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박상설④] 깐돌이 평생 꿈 ‘행동하는인문학살롱’ 드디어 태동
[아시아엔=최은자 자유기고가] 박상설 선생님한테서 전화가 왔다. 선생님 열성팬이 있었는데, 나이 먹은 여자인 내가 그 먼 샘골을 찾아가 선생님을 뵙고 갔다는 여행 스토리를 듣고 깜짝 놀랐다는 것이다. 그분도 빨리 선생님을 알현(?)해야겠다며 서두른다는 이야기였다.
그래서 그 이야기를 듣고 그런가 보다 하고 있는데 한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그분은 “그 먼길을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선생님을 찾아간 나의 열정에 감동받았다”며 본인 사정상 먼길을 못가니 본인이 사는 고장에 오면 어떻겠냐는 초대였다.
Why not? call!
이것이 우리 ‘행동하는 인문학살롱’ 첫모임이 되었다. 선생님을 뵙고 내려온 지 2주만인 6월 18~19일 전격적으로 이루어졌다. 선생님을 뵙고 내려올 적에는 이 먼길을 다시 오기는 어렵겠지 하며 만남에 기약이 없었는데, 세상에 단 2주 만에 상봉의 기쁨이 이루어지게 된 것이다,
선생님이 그리도 원하던 인문학 살롱이다. 남녀 구분 없고, 신분 구분 없고, 재능이 많고, 언어구사력(독서의 결과) 좋으며, 예의바른 사람들의 사교장소인 프랑스 살롱문학 정신과, 앉아서 입으로만 떠들지 않고, 배운 것은 몸으로 실천을 하는 인문학 모임, 바로 그것이다.
이것이 박상설 선생님 일생을 통해 실천된 장르다.
클로드 뒤퐁은 글쓰기 이전에 말하기가 있었고, 창작 이전에 대화가 있었는데, 그것이 곧 살롱문학이라 했다. 프랑스 랑부이에 후작부인이 살롱을 개장했듯이 문학과 예술과 인생을 토로하는 인문학 살롱은 여성이 리드하는 게 어울린다며, 나에게 앞날의 비전을 제시하셨다.
곡성에서 첫번째로 이루어진 행동하는 인문학 살롱은, 주최자 엘크(본명 서용호)님의 봉사와 선생님의 주도면밀함으로 완벽하고 성대하게 치러졌다. 그날의 성공으로 2차모임도 연이어 갖게 되었다.
구례와 곡성을 오가는 소박한 순례가 어찌나 좋았던지. 첫 번째 들린 곳은 섬진강 책사랑방이었다. 평생 서점을 운영하던 박종훈 사장님은 경영난으로 문을 닫게 되자, 나머지 책과 버려진 책들 30만권을 가져와 오래된 모텔을 개조해 이곳에 둥지를 틀고, 아직도 인쇄된 책냄새를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한 아지트를 만든 것이다.
평생을 책을 만지던 이가, ‘버려진 아이들’을 모두 끌어안고, 이 풍광 좋은 터에 더불어 사는 모습. 어떤 상점에 들러 이토록 행복한 느낌을 맛볼 수 있을까? 그의 삶이 그의 미소에 오롯이 담겨 있었다.
안주인이 내온 그윽한 커피 한잔은 치열하게 한생을 살아온 지구 지성들의 혼과 건배하며 더불어 마시니 그저 ‘시간여행자’가 되는 듯하였다.
그 다음 코스는 방부제를 쓰지 않고 그날그날 만들어 파는 빵집이었다!
빵집 이름은 ‘느긋한 빵집’, 듣기만 해도 느긋해지는 듯하다.
우리는 가공된 먹거리로 생명이 단축되는 시대에 살고 있다. 멋과 맛에 탐닉해 우리 속을 채운 먹거리는 모세혈관 곳곳을 공격하고 있지 않은가.
순례를 마치고 세미나실에서 선생님 강의를 들었다. 강의 중간 중간에 노래와, 하모니카 연주와, 시낭송이 어우러져 마쳐야 되는 게 아쉬울 뿐이었다. 그렇다! 이렇게 재미나게 사는 것이다. 이게 행복이라는 것이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