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살 나이 늦지 않았다①] 내 유물은 50년 된 등산화와 검정 고무신 두 켤레

박상설 전문기자의 즐거움 중 하나는 홍천 농막에서 책을 읽는 것이다. 

[아시아엔=박상설 <아시아엔> ‘사람과 자연’ 전문기자. 캠프나비 대표] “잡초처럼 살아가는 할아비 내 생애의 터전은 오지 산골. 나를 개조하는 열망의 땅. 그냥 있는 그대로 숲을 바라보며 보듬으며 그 무엇과도 견주지 않고 잡초처럼 흙에 뿌리내려 낮은 곳에서 비바람에 흔들리며 자유롭고 평화로운 삶의 안식.

습관의 노예에서 즉각 행동하는 일꾼. 편한 삶을 내던지고 열불 나게 재미있는 주말농과 인문학 레저놀이로
내가 나를 고용해 다르게 산다.” (화전민 텃밭에서)

산 속에 사는 노인

말이나 글보다 더 중요한 가치는 바로 행동하는 것이다. 사람은 어떻게 살아왔는가에 따라 습관이 생겨난다. 도시의 박쥐둥지를 박차고 루소, 괴테, 톨스토이 등의 인문학 책을 읽으며 산골에서 호미질을 하다 보니 삶의 의미가 선명해진다.

그래서 나는 집에만 파묻혀 사는 게 싫어 풀벌레소리와 빗소리 그리고 계곡 물소리에 젖어드는 서정적 삶을 좋아하게 됐다. 이렇게 살다보니 목가적 농막 캠핑생활에 중독됐고 노마드 보헤미안의 삶 없이는 잠시도 견뎌낼 수 없는 노인이 됐다. 한편으로 생각하면 이런 삶이 노화를 늦추어 주고 늘 파릇파릇 생동감이 감돌게 만든다.

일상생활이나 일할 때 일어나는 무수한 상념을 보자. 욕망과 경쟁, 미움과 분노, 자책과 실망 등으로 마음 속은 뒤범벅이 돼 들끓는다. 이런 일로 자기 소외 따위를 겪는 일이 제일 힘들다. 그런데 밭일과 산에 가고 캠핑 등의 노동으로 살아가는 삶이 늘어날수록 그동안의 고뇌가 사르르 녹아 없어지는 희한한 경험을 얻게 되었다.

땀 흘려 고생하는 노동선(勞動禪)과 몸 쓰는 휴식을 자연 속에서 펴내면 왜 그런지는 몰라도 마음이 편해지며 근심걱정이 없어졌다. 아마도 잔소리 없는 자연의 치유력이라고나 할까.

바로 이것이었다. 그동안 밥벌이니 생계니 하며 일에만 정신없이 올인해온 삶은 잘못된 핑계였는지도 모른다. 무엇을 위해 사는가? 총체적 삶의 목표는 행복일 것이다. 여가생활과 생계를 위한 삶은 그 어느 쪽도 소홀이 할 수 없는 행복의 기본조건이다. 그런데 잘 살펴보면 밥벌이나 재물 쪽에는 혈안이 되고 여가생활은 노하우를 쌓지 않아도 되는, 그냥 노는 것으로 잘못 살아가고 있다.

여가생활은 그 취향별로 고도의 전문지식을 몸에 익히고 인문학적 감성으로 인생을 이끌어 나가는 즐거움이다. 이런 훈련을 거듭하는 훈련자체가 여가생활의 연속성이라고 할 수 있다.

박상설 선생의 두 신발. 아래 사진은 60살에 얻은 병을 미국 들판을 걸으면서 치료할 때 장면.  

내가 죽은 뒤 유일한 유물은 50년 된 고물딱지 등산화와 검은 고무신 한 켤레씩이다. 그 신발을 홍천 땅에서 가장 후미진 샘골 주말농막에 매달아 놓았다. 샘골 농막은 여가시간에 밭일하며 책을 뒤척이고 쉬는 나만의 두메산골 오두막 피난처다. 이곳은 아득히 먼 옛날 초가삼간 호롱불에 의지해 세월을 보내다 뒷산에 묻힌 화전민 텃밭이다.

멍석 몇 자락만한, 한 뙤기의 흙에 의지해 한 맺힌 삶을 살다 떠난 화전민···. 나는 그가 흙을 움켜쥐고 가슴 치던 서러움의 땅을 호미질하며 그의 꿈을 걸고 시름 달래는 산지기 머슴할아비다.

산을 휘돌아 굽이굽이 흐르는 맑은 계곡물, 그 윗자락에 버려진 작은 텃밭은 나를 늘 불러대는 가난한 쉼터다. 저 깊고 푸른 숲이며, 들꽃이며, 산새소리, 깊은 산속의 적막한 석양, 밤하늘 별들, 초승달, 으스스 스며드는 밤안개···. 졸옹(拙翁)은 실날 같은 생명을 흙에 삭히며 얼마 남지 않은 생을 바람소리 스치듯 숲길을 걷다 떠나고 싶다.

억새 밭의 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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