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추 백담사에서 만난 전두환 그림자와 노태우 죽음

백담사 유배중 전두환 이순자씨 부부. 1989년께로 추정된다.

[아시아엔=박상설 <아시아엔> ‘사람과 자연’ 전문기자] 지난 일요일(10월 24일) 가을 길 따라 백담사를 다녀왔다. 젊어서부터 설악산을 무척이나 올랐지만 유독 백담사 계곡의 대리석 같은 기암절벽에 요동치며 흐르는 옥수같은 경관을 못 잊어서다.

등산할 때 언제나 수려한 백담사 계곡을 2시간쯤 넋을 잃고 걷다보면 그 그리운 정적의 백담사를 만나게 된다.

절에 들어 경건히 묵도를 올리고 심오한 마음으로 오랜 역사에 잠긴다. 서기 647년 한계사로 시작하여 1783년 현재의 사찰을 건립한 그 원대한 사적(寺跡)에 숭배를 올린다.

늘 그래왔듯이 근대 역사를 회상하며 전두환 전 대통령이 은거했던 거처에서 묵념하고 이 나라의 안녕을 기원한다.

1945년 해방 후의 우리나라 정국과 민생은 큰 소용돌이 속에 불행한 나날을 겪어왔다.

이승만 대통령의 하야 사건 6.25전쟁으로 폐허가 된 나라를 박정희 대통령이 경제부흥을 일으켜 지금의 세계 10위권의 수출국 반열의 토대가 됐다. 중진국에 진입해 4만달러 GNP를 달성했다.

나라를 근심하는 긴 이야기는 다 제쳐놓고 백담사를 두루 허리굽혀 한발한발 옮기며 전두환 전 대통령을 떠올려본다.

1987년 6월10일 민정당 노태우 대선후보(왼쪽)와 손을 맞잡고 있는 전두환 대통령

박정희 대통령 암살 후 이 나라 운명은 순간을 가늠할 수 없는 등화풍전였다. 북한의 재남침의 위기 아래 국내 정국의 대혼란, 그 와중에 경제 정체와 사회질서 붕괴 등 그야말로 일시에 나라 사정이 무너져버릴 징조였다.

여야나 진보 보수를 따지고 어느 한편에 편들자는 것이 아니다. 오직 대한민국 국권과 국민의 평화와 안정을 염려한다. 또한 경제의 지속 발전과 공평한 분배, 국제사회에서의 한국의 공고한 국력유지를 생각한다.

경제발전, 국가안보, 국제경쟁력 그리고 국가지도자···. 이런 단어들이 백담사에 769일간 유배돼 있던 전두환 대통령과 오버랩 됐다.

법정에서 전두환(오른쪽) 노태우 두 전직대통령

1979년 12.12사태에서 1980년 5.18 광주에 이르기까지 40년 넘게 원죄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전두환 전 대통령. 치매와 백혈병으로 병원에 입원까지 한 아흔 살 전직대통령에 대해 연민을 느끼는 것은 내가 그보다 서너살 더 많아서일까?

아니면 나 역시 그의 자리에 있었다면 똑같은 방식으로 일처리를 했었을 구세대이기 때문일까? 마침 그의 12.12 동지이자, 후임자인 노태우 대통령이 오늘 눈을 감았다. 전두환은 친구 노태우의 죽음에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아니 그의 病歷으로 노태우가 누군지조차 잊고 있는 것은 아닐까? 만추 백담사에서의 回憶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내게 다가온다.

백담사 입구에서 박상설 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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