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간] ‘설악무산의 방할’···조오현 스님의 ‘꾸짖음’

<설악무산의 방할>(棒碣) 표지

5월 31일은 무산 조오현 스님(1932~2018년) 5주기입니다. 스님은 이런 임종게를 남기고 떠났습니다. “천방지축 기고만장 허장성세로 살다 보니 온몸에 털이 나고 이마에 뿔이 돋는구나 억!” 스님은 또 “깨달았다고 저 혼자 산중에 앉아서 잘 살면 뭐하겠어요? 깨달았으면 깨달음의 삶을 살아야 할 게 아닌가!”라며 “부처 될 생각 말고, 화두에 속지 말라”고 했습니다. <아시아엔>은  가까이에서 스님을 모셔온 김병무·홍사성 두 시인이 함께 엮은 <설악무산의 방할>(인북스, 2023년 3월 8일 발행)을 몇차례 소개합니다. <편집자>

스님의 월인천강(月印千江) 가르침
법어·설법·기고·서발문·대담 등 묶어 
시대와 고락 함께, 세인 존경받은 선승

웃는 스님 

조오현(曺五鉉)으로 알려진 설악무산(1932~2018) 스님은 경남 밀양 출생으로 젊은 시절 금오산 토굴에서 6년 고행한 후 설악산 신흥사에서 성준 화상을 법사로 건당했다. 뒷날 신흥사 조실이 되어 설악산문을 재건했으며, 조계종 기본선원 조실, 조계종 원로의원으로 추대되었다. 만년에는 백담사 무문관에서 4년 동안 폐관정진하다 입적했다.

저술로는 <벽암록 역해> <무문관 역해> <백유경 선해> <선문선답> 등이 있다. 일찍이 시조시인으로 등단한 스님은 한글 선시조를 개척하여 현대 한국문학사에 큰 자취를 남겼으며, 시집으로 <심우도> <절간 이야기> <아득한 성자> <적멸을 위하여> 등이 있다.

이 책은 그가 백담사 무금선원, 신흥사 향성선원 등에서 안거 수행하는 수좌들에게 설한 결제와 해제 법어들과 여러 다양한 법회에서 대중들을 상대로 설한 말씀 등을 육성 그대로 집록하고, 각종 저서에 남긴 서문, 기고문, 서한, 언론과의 인터뷰 등을 수록한 법어집이다.

조오현 스님은 해골상을 늘 곁에 두고 있었다. 


깨달음의 사회적 실천을 강조한 선승의 방(棒)과 할(喝)

탐진치(貪瞋痴)에 빠지려는 자신을 경계하고 이를 극복하려는 노력을 일상화했던 스님에게 수행이란 고매한 무엇이 아니라 일상에서 ‘더 나누고, 더 낮추고, 더 버리는 일’을 반복적으로 실천하는 것이었다.

이 책의 1장 상당법어(上堂法語)와 2장 향상일로(向上一路)에서는 수행의 목적이 단순한 깨달음에 그치지 않고 깨달은 내용대로 살아가는 깨달음의 실천이 중요함을 끊임없이 강조하고 있다.

특히 화두 참선을 금과옥조로 여기는 수좌들에게, 옛 선사들의 화두에 집착할 것이 아니라 세월호 유족들과 아픔을 함께했던 프란치스코 교황을 본받아 당면한 사회현실을 외면하지 말라고 일갈한 내용이나 스티브 잡스가 스탠퍼드대 졸업식에서 행한 연설처럼 항상 지식을 갈구하고 늘 새로움을 추구하는 자세를 견지할 것을 질타한 법어는 세간에서 큰 반향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2015년 3월 미국 버클리대학교에서 열린 ‘권영민 교수와 대담’ 중 만면에 미소를 띠고 있는 조오현 스님


촌철살인의 독창적인 언구(言句)로 느끼는 대문장가의 체취

이 책의 3장 본지풍광(本地風光)과 4장 간담상조(肝膽相照)는 돌올한 문학인으로 한국 선시조의 새로운 경지를 개척했다는 평가를 받는 스님이 자신이 저술한 저서의 서문과 기고문, 고 이영희 교수 등과 주고받은 편지글, 여러 문학인의 작품을 읽고 남긴 평설과 독후감, 지인들의 요청에 부응한 추천사 등이 망라되어 있다.

미국 샌프란시스코의 어느 식당에서 허드렛일을 하며 한국의 시조를 미국인들에게 소개하여 찬사를 받았던 일화를 공개하는 글이나, 자신이 해제한 <벽암록>의 서문 ‘사족에 대한 변명’은 뛰어난 명문으로 많은 사람을 감동시킨 바 있다. 또한 생생하게 살아 있는 언구를 활용하여 선후배 문인들의 서책에 남긴 촌철살인의 문장들은 수준 높은 문학적 성취와 통찰력을 지닌 대문장가로서의 면모를 그대로 엿볼 수 있다.

2012년 11월1일 조오현 스님(오른쪽)이 압델라힘 엘알람 모로코작가연합회장(가운데), 바이올린 연주자 배제니씨(왼쪽)와 책을 펼쳐 보며 얘기하고 있다.


탁월한 안목과 거침없는 견해가 드러나는 언론 인터뷰

평소 국가지도자로부터 시골 촌부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인물들과 허물없이 교유했던 스님이지만, 신문과의 인터뷰는 극구 사양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만년에는 “부처니 깨달음이니 하는 것도 내버려야 하는 처지에 부끄러운 줄 모르고 상도 받고 신문에 나오니 머리에 뿔 돋은 짐승이 되는 것” 같은 느낌이 들어서 기자들을 꺼려했다고 한다.

그러나 스님의 명성을 듣고 끈질기게 대담을 요청하여 마련된 인터뷰 자리에서는 대방무외한 거침없는 언행으로 무애자재한 모습을 과시했다.

스스로 낙승(落僧)이라고 자신을 낮추며 불교계와 세상을 향해 쓴소리를 마다하지 않은 우리 시대 큰 스승의 모습이 실린 5장 산중문답(山中問答)은 그래서 소중한 자료이다. 5장 말미에는 미국 버클리대에서 교수, 학생들을 대상으로 불교관과 문학세계를 펼쳐 보인 ‘영혼의 울림’이라는 대담이 실려 있다.

이토록 천진난만할 수 있을까? 활짝 웃는 조오현 스님. 왼쪽 책은 아시라프 달리 아시아기자협회 회장(이집트 국적)이 아랍어로 낸 <조오현 시선집>


무애자재하게 살다 간 설악무산의 한국불교를 위한 일갈

평소 스님은 깨달은 선승들이 많은데 깨달음의 삶을 사는 선승은 만나기 어렵다고 한국불교에 비판의 목소리를 높여 왔다. 욕망의 크기를 줄여야 행복해진다고 강조하며 동체대비를 솔선수범하며 살다 간 스님의 삶은 승속을 막론하고 많은 사람에게 큰 감동을 주었다.

그동안 <설악무산 그 흔적과 기억> <설악무산의 문학 그 깊이와 넓이> <설악무산의 불교 그 깊이와 넓이> 등이 출간되어 설악당 무산 스님이 남긴 가르침에 대한 이해를 넓힐 수 있었다. 그리고 이 책에 실린 법문들로 앎과 삶의 일치를 추구한 그의 삶과 사상을 사무치게 깨달을 수 있다.

“절간에 진리 없고, 명산대찰에 선지식 없다”는 스님의 방(棒)과 할(喝)을 한국불교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궁구하는 데 좋은 법장(法藏)으로 삼자는 것이 5월 31일 조오현 스님 열반 5주기를 맞아 이 책을 펴낸 엮은이들의 간절한 바람이다.

| 엮은이 |
김병무 시인
삼척 출생. 2006년 <유심> 등단. 도서출판 불교시대사 대표, 성준장학재단 이사장 역임. 현재 설악·만해사상실천선양회 감사

홍사성 시인
강원도 강릉 출생. 2007년 <시와 시학>으로 등단. 불교신문 주필, 불교방송 방송본부장 역임. 현재 <불교평론> 주간.

| 목차 |
엮은이의 말
오도송
1장 / 상당법어(上堂法語)
염장이 이야기가 팔만대장경
교황의 화두와 선승의 화두
깨달은 사람답게 살라
부처 될 생각 말고, 화두에 속지 말고
과분한 법어
마음이 불안하다면
늘 배고파라, 늘 어리석어라
마음속 찰간(刹竿)을 꺾으라
눈밭에서 화두를 들라
본 대로 행하고 들은 대로 행하라
매화는 향기를 팔지 않는다
누가 한국불교를 만만하다 하는가
아파하지 않으면 불교가 아니다
서로 한 번 마주 봅시다
인생을 허비하지 말라
해골이 나의 본래 면목

2장 / 향상일로(向上一路)
설악산은 한국 선종의 성지
설악산문을 현판하는 뜻
진리의 말씀 울리는 대법고
연화장세계를 온 누리에
살인도냐 활인검이냐
지도자의 네 가지 덕목
오바마와 육조혜능
우란분재 제대로 하는 법
출가 수행자가 가야 할 길
재가 신도가 가야 할 길

3장 / 본지풍광(本地風光)
‘사족(蛇足)’에 대한 변명
아득한 성자
여기, 섬광의 지혜를 보라
사람의 길 축생의 길
벌거벗은 나를 보여주노니
나는 뱃머리에 졸고 있는 사공
물속에 잠긴 달을 건지려
벼락 맞으러 왔습니다
앞산은 첩첩하고 뒷산은 중중하다
고암 노사의 가르침
마음과 마음의 만남 40여 년
이롱토설(耳聾吐舌)의 명저를 읽고
용서하되 잊지는 말자
아귀의 어리석음
부처님오신날 아침에
부처님이 세상에 오신 곳
똥꾼의 손을 잡은 부처님
천고에 빛날 명승도량 일구어야
낙산사 복원과 <신낙산사지>
온몸을 보시한 토끼처럼
백척간두에서 한 발 더
남과 북은 본래 한 몸
曹溪宗 救宗扶法宗匠 聲準和尙 塔碑銘

4장 / 간담상조(肝膽相照)
발(跋)
굴방(屈棒)
시조에 평생을 바친 어른
삼천대천에 가득한 훈향
천성미답의 길을 간 출격장부
마음 가는 대로 붓 가는 대로
임운자재(任運自在)의 법주(法主)
머리맡에 두고 읽고 또 읽겠습니다
종지기 같고 부목 같은 너른뫼 선생
늙은이 자꾸 놀래키지 말게
쌀밥 위에 꽁보리밥 덮던 이모 같은
귀기(鬼氣) 흐르는 장구(章句)
절학도인(絶學道人) 오세영
김재홍 박사는 만해 연구의 대가
한거호래(漢去胡來)
아미타 48원을 다 이루소서
중생의 고통이 끝날 때까지
‘맹구우목’의 인연을 기뻐하며
우리 시대 스승들의 감로법문
참사람의 진면목(眞面目)
일필휘지로 되살린 채근담

5장 / 산중문답(山中問答)
설악산의 ‘낙승(落僧)’ 조오현 스님
매 순간 윤회인데 어찌 대충 살겠는가
모두가 고해에 배 띄운 선장들
나와 남의 경계를 허물어라
오직 간택하는 마음을 버린다면
욕망의 크기 줄이면 행복은 더 커져
부처님오신날 맞은 무산오현 스님
내 모습 겸허하게 돌아보는 날
참으로 좋은 말은 입이 없어야
“허상 붙들고 발버둥 친 평생”
“평생 살아온 삶도 결국 아지랑이”
나누고, 낮추고, 버리면 행복해진다
오현 스님과 차 한잔 나누며
영혼의 울림
임종게

조오현 스님이 백담사 눈길을 걷고 있다


| 책 속으로 |

한국에는 깨달은 선승들이 많은데 깨달음의 삶을 사는 선승은 만나기 어렵다고 사람들은 말합니다. 화두를 타파하면 부처가 된다고 합니다. 부처가 왜 존재합니까? 중생이 있기 때문입니다. 불심의 근원은 중생입니다. 중생이 없으면 부처가 필요 없습니다. 중생이 없는데 부처가 왜 필요합니까? 프란치스코 교황 이분이 세월호 유족들과 고통을 같이하듯이 중생과 함께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 선승들의 화두도 오늘의 문제가 되어야 한다고 나는 생각합니다. 오늘을 살아가며 경험하는 우리 시대의 아픔들 그 우비고뇌(憂悲苦惱)가 화두가 되어야 한다는 말입니다.(P.31)

돌이켜보면 사내로 태어나 평생을 그렇게 허송했으니 중이라고 할 수도 없다. 오늘 망북촌(望北村)의 영마루에 올라 내가 나를 바라보니 어느덧 몸은 뉘엿뉘엿한 해가 되었고, 생각은 구부러진 등골뼈로 다 드러나고 말았다. 생각하면 조금은 슬프다. 누구는 약관에 ‘앉아서 천하 사람의 혀끝을 끊어 버렸다(坐斷天下人舌頭)’고 하는데 장발(杖鉢)을 지닌 덕에 산수간(山水間)에서 공양까지 받고도 불은(佛恩)에 답하지 못했으니 남은 것은 백랑도천(白浪滔天)의 비탄뿐이다.(P.191)

오늘의 고통 중생의 아픔을 화두로 삼아야 합니다. 중생이 없으면 부처도 깨달음도 없습니다. 그러므로 중생의 아픔을 내 아픔으로 받아들이면, 몸에 힘을 다 빼고 중생을 바라보면, 손발톱이 흐물흐물 다 물러 빠지면 중생의 아픔이 내 아픔이 됩니다. 중생의 아픔이 내 아픔이 돼야 중생과 한 몸이 되고, 한 몸이 되어 사무치고 사무쳐야, 사무침이 다 해야 “내 이름을 듣는 이는 삼악도를 벗어나고 내 모습을 보는 이는 해탈”을 하는 것입니다.(P.90)

비구(比丘)나 시인으로는 경허를 만날 수 없었다. 동대문시장 그 주변 구로동 공단 또는 막노동판 아니라면 생선 비린내가 물씬 번지는 어촌 주막 그런 곳에 가 있을 때만이 경허를 만날 수 있었다. 그런 곳은 내가 나로부터 무한정 떠나고 떠나는 길목이자 결별의 순간인 것이다. 그러므로 나는 비구나 시인이길 원하지 않는다. 항시 나로부터 무한정 떠나고 떠나가고 싶을 뿐이다.(P.203)

너른뫼 선생은 명동성당 같은 곳에서 만나면, 앞면은 그곳 종지기 같고 뒷모습은 추기경 같다. 그런가 하면 가야산 해인사 같은 곳에서 만나면, 앞면은 그곳 방장(方丈) 같고 뒷모습은 부목(負木) 같다. 선생의 서화는 산진수회처(山盡水廻處)의 정자와 묵향이고, 장구(章句)는 함몰만(陷沒灣) 모래펄에 앉았던 기러기 떼가 날아간 자리에 남아 있는 울음이다.-설악산 낙승(落僧) 조오현(P.2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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