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 아흔넷 나는 자연인···한눈마저 안보여도, 글 읽고 또 쓰련다”
[아시아엔=박상설 <아시아엔> ‘사람과 자연’ 전문기자] “인생이 뭔지 모르시겠죠? 94살이지만 아직 청년의 기력과 기상을 지닌 본인에게 물어보시죠.”
이런 말이 입 속을 맴돌다 문득 “아니야, 안돼” 하고 멈칫한다. 아직도 스스로 젊은이라고 자처하는 나도 시력은 어쩔 수 없다. 낳은 지 얼마 안돼 한쪽 시력을 잃고 나머지 한눈으로 90년 이상 버텨왔지만, 몇 년 전 황반변성이 찾아왔다.
의사 말로는 갈수록 나빠져 아무 것도 못 볼 수도 있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이마를 자판에 바짝 붙이고도 글자가 희미하기만 하다. 원고지 한두 장 분량의 글을 쓰려면 몇 시간 낑낑 매야 한다.
그래도 먼데서 누군가가 찾아오겠다고 하면 말리기는커녕 설레기만 한다.
지난 6월 초순 어느 날 오전 초로의 여성이 덮어놓고 차를 몰고 전북 완주에서 홍천 샘골로 찾아왔다. 내 책을 읽은 독자라며 “새벽 5시 출발해 왔으니 책에 사인을 해달라”고 떼를 쓴다. 게다가 샘골 텐트에서 묵고 가기까지 했다. 그녀는 친구들을 동행해 왔다.
이름은 최은자, 나는 그에게 은방울꽃이라는 이쁜 별명을 지어주었다. 그녀는 규모가 제법 있는 제약회사 총무과장으로 63살 나이보다 어려 보였다.
오는 7월31일 1박 2일로 변산반도에 있는 자신의 별장 전원주택에서 두번째 담소 모임을 하자고 한다.
그녀는 양주의 내집까지 찾아왔기에 유머1번지 초대 작가인 김재화 박사의 스튜디오로 데리고 가 유튜브 영상을 찍었다.
뜻하지 않은 만남의 기쁨이 종착점에 다다른 내 시력을 대신해 주는 것 같다. 이 글을 쓰면서 컴퓨터에 저장돼 있는 사진 몇장을 아시아엔 이상기 발행인에게 보냈다. 지난 겨울부터 봄을 지난 최근까지의 사진이다. 이들이 어떻게 재구성돼 독자들을 찾아갈지 많이 궁금하다. 나이가 들수록 급해지는 건 어찌할 도리가 없다.
글, 그래도 쓰련다. 밀턴은 두눈을 모두 잃고도 불후의 명작 <실낙원>을 남기지 않았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