 참 아름다웠다”며 자신의 대표 시인 ‘개밥풀’도 그런 자연과 풍경에 대한 관찰과 감성에서 탄생한 산물이라고 했다.

안 시인은 교직에 있을 때 아이들에게 가을 시재로 5년 간 시를 짓게 했는데 너무 천편일률적이었다고 한다. 낙엽, 가을하늘, 단풍, 벼가 읽는 풍경, 고추잠자리 등 제목만 봐도, 굳이 읽지 않아도 뻔한 가을 시에 실망해 ‘그럼 난 가을에 대해 쓰면 뭘 쓸까?’를 고민하다 발상의 전환으로 탄생한 시가 일반인들에게 널리 사랑한 ‘너에게 묻는다’였다는 것이다.

누구나 생각하는 뻔하지 않은 시재를 생각하다 문득 연탄이 떠 올랐다고 한다. 연탄과 가을? 어떻게 연결될까? 시골에서 뜨거운 여름에는 연탄을 안 때다가 낙엽이 지는 가을에 추워지면 연탄을 사용한다는 발상을 한 것이다. 그가 평생 낸 시집에서 ‘연탄’이라는 단어는 아주 적게 썼는데도 언제부턴가 자신은 연탄, 연탄재 시인이 되어 있었다고 한다. 심지어 사람들은 ‘안도현 시인은 가슴이 따듯한 시인일 거다’라고 상상한다고 말했다. 청중 사이에서 웃음이 터졌다.

두 시인 다 어렸을 적 감수성이 예민하고 사물에 대한 인지가 시작될 때 자연의 위대함과 아름다움을 배우고 품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래서 성인이 된 지금의 시들이 어릴 적 기억들 즉 방학 때면 보냈던 큰집, 외갓집 풍경 등의 느낌이 온전히  시 속에 스며들어 있다고 했다. 

나는 이 대목에서 ‘우리 아이들은 자연을 접하는 시간이 과연 얼마나 될까’ 생각해 봤다. 안 시인은 “감성과 아름다움의 원천인 자연을 너무 등한시해 부모세대와 감정의 원천이 다르다”며 “그러니 점점 소통이 안된다”며 아쉬워 한다.

토크쇼 중간중간 두 시인이 듣고자 했던 오늘의 사회자 배명창의 찰진 소리도 여간 감동이 아니었다. 시중의 음반으로는 들을 수 없는 오늘 이 자리에서만 듣고 사라지는 소리였다.

동편재 전문가의 소리가 이 시인의 ‘개밥풀’과 안 시인의 ‘서울로 가는 전봉준’을 담아 내는 오늘밖에 없는 단 하나의 소리는 캠프나비 계곡의 물소리와 어울어져 듣는 참가자 모두를 신선의 경지로 몰아간다. 어느 순간 나도 모르게 울컥했다.

‘개밥풀’ 

아닌 밤중에 일어나
실눈을 뜨고 논귀에서 킁킁거리며
맴도는 개밥풀~ (중략)

방게 물장군들이 지나가도
결코 스크램을 푸는 일 없이
오히려 그들의 등을 타고 앉아
휘파람 불며 불며 저어가노라(중략)

볏집 사이로 빠지는 열기
음력 사월 무논의 개밥풀의 함성
논의 수확을 위하여
우리는 우리의 몸을 함부로 버리며
우리의 자유를 소중히 간직하더니

어느 날 큰 비는 우리를 뿔뿔이 흩어놓았다
개밥풀은 이리저리 전복되어
도처에서 그의 잎파랑이를 햇살에 널리우고(중략)

씨앗이 굵어도 개밥풀은 개밥풀
너희들 봄의 번성을 위하여
우리는 겨울 논바닥에 말라붙는다.

이 시인의 시에 배 명창의 소리를 얹어 들을 수 있는 건 큰 감동이었다.

안 시인의 ‘서울로 가는 전봉준’은 가사 때문인지 더욱 깊이 들어왔다. 이 시간 지나면 다시는 들을 수 없다는 생각에 담고 또 담았다.

‘서울로 가는 전봉준’

눈 내리는 만경(萬頃) 들 건너가네
헤진 짚신에 상투 하나 떠가네
가는 길 그리운 이 아무도 없네
녹두꽃 자지러지게 피면 돌아올 거나
울며 울지 않으며 가는
우리 봉준이
풀잎들이 북향하여 일제히 성긴 머리를 푸네~(중략)

그대 떠나기 전에 우리는
목 쉰 그대의 칼집도 찾아 주지 못하고
조선 호랑이처럼 모여 울어 주지도 못하였네
그보다도 더운 국밥 한 그릇 말아 주지 못하였네
못다 한 그 사랑 원망이라도 하듯
속절없이 눈발은 그치지 않고
한 자 세 치 눈 쌓이는 소리까지 들려오나니~(중략)

우리 성상(聖上) 계옵신 곳 가까이 가서
녹두알 같은 눈물 흘리며 한 목숨 타오르겠네
봉준이 이 사람아(중략)

들꽃들아
그날이 오면 닭 울 때
흰 무명 띠 머리에 두르고 동진강 어귀에 모여
척왜척화 척왜척화 물결 소리에
귀를 기울이라

함백꽃 핀 강원산골에서 유명시인 두 분에게 시와 그들의 삶에 대해 직접 듣고 그 시를 소리로 들려 준 배 명창의 소리는 천상의 조화였다.

양평 두렁농 심범섭 선생(오른쪽)과 배일동 명창이 우정의 악수를 나누고 있다.  

행사가 마무리되고 두 분은 떠나고 밤이 찾아오자 참가자들의 시간이 이어졌다.
이번 참가자들의 면면을 알고는 다시 놀랐다. ‘삼인행 필유아사언'(三人行 必有我師焉)이라 했던가. 두 시인에 버금가는 인생의 스승들이 가득이었다. 20대 청년부터 많게는 80대 어르신까지 경륜을 뛰어 넘는 많은 분들의 삶을 들으며 강원도 밤하늘 쏟아지는 별들도 함께 담아 왔다.

오랜 만에 텐트 아영과 홍천 샘골계곡의 세면이 다소 불편했지만 다음 날 아침까지도 고 박상설 선생의 “마음 껏 땅과 뒹굴자”는 유지를 실천하고 봉사해 준 엘크 와 유족 등 스탭들 노고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니었다.

주인공들도 보였지만 묵묵히 주인공들을 빛나게 했고 소리없이 수고해 주신 분들에게 깊은 감사를 표한다. 내년 행사가 벌써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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