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박상설②] “시시한 이야기는 하지마!”···그 순간 무지개가

세상은 사변적인 말이나 글의 기교로 설명되는 곳이 아니다. 박상설 캠프나비 호스트가 캠핑에 대해 강연하고 있는 모습.


지난 12월 23일 별세한 박상설 캠프나비 대표는 <아시아엔> ‘사람과 자연’ 전문기자로, 캠핑과 인문학, 그리고 주말농장을 접목시켜 자연주의자이자 인문주의자로 평생을 살아왔습니다. 박 전문기자는 “지식을 얻으려면 독서를 하고, 지혜를 구하려면 사람을 만나고, 더 큰 자유를 위해서는 자연에서 뒹굴어야 한다”는 지론을 실천하며 94세에 이 땅을 떠났습니다. <아시아엔>은 박상설 전문기자와 작년 6월 처음 만나, 30여일 투병 끝에 숨지기 전 가까이서 지켜본 최은자씨의 연재를 통해 박 전문기자의 마지막 200일의 삶과 생각을 되돌아봅니다. 박 전문기자는 아시아엔 창간직후인 2012년부터 만 8년간 ‘사람과 자연’ 전문기자로 활약한 한국 최고령 기자 중 한 분으로 꼽힐 겁니다. <편집자>

[아시아엔=최은자 자유기고가] 산티아고를 다녀온 사람들은 말한다. 걸으면서 응어리가 풀렸다고 하는데 산티아고의 치유력은 무엇일까? 질긴 인연의 분리? 발 수행? 아니면 낯선 풍경?

저녁이 깊어지자 주위는 검은 밤이 되었고 별들이 다가오기 시작했다. 박상설 선생님은 내 텐트는 그냥 두고 이미 설치된 곳에서 자라고 하셨다. 텐트를 가져오기는 했지만 실제 텐트를 직접 쳐본 적은 없다. (그래서 다행이라 생각하고 텐트 속으로 냉큼 들어갔다)

흙 위에서의 잠자리, 숲속의 고요함, 다시 볼지 말지도 모르는 초면의 인연에게 눈물의 하소연···. 이 모든 것이 숙면의 충분조건이었는지 바로 꿈나라로 직행했다.

“너무나 일상적이어서, 아무렇지도 않게 지나쳐 버리는 만남이 있습니다. 하지만 한 사람과의 만남은 복권에 당첨되는 것보다도, 더 기적에 가까운 것입니다. 이러한 기적적인 매일을 우리들은 늘 반복하고 있습니다. 만남은 갑자기 찾아와서 좋고 싫을 새 없이 그 사람을 다른 세계로 데려다 줍니다. 그곳에는 계산이나 타산을 초월한 힘이 작용하고 있다고 밖에 생각할 수 있지요.”(‘사토할머니의 아주 특별한 주먹밥 이야기’ 중에서)

나는 느꼈다. 젊은 날 깔깔대던 친구들과 텐트를 치던 그 감흥과 다른 느낌을.

생의 의문 속에서 그저 무릎 끓어 항복하고, 두손 모아 질문을 하던 날, 그 밤의 새벽은 달랐다.

하루가 24시간인지 25시간인지 자고 뛰고, 자고 뛰고, 어느새 늙어버렸다.

다음 날 숲속의 텐트 속에서 침낭의 사각거림에 눈을 떴을 때 이 고요와 평화가 끝나지 않기를 간절히 기도했다. 아니 이 고요와 평화를 이제는 떠나고 싶지 않았다

“그렇다면 금을 만들려다 실패한 다른 연금술사들은 뭐가 잘못 되었던거죠? 그들은 단지 금만을 구했네. 자아의 신화 그 보물에만 집착했을 뿐 자아의 신화를 몸소 살아내려고는 하지 않았지.”(파울로 코엘료의 <연금술사> 중에서)

아침에 일어나 모두 짐을 정리한 후 해산하는 길에 가까운 식당에서 해장국을 먹고 헤어지기로 하였다. 잠시 담소를 나누던 중 “참 선생님은 너무 젊으세요” 했더니 에피소드 하나 들려주셨다.

박상설 선생. 마음이 젊는 그는 외모도 젊어 실제 연세보다 20년 가까이 덜 들어보였다. 

“아 글쎄 전철을 타고 가는데, 나는 원래 절대 않질 않아. 그런데 그날은 허리가 너무 안 좋더라구. 그래서 경노석에 앉아 책을 보는데 앞에 서있던 노인네가 나를 쿡쿡 찌르는 거야. 일어나라는 거지. 대꾸도 안하고 그냥 책만 봤지. 이번에는 눈앞에 무얼 내미는 거야. 주민증이더라구 보니까. 68세더라고. 또 대꾸도 안하고 그냥 책만 봤어. 뭐라 중얼중얼 하더니 다른 자리로 가더라구. 그 사람은 자기보다 나를 더 어린 사람으로 본 거지 하하하.“

“어머 선생님, 선생님도 주민증을 그 사람 코앞에 들이 밀어야죠. 요거 보슈 하고. 나는 아흔 넘었네 그려 하면서 말예요.”

그랬더니 바로 선생님이 내게 하시는 말씀. “그래서 자네가 자네 어머니하고 부딪치는 거야! 그걸 뭐 하러 증명하러드나. 시시한 이야기는 하지마.”

그 순간 나는 무지개를 보았다.

“그래서 자네가 어머니 하고 부딪히는 거야.” 이 짧은 ‘명대사’는 북극성이 되어 내 가슴에 남았다. 단번에 나는 알아차렸다. 내가 휘두른 칼이 무엇이었는지, 내가 얼마나 어리석은 어릿광대였는지.

산새, 그 쪼끄만 눈으로 갈매기 조나단이 날아오르는 멋진 순간을 목격한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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