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박상설⑥] ‘인형의 집’ 탈출해 조나단의 꿈으로 비상할 터

쓸데없는 쓰레기 생각/순식간에 버리고/날아오르네/갈매기 조나단처럼. 

나를 은방울꽃이라
박하향기라
위로와 칭찬을 하는 이

시력은 잃어가나 더욱 빛나는 눈
깊이 패인 상처를 보시네

이제는 잘게 부순 음식만 먹는다고
아기 같이 해맑게 웃으시네

94세 그의 두 다리 당당하고
배낭엔 희망과 용기를 가득 담고 다니네

한마디 하실 때마다
파랑새 노래하듯 즐거움과 행복이 흐르네

쓸데없는 쓰레기 생각
순식간에 버리고
갈매기 조나단처럼
날아오르네.

“우리가 진정으로 이해한 지식이나 깨달은 사실은, 두뇌의 감정적인 영역을 활성화시켜 우리를 깨우고 움직인다. 당신이 어느 날 갑자기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이해하고 깨달았다면, 그 순간 이후로 당신은 결코 이전에 살아왔던 방식대로 살지 못한다.”(게랄트 휘터 ‘존엄하게 산다는 것’ 중에서)

인류는 참교육을 통해 인간의 권리와 자유와 평등 박애를 가르치려한다. 나는 진정 참교육을 받은 적인 있었던가? 내가 마주했던 많은 원만한 교사들은, 그들만의 둥지에서 나오진 않고 계속 재잘대는 새와 같더라.

참교육을 받은 인간만이 누구에게도 속박 당하지 않고, 누구를 속박하지도 않는다. 그러나 우리 선조로부터 받은 교육은 도덕적으로 영적으로 인간적으로 사람을 속박하며 사람 구실을 강요한다.

나는 캠프나비를 다녀온 후 모정을 버리고 집을 버렸다. ‘모정’과 ‘모성’, 이것은 인간사의 위대한 사랑임을 누군들 부정할 수 있을까?

지금 지구인이 남아 있다는 것도, 거룩한 투사들의 피가 아니라, 그를 키운 모성임을 누가 부정하라!

“어머니는 나의 행복을 위해 늘 자유를 막았다. 그래야 내가 행복할 것이라고. 그 시대의 도덕이 말해 주었을 것이다.”(본문 중) 사진은 최은자 필자와 친정어머니 박복례(87) 여사. 

내 어머니의 지극한 모성은 정말 눈물겨웠다. 그녀의 노고는 결국 말년에 온 몸을 찌르는 극심한 통증만을 남겨 주었다. 새끼들은 이제 살만한 데 그녀의 몸은 만신창이가 되어버렸다.

내 어머니는 교육의 혜택도 받지 못한 채 원초적인 사랑으로 우리를 키워냈다. 어머니가 의지한 것은 시대의 도덕이었다. 그 시대의 도덕, 그것이 나에게는 충돌이었다.

나는 어머니의 도덕적 교육으로, 스위트홈이 지상목표였다. 초원의집을 짓고 그 속에 남편이라 불리는 이와, 아장아장 아기, 얼마나 완벽한 그림인가. 그러나 그곳에 평등은 없었다. ‘스위트 하지 않는 스위트 홈’. 그곳에 갇힌 나는 <인형의 집>의 노라였는지도 모르겠다.

선생님은 처음 나를 만나던 날, 나의 정체성을 일깨워주었다.
“너는 자유와 평등이구나!”

그때 나는 깨달았다, 나의 애증의 근원을. 자유와 평등에 부합되지 못한 나의 생활에서 발생되었다는 것을.

어머니는 나의 행복을 위해 늘 자유를 막았다. 그래야 내가 행복할 것이라고. 그 시대의 도덕이 말해 주었을 것이다.

나의 남편은 평등한 조건을 만들지 않았다. 그의 어머니의 시대가 그렇게 일러 주었고, 몸으로 아들에게 알려 주셨을 것이다. 그렇게 해야 아들이 행복하리라 믿으신 거야.

이제 나는 이전에 내가 알았던 자유와 평등이 아닌, 좀 더 다른 자유와 평등을 배우고 싶다. 누구에게도 괴로힘이 없는 자유, 누구에게나 베풀 수 있는 평등.

지식을 얻으려면 독서를 하고, 지혜를 얻으려면 사람을 만나야 하며, 더 큰 자유를 위해서는 자연에서 뒹굴어야 한다는 박상설 캠프나비의 정신을, 행동으로 한걸음씩 옮겨본다. 나아갈 수 있을 거라 나는 믿는다.

박상설 선생 2021년 6월 19일 전주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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