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모] 한평생 자연을 벗삼아···깐돌이 박상설 ‘어린왕자’ 곁으로

90세 넘은 연세에도 겨울철 산행을 멈추지 않던 생전의 박상설 아시아엔 ‘사람과 자연’ 전문기자

[아시아엔=최은자 자유기고가, 아이큐어(주) 총무팀 부장] 2021년 6월6일 홍천 샘골에서 집으로 돌아 온 날, 선생님은 이런 시를 보내주셨다.

향 짙은 커피 한잔 놓고
상큼한 그를
떠올리며
시인의 마음으로 그의 닉네임
상상하는 재미 솔솔하다.

새로운 정감으로 산뜻해졌던
그를 다시 떠올리며
샘골 깊은 산중에서
그 누구도 간섭 받지 않고
맑고 청초하며 해맑은
고귀한 꽃
은방울꽃처럼

그대
칼보다 더 날카로운 혀를 피해
그 누구에게도 상처 받지 않는
샘골의 은방울꽃

아무말 듣지도
하지도 않는
고고한 은방울꽃

2021년 여름 변산 박상설 선생(왼쪽 네번째)이 캠프나비 멤버들과 포즈를 취했다. 

나는 ‘깐돌이’ 박상설 선생님을 만난 기쁨을 이렇게 썼다.

샘골 방문 여운
아무도 가지 않은
새 길을 돌아 돌아
도착한 샘골에
잠시 지구별에 온
어린 왕자를 만났네

머플러는 없었지만
그의 멋짐은
그의 순수함은 여전 하였네

초록을 감싸안고
밤새 춤추는 시냇물소리는
내 노여움과 서러움을
씻어 주었네

너는 빛나니
너는 용감하니 걱정말라고
어린 왕자 나를 안아주었네

샘골에 살짝 내려온 어린 왕자
몰래 다른 별로 가버릴까
오늘도 맘 졸이네

그로부터 200여일 지난 2021년 12월23일, 나의 어린왕자는 또 다시 다른 행성을 향하여 비행선에 몸을 실었다. 이미 그는 비행계획을 세우고 있었는지, 몇 년만 빨리 만났어도 할 일이 참 많았었는데 하곤 했다.

그는 나를 부를 땐 은방울꽃이라 했다. 그와 만났던 날 마침 홍천 샘골에서 자생하는 은방울꽃이 피었다는 것이다. 나 뿐 아니라, 그는 만나는 이들마다 별명을 지어 주었다. 촌철살인의 의미가 있는 별명 짓기는 한바탕 웃음이기도 하고, 숙명을 벗어던지는 세례이기도 했다. 어린 왕자 본인 스스로도 깐돌이라고 위장했다.

홍천 캠프나비에서 깐돌이 박상설 선생(왼쪽 두번째)이 팬들과 함께.  

처음 샘골을 찾았던 2021년 6월 5일, 그의 모습은 고집 센 말투와 구부정한 노인네 바로 그 모습이었다. 그러나 내가 평생 품은 상처를 내보이자, 곧바로 그는 어린왕자 정체를 드러내며 해맑은 미소로, 내 곪아터진 상처의 근본치료를 시작했다.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하룻밤 사이에 나는 그가 이끄는 다른 차원으로, 순간 이동하는데 성공했다. 나는 그동안 머리를 쳐박고, 상처에 전전긍긍하고만 있음을 알았다.

어린왕자는 현실과 가상을 넘나드는 유영을 보여주었다. 어렵지 않았다. 검은 바다 암초에 걸려있던 나는, 수면 저 위에 번쩍이는 빛줄기를 따라 인어처럼 솟구쳤다.

그에게 94세라는 지구 나이가 있었지만, 내가 만났던 그는, 나이를 종잡을 수가 없었다. 때론 200세 허연 수염 기른 미래를 보는 신선 같았고, 때론 땡땡이치고 학교 뒷담을 넘어 도망치는 사춘기 꼴통 같았고, 때론 나날이 오염 되는 지구환경에 잠 못 이루는 생태학자였고, 때로는 18세기 유럽 파티를 즐기는 바람둥이 백작 같았다.

자유와 고독을 사랑하는 시인이고, 매일 설렘으로 무장하는 백전노장이며, 청승과 낡은 풍습에 얽매여 사는 인생은, 도와줄 필요도 없다고 잘라버리는, 냉정한 칼이었다. 그는 설악산 정도는, 백번도 넘게 올랐다는 알피니스트였고, 세계여행 중에는 거리의 노숙자들과 나란히 잠을 청하고, 그들과 음식을 나누는 별종이었고, 다음 행선지가 정해지지 않는 채 집을 나설 때, 무한한 설렘으로 온몸이 들뜬다 하였다.

종점을 보지 않고 무조건 올라탄 버스로 이리저리 헤매는 것이 가장 가성비 좋은 여행이라고, 깔깔깔 웃으며 아이스크림을 먹는 모습은 개구쟁이 자체였다. 몇년 전부터 그는 주먹만한 글씨 외에는, 볼 수 없을 정도로 시력이 망가졌지만, 스마트폰에 수를 놓듯이 문자를 새겨 넣어, 매일 많은 사람과 소통하는 ‘포노 사피언스’였다.

시간과 자유의 서핑보드를 마음껏 즐기면서, 동에 번쩍 서에 번쩍하다가도, 여린 들꽃들의 씨를 받아 긴 겨울동안 말려 봄을 기다려 뿌려 놓고 싹이 트기를 기다리며 흘깃 본 미지의 여인을 찾아가듯, 그 장소를 몇 번이나 가본다고 했다. 그때마다 가슴이 두근거려 미치겠다던 그는, 세상의 24시를 살지 않고 그가 제작한 우주시계를 보며 산 사람이었다.

2021년 6월 곡성과 구례서 첫번째 ‘행동하는 인문학'(행인) 캠프나비 활동 중 섬진강 책마을 을 방문할 당시. 

재미나게 아주 재미나게 살아라! 그리고 시시한 이야기는 하지마! 당당하게! 멋지게! 미치게 멋지게 살아! 그리고 씩 웃던 사람. 하얀 눈 오는 날 세상 떠나고 싶다던 마지막 바램까지도, 완벽하게 연출한 깐돌이 어린왕자!!!

2021년 12월 27일 나는 그가 뿌리는 애잔한 눈을 맞으며 메타에서의 마지막 포옹을 했다.

 2020년 6월 5일 산목련이 피던 홍천 캠프나비에서 박상설 선생과 필자

Leave a Repl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