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깐 묵상] 인간의 세가지 명(命)···생명·수명·사명

“생명은 살아있음 그 자체입니다. 수명은 생명의 길이입니다. 사명은 생명의 이유입니다.” 사진은 덕유산 정상의 일출 <사진 = 박상설 독자 제공>

 

[아시아엔=석문섭 베이직교회 목사] “초상집에 가는 것이 잔칫집에 가는 것보다 나으니 모든 사람의 끝이 이와 같이 됨이라”(전도서 7:2, ㅇ통독 전도서 5-8장)

사람들은 발생 가능성이 아주 희박한 사고를 염두에 두고 보험에 가입합니다.

일어날지 일어나지 않을지 알 수 없는 일이지만 만일의 상황을 대비해서 적지 않은 비용을 치릅니다. 그런데 100% 일어나는 일에는 의외로 관심이 적습니다.

죽음만큼 확실한 미래가 어디 있을까요? 산다는 것은 죽어가는 것입니다. 살면 살수록 죽음에 더 가까워집니다. 모든 생명은 존재한 시점부터 죽음을 향해 나아가도록 방향이 결정되어 있습니다.

예외는 없습니다. 다만, 인식하고 싶지 않을 뿐입니다.

“초상집에 가는 것이 잔칫집에 가는 것보다 더 낫다. 살아 있는 사람은 누구나 죽는다는 것을 명심하여야 한다.”(잠 7:2, 새번역)

하나님께서는 인간에게 세 가지 명(命)을 주셨습니다.

생명과 수명과 사명입니다. 생명은 살아있음 그 자체입니다. 수명은 생명의 길이입니다. 사명은 생명의 이유입니다.

세상은 온통 수명에 관한 관심으로 가득하지만 성경은 온통 사명에 관한 관심으로 가득합니다.

수명은 알 수 없도록 가려놓으셨지만 사명은 발견할 수 있도록 허락하셨습니다.

“그가 비록 천 년의 갑절을 산다 할지라도 행복을 보지 못하면 마침내 다 한 곳으로 돌아가는 것뿐이 아니냐”(전 6:6)

그 행복은 어떻게 주어지는 걸까요?

“내가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언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조차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행 20:24)

목숨 걸만한 일을 하고 있다는 것만큼 행복한 일이 있을까요?

죽음을 준비할 수 있는 단 한 번의 소중한 기회, 삶. 우리는 ‘그 기회’를 잔칫집보다는 장례식장에서 더 깊이 배울 뿐입니다.

“지혜자의 마음은 초상집에 있으되 우매한 자의 마음은 혼인집에 있느니라”(잠 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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