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우의 행복한 도전⑧] 거제성포중 거쳐 경남교육청 발령

교사를 배경으로 단체 사진을 찍고 있는 거제 성포중학교 학생들. 필자는 40여년 전 이 학교 서무 책임자로 있을 때 교감 선생님의 부탁으로 담임 선생님이 자리를 비운 학급의 담임 역할을 대신한 적도 있었다.

[아시아엔=이기우 이해찬 전 국무총리 비서실장, 한국전문대학교육협의회 회장 역임] 혈기 왕성한 20대의 삶을 온전히 거제교육청 공무원으로 성실하게 일하며 보냈다. 서기보(9급)로 출발해서 서기(8급)가 되고 그다음에 주사보(7급)까지 승진하면서 나는 중학교 서무 책임자로 발령을 받았다. 성포중학교 서무 책임자로 있을 때는 교감 선생님의 부탁으로 담임 선생님이 자리를 비운 반의 담임 일을 대신한 적도 있었다.

그때 하루 만에 그 반 학생 이름을 다 외우고 아이들을 만났다. 아이들이 소중하다고 생각하니까 이름을 외우게 된 것이다. 짧은 기간의 책임이라도 대충하려는 생각을 하지 않았다. 한번은 교무회의 때마다 교장·교감 선생님에게 무조건 딴지를 걸고 따지는 선생님을 따로 만난 적이 있었다. 일반적으로 이런 경우 그 선생님을 몰아붙이는 방식으로 접근할 수 있지만 나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교감이나 교장 선생님 자리는 열심히 하면 나중에 선생님 자리가 됩니다. 그런데 왜 그렇게 매번 흔드세요. 지금 그렇게 흔들면 선생님이 교장 되었을 때는 어떻겠습니까. 매번 선생님들이 그렇게 흔들면 의자에 나사도 빠지고 못도 빠지고 결국은 아무런 일도 못 한 채 그 의자만 붙들고 있어야 되지 않습니까. 오히려 선생님이 의자를 잘 잡아 주시면 어떻습니까? 제대로 가도록 도와주면서 갈 수도 있잖아요. 방법을 바꿔 보면 어떻습니까?”

나는 한 번도 누구를 승리자로 만들고 누구를 패배자로 만드는 식의 일방적인 충고를 해 본 적이 없다. 늘 염두에 두었던 것은 모두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 방법이었다. 그 선생님에게 내가 한 방법이 바로 그랬다. 그 결과, 선생님도 내 뜻을 이해하고 그 후로는 태도를 바꾸었다. 나중에 교장 선생님이 된 것은 물론이다.

몇 군데 중학교의 서무 책임자를 거쳐 1973년 1월 1일에 경상남도교육청으로 발령을 받았다. 막 결혼했을 때였다. 그 덕분에 신혼여행도 뒤로 미루고 새해 첫날 바로 경상남도교육청으로 출근했다. 거제교육청에서 근무하다가 경상남도교육청으로 발탁돼서 옮겨 간 것은 큰 기회가 주어진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도 교육청은 시군 단위 조직보다 실력을 펼칠 수 있는 기회가 더 많이 주어졌다. 나는 잠재된 능력을 발휘하기 위해 노력했다.

그 당시 내가 능력을 인정받은 일 중에는 이런 것도 있었다. 1974년 6월 4일부터 6월 7일까지 서울에서 제3회 소년체육대회가 있었다. 이때 경상남도가 종합 2위의 쾌거를 거두었다. 바로 전 해에 10위였는데 불과 한 해 만에 2위로 수직 상승한 것이었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했을까. 바로 점수 계산 방법을 세밀하게 파악하여 새로운 전략으로 대응했기 때문이었다. 팀별로 싸웠을 때 꼭 승리하지는 못하더라도 점수가 차등 부여되기 마련이다.

그 전까지는 이 점수를 모두 버리는 점수로 생각하고 오직 이기는 경기만을 하기 위해 전력을 다하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모든 경기에서 다 승리를 할 수는 없는 법이다. 따라서 강세를 보이는 종목에서는 최선을 다해 승리하도록 전략을 짜고, 그 나머지 종목에서는 종목별 성취도에 따라 점수를 최대한 많이 받을 수 있는 등수를 확보하기 위해 보다 전략적으로 노력했다. 또 무승부가 됐을 때 얻을 수 있는 점수도 상당했다. 이 점수까지 꼬박꼬박 챙기기 위해 최선을 다해 경기를 치르도록 주문했다.

내가 한 일이 바로 이 종합 점수를 최대한 끌어올릴 수 있는 방법을 연구해서 전파하는 일이었다. 소년체육대회가 열리기 전, 합천 해인사에서 시군 교육장들을 모아서 설명회를 열었다. 어떻게 하면 점수를 따고, 어떻게 하면 무승부 또는 패하더라도 점수를 확보할 수 있는지 경우의 수를 따져서 치밀하게 설명했다. 그 정도로 내가 업무에 통달했다는 말도 된다. 무조건 승부에 연연하는 것이 아니라, 지더라도 어떻게 진다는 목표가 구체적으로 마련되면 경기 결과가 달라질 수 있다는 믿음이 있었다.

특히 내가 주목한 것은 바로 승패로만 경기 결과를 보지 않는 관점의 변화였다. 매 경기를 승패의 결과로만 접근하면 많은 것을 놓치게 된다. 1, 2등이 아니라 3, 4, 5등도 중요하다. 그뿐만 아니라 무승부도 중요하다. 이런 시각으로 경기 전체를 다시 보니 지난 대회 우리 팀의 성적에서 만회할 부분이 보이기 시작했다. 당장 놀랄 만큼 실력을 끌어올리는 것보다 지금 할 수 있는 정도에서 최선을 다했을 때 결과는 충분히 달라질 수 있을 것 같았다. 결국 경상남도는 종합 준우승이라는 놀라운 성적을 받을 수 있었다. 나 역시 공로를 인정받아 경기가 끝난 뒤에 경상남도 체육상을 받았다.

이런 일들이 축적되니 주목받는 공무원이 될 수 있었다. 어떤 일이든 신나서 하게 되었고 정말 일에만 빠져 지낸 시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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