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박상설⑧] 소행성에서의 1박2일, 그리고 그는 떠났다

생전의 박상설 선생, 1987년 6월20일 일출을 맞는 덕유산 정상. 그는 작년 12월 23일 또다른 행성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아시아엔=최은자 자유기고가] 2021년 7월 31일 낮 12시. 마치 원탁의 기사들처럼 하나 둘 도착했다. 자기소개 시간을 가지고 간단히 점심을 먹었다. 콩국수를 준비했는데 박상설 선생님의 순서없는 열강으로 국수가 불어 버렸다.

과일 주전부리 몇 쪽 놓았는데 꾸중 하신다. 이제 지나친 음식문화를 자제하자고 하신다. 버리는 음식은 다시 땅을 병들게 하고 있다. 맞다. 우리 모임에 맞는 적당하고 즐거운 먹거리를 연구해야겠다.

갑자기 먼 곳에서 손님이 왔다. 지난번 곡성에서 강의를 들었던 분이 부인과 함께 온 것이다. 잠시라도 선생님을 뵙고 싶어 광주에서 달려온 찐팬이다. 손님이 돌아 가자 선생님은 바다로 가자고 하셨다. 난 여기서 40년 가까이 살아도 바닷물에 들어가 본 적이 없었다. 시부모님 뵈러 와서 놀러 나간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서 생각도 못했다. 왜 그리들 살았는지 모를 일이다.

과연 효도란 무엇인가? 부모의 즐거움과 안락을 위해 자식의 자유와 희생을 담보로 잡는거? 우리 시부모님도 그들 부모에게 배운 대로 나에게 행했을 뿐 선도 악도 없었다.

시절이 바뀌어도 생은 바뀌지 않는 인습의 굴레 밤하늘 별만큼이나 많은 철학자 종교학자 인문학자 그들은 무수한 종이를 없애며 써내려 갔겠지. 인습에서 관습에서 탈출하자고, 그런데 그들 자신은 탈출했을까?

작년 7월 31일 35년만에 마을 앞 바다에 나가 모터보트에 오른 최은자 필자(오른쪽)

35년 동안 한 번도 가지 않은 코 앞 바닷가. 내가 지나갈 때마다 바다는 말했겠지. “저 바보들 오늘도 그냥 지나가네.” 그랬던 바다에게 외친다.

“바다야 ! 나 이제 왔노라~~”

파도에 나를 띄우고, 잠시 우주 속에 유영하는 착각에 빠져 봤다고나 할까, 우하하하.

제법 찰랑대는 이 파도도 끌어당김과 밀어냄의 우주놀이고, 지는 해도 지구의 시소놀이… 나름의 해석으로 파도타기에 깔깔거리다가 모터보트를 타자는 의견이 나와 좋다고 했다가 선생님께 한방 먹었다. “공해를 유발하는 놀이는 제발 그만하라”고, 역시 한순간도 놓치지 않으신다.

서해 일몰이 시작되자 물에서 나와 전망대로 향하였다

일몰은 언제나 눈물이 난다 하신다. 감성충만 깐돌이 만세!! 저녁은 가까운 곳에서 칼국수와 바지락 죽으로 해결하고, 다시 집결 엔트로피와 앤솔로지에대해 강의가 시작됐다.

너무 차원이 높아 이해가 어려웠다. 재수강이 필요하다. 밤이 깊어가고 나의 생이 아니라 우리의 생을 다듬는 이야기는 끝이 없다.

다음날 아침 비가 주룩주룩 내린다. 모두가 비 내리는 황홀경에 빠진다. 꽃밭에 꽃나무들은 흥겨워 마냥 어깨춤을 추어댄다.

비 오면 뛰기 바빴고, 유리창 너머로만 보던 비를 코앞에서 느끼니, 다들 좋아한다. 비를 못 느끼고 살다니 우리 참 어설프게들 사는 것 같다. 나도 덩달아 기분이 좋았다.

변산 앞 모래사장에서 한 가운데가 박상설 선생

지은 지 60년 넘은 오래된 촌집. 이곳에서 살던 사람들이 한 번도 해 보지 않은 모임이, 오늘 이뤄지니 이집이 왠지 격이 높아지고 집도 좋아할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끼니걱정과 고된 노동, 일거리 없는 노총각 노처녀의 한숨소리. 내가 어머니로부터 들었던 이 지붕 아래 있었던 역사다. 지난 60년 동안 이 공간에서 얼마나 많은 일이 일어났을까?

탄생과 죽음이 있었고, 눈물과 웃음이 있었다. 절망과 기다림이 있었다. 무엇보다도 희망이 있었기에 이 집이 무너지지 않았으리라.

이른 아침 인근 내소사를 산책하기로 했다 600미터 전나무 숲길이 있는 내소사는 단청을 입히지 않고 꽃살 무늬 창문으로 멋을 낸 대웅전으로 유명하다. 선생님의 민머리가 절 풍경에 어울리고, 사복차림이니 파계승 같다며 한바탕 웃음이다.

우리들 웃음이 8월의 하늘에 아롱지고, 1000년 수령의 느티나무가 우리의 어울림을 내려다 보았다.

다시 집으로 돌아온 우리들은 간단한 아침 식사 후 선생님 강의를 들었다. 주제는 지구와 환경. 지구가 과연 인간이 멋대로 사는 것에 대해 화를 내지 않을지, 이미 화를 내기 시작했는데, 인간들은 지구의 이런 심정이나 아는지. 그러다가 어느새 강의 내용은 우주로 날라간다.

지구와 달과 화성 목성 천왕성 명왕성, 나는 명왕성이 왜소 행성으로 바뀐 것도 모르고 있었다. 천체지도를 머릿속 그대로 가지고 계신 듯 해박함에 두손 두발 다 들었다. 전체 우주는 다른 우주에 속해 있고, 그 우주는 또 다른 우주 속에 있고, 이 거대한 우주가 수없이 많다는 것이다. 불경에 나온 강가강의 모래만큼의 우주.

그러니 제발 째째하게 살지 말자는 것이다. 그저 침묵과 떡벌어진 입 만이 우리의 대답이었다

어느 생명체보다도 혜택을 받고 지구별에 인간으로 태어났으니 조금은 이타적으로 살아보자는 말씀이다. 비가 잦아들면서 헤어짐을 준비하라 한다.

나 또한 골목마다 가스등에 불 밝히는 자의 마음으로, 아름다운 자연을 덤으로 주신 우주만물과 소통하며, 인문학을 토론하는 살롱문화라는 소그룹이 각각의 마을마다 번지기를, 그리하여 331km를 가지 않아도 되는 날이 오기를 희망하면서, 떠나는 이들의 뒷모습에 합장했다.

“당신들과 함께한 1박2일은 아름다운 소행성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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