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우의 행복한 도전 16] 김한길 의원과 국감 인연, DJ 대통령 인수위 전문위원에

부산광역시교육청 전경. 필자는 부산시부교육감 당시 국정감사에서 김한길 의원을 처음 만나 김대중대통령 인수위에 파견나가는 인연을 갖게 됐다.

[아시아엔=이기우 한국전문대학교육협의회 전 회장, 이해찬 국무총리 비서실장 역임] 공보관을 거쳐 1996년도에 부산시교육청 부교육감으로 발령받았다. 정순택 교육감이 고등학교 선배였는데 부산시 교육감으로 자리를 옮기면서 장관에게 나를 보내 달라고 요청해서 이루어진 일이다. 그리고 얼마 안 있어 국정 감사가 시작되었다.

원래는 시도 교육청별로 국회의원들이 직접 와서 감사를 했는데 특이하게도 그해에는 부산·경남·제주·울산 네 군데 교육감이 부산시교육청에 모여 한꺼번에 국정 감사를 받게 되었다. 행정 일이라는 것이 대동소이해서 주로 감사를 받는 것은 주관 교육청인 부산시교육청의 일이 되었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국정 감사 하루 전에 그만 정순택 교육감의 맹장이 터지고 말았다. 직원들은 큰 혼란에 빠졌다. 그동안 교육감이 모든 자료를 소화하여 감사에 대비하고 있었는데 졸지에 교육감이 감사를 받을 수 없게 된 것이다. 할 수 없이 부교육감인 내가 나서야 하는 상황이 되었다. 다행히 교육부에서 다양한 직책을 맡으며 잔뼈가 굵은 내게 국감 자료를 내 것으로 만드는 것은 몇 시간이면 충분한 일이었다.

자만심에서 나온 말이 아니다. 정말로 그랬다. 애가 타는 표정으로 자료를 준비해 내게 보고하던 직원들도 깜짝 놀랐다. 국감 하루 전날 밤에 국감 자료 전부를 내 것으로 만들었기 때문이다. 드디어 감사 당일이 되었다. 국회의원들의 다양한 질문이 있었고 별 이상 없이 대답을 잘하면서 넘어가고 있었다.

그런데 김한길 의원 차례가 오자 분위기가 완전히 달라졌다. 그 당시는 초등학교 3학년에게 영어를 가르치는 정책으로 언론에서 말들이 많던 때였다. 특히 김한길 의원은 국정 감사 가는 곳마다 날카로운 질문으로 교육 관료들을 녹다운시키고 있었다. 나에게도 같은 방식으로 접근해 들어왔다. 아마도 부교육감이라는 직책 때문에 나를 무시하는 마음도 없지 않았던 것 같다. 질의응답을 계속하다 보니 시간이 갈수록 설득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들었다.

“이걸 왜 이렇게 급하게 추진하죠? 짧은 시일 안에 추진하면 당연히 문제가 생기지 않겠습니까?” 나중에는 그런 식으로 질의해 왔다. 하지만 나는 물러서지 않았다. “의원님, 시험공부할 때 제일 공부가 잘될 때가 언제입니까? 시험 치기 전날 아닙니까? 발등에 불이 떨어지면 효과가 빨리 나타납니다. 그래서 이 정책도 가능한 겁니다.”

이렇게 설명하자 김한길 의원이 더 이상 공격하지 않았다. 물론 나는 김 의원의 눈 밖에 났다고 생각했다. 한 마디도 지지 않고 대응을 했기 때문이다. 아무튼 나 때문에 다른 교육감들은 수월하게 넘어갈 수 있었다. 김한길 의원은 나중에 나와 악수를 나누면서 부교육감이 된 지 얼마나 됐느냐고 물었다. 몇 개월 안 되었다고 했더니 고개를 끄덕이며 “그래요?” 하면서 헤어졌다.

김한길 의원과의 인연은 그것으로 끝인 줄 알았다. 그리고 세월이 흘러 안병영 장관 때 나는 교육부의 지방교육행정국장으로 발령받았고, 그사이 김대중 정권이 들어서면서 대통령직인수위원회가 만들어졌다. 1998년 1월 1일부터 2월 28일까지 인수위를 운영하는데 그때 부처별로 인수위에 국장급 전문위원 한 명씩을 추천받았다. 교육부에서는 1, 2번으로 유력한 국장 둘을 추천했다.

김한길 인수위 대변인. 1998년 1월.

보통 인수위에 다녀오면 차관이 되는 것은 당연한 일처럼 여겨지는 분위기였기에 신중하게 추천을 한 상황이었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뚜껑을 열고 보니 추천한 국장을 제치고 내가 전문위원으로 선정된 것이 아닌가. 아무리 생각해도 영문을 알 수가 없었다. 결국 뒤에 알게 된 사정은 이러했다. 국회 사회·문화분과위원으로 여섯 명이 있었는데 그중 한 명이 바로 김한길 의원이었다.

김한길 의원이 교육부를 담당하면서 추천된 전문위원 후보를 봤더니 둘 다 자신이 모르는 사람이었던 모양이다. 그래서 그 당시 몇몇 교육부 인사를 통해 다른 사람 추천을 부탁했다. 그중 한 명이 우연하게도 이기우라는 이름을 거명하게 되었고, 그 소리를 듣자마자 김한길 의원이 “알았습니다!” 하고 전화를 끊었다고 한다. 그리고 바로 내가 인수위에 발탁이 된 것이다.

부산시 국정 감사 때 만났던 김한길 의원에게 내가 일 잘하는 사람으로 각인되었을 줄 어떻게 상상이나 했겠는가. 자신의 질문을 꿋꿋이 견뎌 내고 부교육감의 임무를 적극적으로 수행한 것이 좋은 이미지로 남았다니……. 인연이 그렇게 이어지고 있었다. 이 일은 내 인생에 있어서 또 다른 중요한 인연으로 이어지는 계기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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