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우의 행복한 도전⑭] “시키는 일만 하는 게 공무원이라고?”

광화문 정부종합청사. 세종청사로 이전하기 전 교육부는 광화문 청사 16층과 17층에 자리잡고 있었다.

[아시아엔=이기우 이해찬 전 국무총리 비서실장, 한국전문대학교육협의회 회장 역임] 1989년 교육부 편수과장 시절의 일이다. 원래 편수과장이라는 직책은 교과서 개발을 지원하고 연구하는 등 대한민국의 교과서를 총 책임지는 자리이다. 직책을 맡고 업무 파악을 하고 보니 아쉬운 점이 눈에 띄었다. 우리 교과서에 북한 관련 정보나 자료가 부실하다는 점이었다. 아마도 보통의 공무원이라면 이런 쪽에는 손도 대지 않았을지 모른다. 괜히 긁어서 부스럼이 될까 싶어 움츠러들 수도 있다.

내 생각은 달랐다. 제대로 된 교과서를 개발해서 학생들에게 올바른 정보를 주기 위해서는 북한에서 발행된 책이 필요했다. 즉 국익을 위해서 북한 책이 필요하다고 판단했던 것이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 볼 수 있는 북한 책이 그 당시에는 거의 없었다. 통일부와 안기부(현재 국정원)를 통해 20~30년 전 북한 관련 책 몇 권을 손에 넣는 것이 고작이었다. 기회는 예상치 않은 곳에서 열렸다. 우연히 중국 연길에서 조선족을 대상으로 교과서를 만들어 파는 회사의 사장이 한국을 방문해서 나를 찾아왔다. 한국의 교과서와 교과서 행정에 관한 것을 알고 싶다는 요청이었다.

“여기 며칠 계실 예정이십니까?” “네, 3일 정도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러면 3일 뒤에 오시겠습니까? 제가 자료를 다 정리해서 드리겠습니다.” 3일 뒤에 그 사장이 다시 왔을 때, 나는 교과서는 물론 교육과정에 대한 자료, 관련된 참고 도서 목록까지 리스트를 만들어 한 보따리 되는 자료를 건네주었다. 자료별로 띠지까지 붙여서 찾아보기 쉽게 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그러자 자료를 넘겨받은 이 사장이 큰 감동을 받아서 내 손을 잡는 것이 아닌가.

“감사합니다, 과장님. 이 정도로 꼼꼼하게 자료를 준비해 주실 줄은 몰랐습니다.” 나로서는 모든 일에 진실하고 성실한 자세로 임한다는 평소의 지론을 그대로 실행한 것이었는데, 그쪽에서는 보통 감동을 받은 얼굴이 아니었다. 나 역시 기분이 좋았다. “도움이 된다니 다행입니다.” “제가 도울 게 없습니까? 제가 이 은혜를 꼭 갚고 싶습니다.”

그 말을 들으니까 갑자기 북한 관련 책 때문에 고생하던 생각이 났다. “혹시 북한에 다녀오셨습니까?” 그러자 그 사장이 북한에는 밥 먹듯이 다닌다고 화답하는 것이 아닌가. “아, 그래요? 그럼 북한 책 구할 수 있습니까?” “힘들어도 제가 구하면 구해질 겁니다.” 그렇게 해서 전화번호를 받고 중국 연길에 가면 연락하겠다고 악수를 나누고 헤어졌다.

그로부터 몇 개월 후에 정말로 중국에 가게 될 일이 생겼다. 몇몇 대학 학생들과 중국을 거쳐 일본을 여행하는 일정에 동행하게 된 것이다. 더군다나 중국 일정은 연길을 들러 백두산까지 가는 코스였다. 나는 미리 전화를 넣어 어느 날 어떤 호텔로 도착한다, 그때 부탁드렸던 책 준비되면 가져다주시면 감사하겠다는 말을 전했다. 그렇게 연길의 호텔에 도착하고 10분 뒤에 사장이 도착했다. 반가운 인사를 나누고 서른여덟 권이나 되는 책을 넘겨받았다. 나는 무척 기뻤다. 이제 우리도 북한 책을 연구 자료로 삼아 더 좋은 교과서를 만들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하지만 일은 그렇게 순탄치 않았다. 여행을 마치고 배를 통해 인천으로 들어오는 과정에서 난리가 났다. 내 가방에서 북한 책이 잔뜩 나오는 것을 보고 세관에서 입국 정지를 시킨 것이다. 그러나 나는 포기하지 않았다. 다행히 그 당시 편수관리관으로 모시던 박병호 국장의 친구가 안기부 요직에 과장으로 있는 걸 알았기에 일단 국장에게 전화를 걸어 공문을 발송하기로 했다. 불온한 생각으로 책을 들여온 것이 아니라 교과서 연구에 도움을 얻고자 들여온 사정을 적극 알려야 했다.

결국 그 뒤에 교육부 장관 명의로 정식 공문을 다시 보냈고 안기부장의 승인을 받았다. 교육부 내에 비밀에 준해서 보관하겠다는 약속을 하고 책을 들여왔다. 그렇게 들여온 북한 책은 추후 교과서를 개발하는데 중요한 자료로 활용할 수 있었다.

아마도 시키면 시키는 대로 주어진 일만 하는 것이 공무원의 임무라고 생각했다면 절대로 시도할 수 없는 일이었을 것이다. 적극적인 공무원이 아니라면 누가 위험을 무릅쓰고 이런 일을 하려고 하겠는가. 그때 나에게는 국가에 대한 한없는 충성의 마음이 있었다. 그래서 공무원으로서의 자부심이 대단했다. 항상 주어진 일 이상을 해내겠다는 적극적인 집념과 의지로 충만했다. 북한 책을 들여온 일도 그런 집념과 의지의 결과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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