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욕의 90년 삶 노태우 대통령의 ‘아름다운 마무리’

88서울올림픽 개막식에 참석한 노태우 대통령 부처. 88올림픽은 그의 평생친구인 전두환 대통령이 유치하고 노 대통령이 성공적으로 마무리했다. <사진 연합>

[아시아엔=김덕권 원불교문인협회 명예회장] 26일 영면에 든 노태우 전대통령이 5·18 희생자들에게 용서를 구하며, 모든 일에 무한 책임을 갖는다는 내용의 유언을 남겼다고 유족측이 전했다. 아들 노재헌 변호사가 밝힌 내용이다.

“대통령을 하셨고, 그 이후에 국가에 대해 이것저것 생각과 책임이 많으셨기 때문에, 잘하셨던 일, 못하셨던 일 다 본인의 무한책임이라고 생각하고 계셨습니다. 특히 5.18 희생자에 대한 가슴 아픈 부분이나 또 그 외에도 재임시, 또 재임 안하셨을 때 일어난 여러가지 일들에 대해서 본인의 책임과 과오가 있었다면, 너그럽게 용서해 주시고 또 역사의 나쁜 면은 본인이 다 짊어지고 가시겠다, 앞으로 세대는 희망을 갖고 살았으면 좋겠다, 그런 말씀을 평소에 쭉 하셨습니다. 돌아가시기 전 육성으로 남기진 못했지만 평소에 하셨던 말씀을 간단하게 정리해 말씀드렸습니다.”

노태우 대통령이 1988년 ‘7.7선언’을 밝히고 있다. 그는 청와대에서 평화통일정책자문회의 주최 국내외 종교인 학자회의 참석자를 위한 오찬연설에서 “7,7 선언의 참뜻은 남과 북이 40년 이상 계속된 대결과 적대관계를 극복해 통일의 길을 함께 닦아 나갈 것”이라고 천명했다. 사진은 문화방송 보도 캡처. 당시 이 보도는 더불어민주당 20대 국회의원을 지낸 김성수 기자 몫이었다. 

우리는 인생을 아름답게 보고 살까, 아니면 고해(苦海)로 보고 살까? 보는 각도에 따라서 같은 인생을 누구는 행복할 것이고, 누구는 고락(苦樂)이 반반이라 할 것이며, 누구는 괴로운 바다에 빠져 허우적거리다가 소리 없이 떠나 갈 것이다.

노 전대통령은 참회하고 반성하며 인생을 아름답게 장식했다. 부정축재로 모은 재산을 국가에 자진반납하고 자식이 대신 광주에 내려가 사죄도 했다.

자신이 원하는 꿈을 이뤄 인생을 변화시키려 한다면, 지난날을 참회하고 나머지 인생을 아름답게 살아야 한다.

아름다운 인생은 어떤 것일까? 어떤 사람이 급한 볼 일이 있어서 외출을 했다. 뭔가 중요한 것을 결정해야 하는 일이었기에, 출발 전부터 신경이 예민해져 있었다. 그래서 마음을 차분하게 하려고 동네 커피전문점에 들어가 카페라테 한잔을 주문했다.

커피를 받아들고 나오던 중 유리문에 살짝 부딪혔다. 순간 종이컵 뚜껑이 제대로 안 닫혔던지 커피가 반쯤 쏟아져 버렸다. 화가 난 그는 다시 안으로 들어가서 “뚜껑 하나 제대로 못 닫아 커피를 반이나 쏟게 하느냐?”고 화를 냈다. 종이컵 뚜껑을 잘못 닫은 청년직원은 어눌한 발음으로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하며 연신 고개를 숙였다.

그때 커피 나왔다는 신호의 진동벨이 앞좌석에서 울렸다. 앞좌석 아주머니가 커피를 받아서 앞의 손님에게 건네며 “카페라테예요. 저는 커피를 좋아 하지 않아서 늘 남겨요. 그거 제가 마실 게요. 우리 바꿔 마셔요” 하는 거였다. 그는 아주머니가 손에 쥐여 준 카페라테를 들고 도망치듯 나왔다. 너무 부끄럽기 때문이었다.

그 후, 그는 커피 집에 들를 때마다 문득 문득 그때 상황이 마음속에 늘 그늘로 남은 채 쉽게 지워지지 않았다. 그런데 가끔 들르는 그 커피 집에 낯선 청년이 새로 와서 일을 하고 있는데, 가만 보니 행동이 느리고 말이 어눌했다.

순간 그 청년을 채용해 준 회사가 몹시 고맙단 생각이 스쳤다. 단순히 취직이 아니라 한 사람의 인생에 눈부신 날개를 달아 주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의 시선이 40대 아주머니에게 옮겨갔다. 그녀 역시 단순한 손님이 아니라는 걸 느꼈다.

아주머니는 오직 한 사람만 바라보고 있었다. 아주 애틋하고 절절한 눈빛으로 말이다. 청년의 어머니라는 걸 쉽게 알 수 있었다. 발달장애인 아들의 첫 직장에서 아들을 지켜보는 심정이 어땠을까? 초조하고, 불안하고, 흐뭇하고, 감사하고, 참으로 다양한 감정의 소용돌이에서 눈물을 참고 있는 듯 보였다.

순간 그는 아주머니를 안심시켜 드리고 싶었다. 다가가서 이렇게 말했다. “저 여기 단골인데요, 너무 걱정마세요. 여기서 일하는 직원들 다 착하고 좋아요. 아드님도 잘 할 거예요.” 아주머니의 눈에 눈물이 핑 돌았다. 그 모습을 본 그는 울컥하고 말았다.

팍팍한 세상에서 그래도 우리가 견뎌낼 수 있는 건 이런 아름다운 모습 덕택 아닐까? 코로나19로 인해 몇 주일씩 집에 못 들어가서 보고 싶은 어린 딸과 영상통화를 하면서도 눈물을 참는 간호사, 화재현장에서 부상 입어 들것에 실려 병원으로 향하면서도 한 사람이라도 더 구하지 못해 안타까워하는 소방관. 그들 뿐인가? 장사 안 되는 동네 입구 과일가게에서 사과를 살 때 제일 볼품없는 것만 골라 넣는 퇴근길 미라 아버지, 마스크를 서너 개 여분으로 가방에 넣고 다니며 안 쓴 사람에게 말없이 내미는 준호 할머니, 참으로 수많은 보통사람들이 우리의 인생을 아름답게 만들고 있다.

남은 인생 우리는 얼마나 자주 남에게 어깨를 내어줄 수 있을까? 정부가 어제 노태우 전대통령 장례를 국가장으로 치른다고 발표했다.

취임선서하는 노태우 대통령, 뒤에 김옥숙 여사가 보인다.

노태우 전대통령 유족 성명 전문으로 이 글을 마무리한다.

오랫동안 병환에 계시던 사랑하는 저희 아버지 노태우 전 대통령께서 10월26일 오후 운명하셨습니다. 많은 분들의 애도와 조의에 감사드리며 아버지께서 돌아가시기 전 평소에 남기신 말씀을 전해드립니다. 아버지께서는 “자신에게 주어진 운명을 겸허하게 그대로 받아들여, 위대한 대한민국과 국민을 위해 봉사할 수 있어서 참으로 감사하고 영광스러웠다”고 하시며 “나름대로 최선의 노력을 다했지만 그럼에도 부족한 점 및 저의 과오들에 대해 깊은 용서를 바란다”고 하셨습니다. 장례는 국법에 따라 최대한 검소하게 해주시길 바라셨고 “자신의 생애에 이루지 못한 남북한 평화통일이 다음 세대들에 의해 꼭 이루어지기를 바란다”는 당부를 하셨습니다. 장례 절차는 정부와 협의 중이며 장지는 이런 뜻을 받들어 재임시에 조성한 통일 동산이 있는 파주로 모시는 것을 협의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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