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방 대신 칭찬을···대선후보님들께 청하오니”

나를 낳고 키워주신 어머니를 생각한다. 어머니는 내 혀가 남을 비방하는 대신 이쁜 말만 하길 얼마나 기도하셨을까, 그 어머니를 떠올려 보자

 

[아시아엔=김덕권 원불교문인협회 명예회장] ‘세상에 나보다 못한 사람은 없다’고 생각하고 살아왔다. 그런데 돌이켜 보면 별 수 없이 나도 모르게 사람을 비판하고, 함부로 판단하는 우(愚)를 얼마나 저질렀는지 모른다. 그래도 언제나 생각을 중도적으로 하고 사람도 살리면서 살아간다고 열심히 살아온 것이 사실이다.

그래도 이런 어리석음을 저질렀다고 생각하면 얼마나 양심이 찔리는지 모르겠다.

인조(조선 17대왕) 임금 때, 큰 가뭄이 들어서 농작물이 모두 타들어가고 민심은 흉흉해졌다. 인조는 베옷을 입고 신하들과 함께 남한산성에 올라가 기우제를 올렸다. 기우제에 하늘이 감동을 했는지 하늘에 먹구름이 몰려오더니 굵은 빗방울의 소나기가 내리기 시작했다.

얼마나 기다린 비인가? 더욱이 임금이 친히 베옷을 입고 기우제를 드린 후에 내리는 비가 아닌가? 만조백관들과 백성들은 얼싸안고 비를 맞으며 춤을 추며 기뻐했다. 인조도 기뻐서 같이 비를 맞으며 춤 추며 기뻐했다. 그때 임금의 눈에 아주 거슬리는 행동을 하는 자가 보였다.

선비 하나가 갑자기 비가 오니까 황급히 갓 끝을 붙잡고 비를 피해 처마 밑으로 후다닥 피하는 것이었다. ‘아니 비를 맞으며 춤을 추어도 모자랄 판에 그 비를 맞지 않겠다고 비를 피해서 처마 밑으로 피하다니, 저런 고연 놈이 잇단 말인가?’ 화가 난 임금의 불호령이 내렸다. “저놈을 당장 잡아서 끌어내려라!”

선비는 졸지에 비를 피한 죄로 잡혀왔다. “네 이놈! 지금 오는 이 비가 무슨 비인줄 아느냐? 3년 동안 내리 가물어서 짐이 신하들과 함께 베옷을 입고 이곳에 올라와 하늘에 죄를 청하고, 치성(致誠)을 드리니 하늘이 감복하시어 비를 내리셨고, 만조백관들과 백성들은 너무 기뻐서 비를 맞으며 춤을 추고 노래를 하는데, 너는 그 비를 피해 처마에 피하다니 비를 맞는 게 그렇게 싫은 거냐?”

“저놈을 당장 형틀에 묶고 주리를 틀어라!” 그때 잡혀온 선비가 외쳤다. “전하! 소인의 말을 한번만 들어 주시옵소서!” “죄인이 무슨 할 말이 있느냐?” “그래 무슨 말이냐?”

“전하! 지금 오고 있는 비가 얼마나 귀한 비입니까? 내리 3년 동안 내리지 않던 비가 임금님께서 베옷을 입으시고 기우제를 드리시니, 하늘이 감복하시어 비를 주셨습니다. 빨리 한 방울의 비라도 메마른 땅을 적셔야지, 이런 비를 저 같은 비천한 몸이 맞을 수가 있겠습니까? 그래서 처마 밑으로 피한 것이옵니다.”

대문호 톨스토이는 “어리석은 사람이 현명해지기도 하고, 악한 사람이 착해지기도 한다. 그러니 사람을 함부로 판단하지 마라!”고 말했다. 의외로 자신의 생각이 옳다고, 자신의 판단이 정확하다고 하는 분들이 많다.

정치인들은 이념의 잣대로, 종교인들은 자기 신앙의 잣대로, 지식인들은 학문의 잣대로 말이다.

대부분 상식의 잣대로, 경험의 잣대로, 지역의 잣대로, 모두 한 가지씩 잣대를 가지고 주관적인 판단을 내린다.

섬에 사는 사람, 도시 빌딩에 사는 사람, 그리고 첩첩산중에 사는 사람이 ‘해는 어디서 떠서 어디로 지는가?’ 하는 논쟁이 벌어졌다.

섬에 사는 사람은 “해는 앞 바다에서 떠서 뒷 바다로 진다”고 하고, 도시 빌딩에 사는 사람은 “해는 앞 빌딩에서 떠서 뒷 빌딩으로 진다”고 하며. 첩첩산중에 사는 사람은 “해는 앞산에서 떠서 뒷산으로 진다”고 했다. 각자 자기 경험만이 옳다고 주장하니 소리만 높아지고 결론이 내려지질 않는다.

소태산(少太山) 부처님께서는 “그 사람이 보지 않고 듣지 않는 곳에서라도 미워하고 욕하지 말라. 천지는 기운이 서로 통하고 있는지라 그 사람 모르게 미워하고 욕 한 번 한 일이라도 기운은 먼저 통하여 상극의 씨가 묻히고, 그 사람 모르게 좋게 여기고 칭찬 한 번 한 일이라도 기운은 먼저 통하여 상생의 씨가 묻히었다가, 결국 그 연(緣:조건)을 만나면 상생의 씨는 좋은 과(果)를 맺고 상극의 씨는 나쁜 과를 맺는다”고 했다.

나부터 사람을 함부로 판단하지 않고 절대로 막말은 삼가려 한다. 사람을 살리는 말을 해서 그 무서운 과보를 피할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팔십 넘어 살아온 내가 대선후보들에게 전하고 싶은 게 하나 있다. 남을 비방하는 사람보다 칭찬하는 사람이 훨씬 많은 보답을 얻는다고. 그리고 본인이 얻으려는 결과가 자연스레 다가올 것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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