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두환 대통령 백담사 ‘극락보전’ 현판 어디로 갔나?
[아시아엔=조용경 포스코엔지니어링 부회장 역임, <뜻밖의 미얀마> 저자] 12월 29일 오전, 울적한 마음을 주체하지 못해 5년 전 가을에 마지막으로 갔던 백담사로 차를 몰았다. 과히 멀지는 않았지만, 용대리 백담사 입구 주차장에 도착한 것이 오후 1시 50분, 3시간 넘게 걸렸다. 거기서 셔틀버스를 타고 백담사에 도착하여 다시 밖으로 나와 일주문 앞에서부터 걸었다.
눈 덮인 고즈넉한 일주문을 거쳐 계곡을 가로지르는 수심교(修心橋)에서 바라본 백담사 전경은 너무도 아름다와 일순간에 마음이 평온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금강문(金剛門)과 불이문(不貳門)을 지나니, 5년 여 전과 다름없이 주법당인 극락보전(極樂寶殿)이 좌우로 법화루와 화엄실의 보필을 받으며 당당한 모습으로 서 있었다.
참배를 드리기 전 주변을 한 바퀴 돌면서 3면 벽에 그려진 심우도(尋牛圖)를 찬찬히 감상하고 다시 정면에 섰을 때 뭔가 5년 전 기억과는 달라진 게 있다는 걸 느꼈다.
‘과연 뭘까’ 하고 곰곰히 생각해보니 그건 바로 ‘극락보전의 현판’이었다.
5년 전에는 썩 잘 쓴 글씨는 아니었지만, 그곳에서 한동안 유배생활을 했던 전두환 대통령이 쓴 ‘극락보전’ 현판이 걸려 있었던 것으로 기억이 되는데, 어느 사이엔가 그 글씨는 낯 모르는 사람의 글씨로 바뀌어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극락보전 앞 계단에 앉아서 5년 전에 블로그에 올린 백담사 방문기를 확인해 보니 내 기억이 정확했다.
5년 전에 그곳에 걸려있던 현판에는 분명 ‘전두환 전 대통령’이 쓴 현판이 있었고, 끝에 ‘전두환인'(全斗煥印) ‘일해'(日海)라는 관지가 선명했었다.
나는 당시 여행기에 이런 글을 남겼었다.
“세상으로부터 쿠데타의 주역으로 손가락질 당하고 이곳에서 유배생활을 하다가, 끝내는 세상의 법에 의해 단죄받았던 전두환 전 대통령…그런데, 그러한 세상의 훼예포폄과 무관하게 이곳에서 은둔했던 전두환 전 대통령이 쓴 현판을 아마도 ‘그것은 이미 기정사실이 된 지나간 역사’라는 의미로 꿋꿋하게 주법당에 걸어두고 있는 백담사의 스님들이 참 대단하고, 그 의중을 알 수는 없지만 불교는 참 괜찮은 종교라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한 시간 여에 걸쳐 백담사를 둘러보고, 영상을 촬영하고 돌아섰는데, 내가 개인적으로 전두환 전 대통령을 좋아하는 것은 아니지만, 호불호와 무관하게 뭔가 백담사에 대해, 그리고 불교에 대해 배신감 비슷한 느낌을 가졌다.
물론 지난 5년 간 여러 가지 정치적 격변이 일어나기는 했지만, 굳이 그 현판을 바꿔 달아야 했다면, 왜 그랬는지에 대한 설명 정도는 있었어야 하지 않았을까?
태고종 본산인 서울 봉원사에는 지금도 ‘이완용’이 쓴 주련이 걸려있고, 부여의 고란사에는 ‘이기붕’이 쓴 ‘회고루’ 현판도 그대로 남아 있다. 그런 것이 역사를 대하는 겸손한 자세가 아닌가 싶기도 하다.
돌아오는 내내 그 생각이 머리를 떠나지 않았고, 내가 내린 결론은 하나였다.
“세상에 변하지 않는 것은 하나도 없다. 민초들이 태산처럼 믿고 의지하는 부처님조차도…”
백담다원 앞에 붙어있는 중국 조주 스님의 어록은 이러했다.
(문) 불도가 무엇입니까?
(답) 차나 한 잔 들고 가게나!
날씨도 차고, 목도 말랐지만, 차를 마시고 싶지 않았고, 15분 정도를 기다려서 셔틀버스를 타고 내려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