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흔살 홀몸 노인이 살아내는 인생 제3막
[아시아엔=박상설 <아시아엔> ‘사람과 자연’ 전문기자, 캠프나비 대표, <잘 산다는 것에 대하여> 저자] 세상에서 제일 후지고 낮은 도랑구석에서 끈질기게 살아남아 추어탕감을 매끄럽게 요리저리 피하는 아흔살 청춘.
농막에서 낡아빠진 검정고무신 한 켤레로 살아온 나는 조바심과 자연 사이에 틈새가 벌어지면 모든 것 거두고 발을 옮긴다. 고뇌를 나에게 겨누기보다 길섶에 흘린다. 나를 붙들어 매고 있는 것들을 한걸음 한걸음 산길에 버린다. 숲을 걸으면 나에게 서성이던 근심걱정은 나를 놓아 준다.
낮은 곳으로 더 낮은 나만의 이야기가 있는 세상에 하나뿐인 작은 ‘아나키 나라’…. 때론 아프게 때론 불꽃처럼 나는 다르게 산다. 세상을 다르게 바라보며 살아온 나는 다른 길을 갈 뿐이다.
산에서 살아온 지 오십년, 나무는 자라는 게 분명하지만 자라는 모습을 보여주지 않는 것같이 나의 자라옴도 어느 새 고색고사(古色枯死)의 노송이 되었는데도 철없는 애송이로 논다. 숲을 향해 끝없는 시정(詩情)으로 하루를 애태우며 보내기 일쑤다.
숲에 대한 짝사랑은 광막하고 아득하다. 세상일에 뒤섞이지 않고 산악에서 살아남아 자연의 사치를 한가로이 드리운다.
세상을 멀리 하고 나무와 산에 사는 바람을 만나다
나는 살아오면서 늘 세속과 한발 물러서는 삶을 살아왔다. 세상과 끊어진 채로 쉬어 사는 길 위에서 자연을 흠모하는 독백을 빈곤한 언어로 달랜다. 요즘 샘골에 연이어 드나드니 어느새 들국화 꽃길이 발목을 잡아끈다. 인생과 여행과 숲과 서정(抒情)이 한 뿌리로 엉켜 나를 홀린다. 길 위에서 나무와 바람을 만나, 맑은 계곡 물소리에 설레는 마음 시리다.
걸핏하면 나는 여인을 찾아헤매는 바람난 상사병자(相思病者)처럼 산골짝 오지를 비롯해 버려진 들판 잡초 들녘을 찾아헤매며 눕는다. 석탄가루가 날리는 한 맺힌 광부의 태백탄광 자락에서, 속초의 또순이 함경도 난민마을 비릿한 해변에서, 서해의 망망고도(茫茫孤島) 무인도에서 수많은 날들을 보냈다. 다 잊고 한동안 지내다보면 비로소 안도의 한숨을 쉬고 있는 자기를 만난다. 이해해주는 사람이 없어도 어쩔 수 없고 내게는 달리 길이 없다.
인생은 혼자 가는 것이다, 오늘밤은 어디에서…
오랜 풍찬노숙(風餐露宿)으로 곤궁하고 망가지며 다시 살아나 꽤나 오래 살아냈다. 지난 고생과 지금의 안식이 함께 말을 걸어온다. 마음 속에 늘 시가 와닿는 자연의 상념들이 아스라이 넘실대며 기웃댄다.
밤낮 없이 흐르는 계곡 물소리 언저리에 나부끼는 억새물결…. 가을몸살 그냥 쓸쓸하다. 캠핑의 진수는 해는 저물어 가는데 오늘밤 어디에 누어야할 지 기약 없는 집시로 서성이는 시간대, 바로 그것이다.
‘아~ 그 적막감이여!!’ 이 땅위에 버려진 홀로의 시간. 나는 솔리튜드의 비애를 극진히 사랑한다. 여행은 갈 길이 막혀버린 열정인가? 인생은 혼자 가는 것이다.
삶의 고통을 벗어나기 위해 공부한 게 노동이었다. 땅에 대한 믿음으로 지상의 가장 순수한 땀방울의 ‘노동 선’(勞動 禪)을 택했다. 호미질 하는 동안에는 불안과 막막함, 고뇌 등을 나는 모른다. 남에게 인정받으려 하지 않고 온몸을 던져 유랑삼아 농사일을 한평생 해왔다. 초등학교를 내가 어렸을 때는 소학교라 했는데, 일곱살 1학년 때 집 앞 도랑에 멍석만한 논을 만들었다.
봄의 벼 모종부터 시작해 가을 추수까지 거두었다. 햅쌀을 계란 껍데기 속에 넣어 부엌의 아궁이불에 집혀 소꿉장난 밥을 지어 엄마랑 여동생들과 자랑삼아 나누곤 했다. 그 손바닥 만한 논에도 잠자리며 메뚜기가 놀고 밤에는 반딧불이 별과 대적해 환상을 그려주었다.
똥지게 메고 일하며 공부한 멍청이
대학 때는 제기동의 고려대 앞 개천변에서 살았다. 나는 그 개천을 개간하여 500평이나 되는 밭을 일구었다. 당시에는 화학비료는 전혀 없고 인분을 뿌려 농작물을 경작했다. 나는 똥지게를 메고 집집마다 재래변소에서 인분을 수거해 농사를 지었다. 배추·무·고추·고구마·감자 등을 푸짐하게 거두었다. 열 식구나 되는 대가족의 푸성귀 반찬거리와 가을 김장거리도 자급자족했다.
당시에는 1인당 국민소득이 100달러에도 못 미쳐, 모두 가난하여 때 꺼리가 어려운 처지였다. 도시주변의 농작물을 훔쳐가는 밤도둑이 극심했다. 나는 고구마 밭에 가마니를 이용해 삼각형 움집을 장만하고 밤에는 호롱불빛 아래 책을 펴들고 주경야독으로 도둑 경비를 겸했다. 그뿐 아니라 대학 2학년부터는 대학입학 준비학원인 을지로 3가 국도극장 앞 ‘서울고등학관’에서 야간 수학강사로 일하고 낮에는 옛 경춘철도 신공덕역에 있는(지금의 성북역과 태능 육사역 사이) 서울공대를 다녔다.
말하자면 1인3역을 하는 가운데, 홍능 숲에 가서 소나무뿌리를 캐다 장작 대용으로 썼으니 1인4역을 해낸 셈이다.
1인4역···끝내 칭찬을 먹고 산 바보
부모나 누가 시켜서 한 일이 아니고 내가 좋아서 자진해서 한 노동이다. 그런데 일을 하면서 곰곰이 생각해보니 마을주변에서 대학생이 공부하며 똥지게를 마다않고 농사 짓는 것은 처음 봤다며 칭송이 자자했다. 그렇게 띠워주는 비행기에 그 올라타고 만 것이다. 칭찬에 속아 점점 기승을 부리며 죽기살기로 일을 해냈다. 하기야 더 근본적인 원인은 인간 개인에게 각인된 유전자의 본태적 행위 표출이지만 그 표상에 불을 지르는 것은 인간사회에서의 칭찬과 격려 등 무상의 정신적 포상이 결정적 결과를 초래한다고 믿는다.
“사람은 칭찬을 먹고 사는가 보다.” 당시에는 모두 보릿고개를 넘기기 어려운 극빈한 생활 속에서 자녀를 대학에 보낸다는 것은 엄두도 못낼 때다. 길에서 대학생을 만난다는 것은 요즘으로 말하면 박사학위를 가진 사람을 만나기보다 더 드문 일이다. 더구나 여자형제만 7명에 귀한 외아들 학생이 기특하다며 “효자 났다”는 소문에 점점 함정에 빠져들어 오늘날, ‘깐돌이’가 도랑의 미꾸라지로 흙탕물 속의 제일 얕은 곳에서 세상을 훔쳐보며 끈질기게 살아남은 연유이기도 하다.
소가 되어 ‘손쟁기’ 메고 밭가는 촌놈
30년 전 밭을 갈 때는 소를 이용했다. 큰 고랑은 소가 하지만 이랑과 작은 골을 만드는 작업은 사람이 쟁기를 메고 소처럼 일궜다. 요즘같은 세상에선 무척 기이하게 보일 것이다. ‘손쟁기’라는 기구로 밭을 일군다. 쟁깃술이라고 부르는 나무에 보습을 끼우고 그 쟁깃술 밑에 다시 외발 바퀴를 달아 만든 것이 손쟁기다.
누구 한사람이 쟁기에 매단 밧줄을 어깨에 메고 앞에서 소처럼 끌어야 한다. 소가 되어 끄는 사람은 끙끙거리며 앞으로 나가고 뒤에서는 “이랴~” “워워” 하며 소몰이 소리를 내질러 나간다. 장난 삼아 “이놈의 소가” “이놈의 소가” 하며 노래자락 흥겹게 시름을 달랜다. 나의 샘골 주말농원에서는 지금도 ‘손쟁기’로 밭을 간다.
‘노동선’ (勞動 禪)에 미치다
농사일은 노동이며 마음공부다. 이 노동을 ‘勞動 禪’이라고 한다. 노동과 마음공부를 따로 분리하지 않고 힘든 노동이 곧 마음공부가 될 수 있도록 일상생활을 행동을 앞세워 꾸려나간다. 중국 당대의 선사인 백장(百丈)은 ‘백장청규’(百丈淸規)를 통해 “하루 일하지 않으면 하루 먹지 말라”(一日不作一日不食)고 하였다. 당시의 불교적 관행은 탁발을 통해 먹을 것을 해결하였지만 그는 농경사회 속에서 노동을 통해 자급자족 체제를 세웠다.
그 노동이 바로 ‘보청’(普請)인 공동 품앗이다. 이른바 ‘선농일치’(禪農一致)의 ‘농업성전’(農業聖典)을 말한다. 나의 캠프 나비 주말농원의 정신적 뿌리는 인간 내면의 ‘소박한 삶의 풍요’를 근원으로 하는 가치다. 하지만 ‘별무기득’(別無奇得) 즉 특별나게 꾸밈을 하지 말고 자유롭고 자립적으로 자각하여 편안하게 살 일이다.
‘勞動 禪’은 삶의 존재방식의 총화가치라고 생각하면 된다. 꼭 농사만의 노동이 아니라 정신적·육체적 노동가치를 망라하는 뜻이다. 나의 경우 ‘勞動 禪’에 관심을 집중한 까닭은 어려서부터의 농사노동이 몸에 밴 삶이 좀더 실존적이기를 바랐으며, ‘옥상옥’ 식으로 칭찬을 배부르게 먹어치우는 욕심쟁이였나 보다. 밭 갈고 씨앗 뿌리며 호미질할 때마다 늘 겪는 것이지만 무슨 일이든 집중해서 바르게 한다는 것은 무척 어렵다.
하여 농사일 말고 딴 어떠한 일을 할 때도 무수한 상념이 일어나 일을 망치거나 일을 해도 딴전 피우기 일쑤다. 그래 이런 잡다한 습성을 바로잡게 하는 자세가 바로 ‘勞動 禪’의 참된 훈련에서 바른 삶을 살게 된다고 믿는다.
어떤 시공간에서 무슨 일을 할 때, 그 행위는 우주에서 유일무이한 자기만의 행위다. 그 행위에 온 정성을 기울여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당위성은 알면서도 습관이 망쳐놓는 경우가 허다하다. 일에 집중하지 못하고 온전하게 존재하지 못함으로써 좌절하는 경우가 많다.
이때 이런 생각으로 전환해 보자. 물아일체(物我一體) 즉 자신과 호미와 밭을 매는 행위 모두가 같이 움직이며, 일에 몰입할 때 일도 잘 되고 행복감을 느끼는 법이다. 실존의 3대 테제는 ‘지금’ ‘여기’ 그리고 ‘자기’다. 하지만 그 ‘자기’는 지금 여기에 존재하지 않고 구만리 장천 어디론가 달린다. 그래서 주체성을 잃고 마는 것이다. 이런 삶을 벗어나기 위해 진실된 땅에서 배워 올린 ‘勞動 禪’을 인간이 살아 움직이는 동안 모든 일의 교과서로 더하여 성전으로 삼자는 게 ‘산에 사는 늙은 촌부’의 이야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