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우의 행복한 도전②] “오늘 하루가 인생의 전부다”

이기우 전 이해찬 총리 비서실장. <사진 인천일보 양진수 기자>
“‘100년에 한 번 나올까 말까 한 공무원’. 내가 교육부 장관 시절에 했던 말이 지금도 회자되고 있다. 다시 생각해도 맞는 말이다.”(이해찬 전 국무총리) “그의 지칠 줄 모르는 일에의 열정, 교육에 관한 전문적 식견, 그 밖에 그가 신중히 여기는 따뜻한 인간관계”(김황식 전 국무총리) “하위직 공무원에서 시작하여 차관까지 한 계단 한 계단 올라가면서 부딪히는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이 인상적이고 감동적이다.(박성훈 인천재능대학교 이사장)
이기우 전 재능대총장에 대한 평가다. 그렇다. 이기우 전 총장이 작년 가을 낸 <이기우의 행복한 도전>(알파미디어)에 두명의 전직 국무총리와 재능그룹 회장이 쓴 추천 글은 되레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아시아엔>은 이 전 총장의 자서전 격인 <이기우의 행복한 도전>을 연재한다. 또한 아시아엔 영어판에도 번역, 게재해 영어권 독자들도 읽을 수 있도록 할 예정이다. 이기우 총장과 같은 공직자가 해외에서도 많이 배출됐으면 하는 바램에서다. <편집자>

[아시아엔=이기우 이해찬 전 국무총리 비서실장, 한국전문대학교육협의회 회장 역임] “이 사무관, 고등학교밖에 안 나왔어요?”

교육부 서무계장 때 정희채 차관이 내 인사 기록 카드를 보다가 깜짝 놀라서 물어본 질문이다. ‘고졸 신화’의 시작이었다. 달리 생각하면 고등학교만 나왔어도 일하는 데는 지장이 없었다는 뜻이 아닌가. 학력을 보지 않았으면 나타나지도 않았을 질문이다.

내가 고졸 출신의 대명사가 된 것은 일과의 운명적인 만남에서 시작되었다. 대학입시에 실패하고 재수할 돈이 없어 친구 따라 공무원 시험에 응시하여 합격한 것이 발단이었다. 고향인 거제시의 거제교육청 9급 공무원으로 들어가 대학입시를 준비하려고 했다. 마음이 콩밭에 있으니 맡은 일을 제대로 할 리 없었다.

근무 태만으로 갑자기 내 책상이 없어지는 불상사가 생겼다. 정신이 바짝 들었다. 내가 하는 일에 최선을 다하지 않으니 사람들이 바로 알아보았다. 왜 대학에 가려고 하는가? 인정받기 위해서이다. 그런데 대학 문턱에 들어서기도 전에 일을 못해서 그 자리도 쫓겨날 판이었다. 그야말로 위기였다.

당장 때려치우고 재수 공부에 전념할 것인가? 아니면 정신을 차리고 열심히 일을 해서 불성실의 오명을 벗을 것인가? 고민하다가 현재 하는 일에 전념하기로 결심했다. 한 번 실수는 병가지상사(兵家之常事)라고 했다. 이때의 실수가 인생을 송두리째 바꾸어 놓았다. 열심히 하루하루 성실히 일하다 보니 대학을 꼭 가야겠다는 꿈을 잊어버렸다. 물론 친구들이 소위 명문 대학을 다니는 모습을 보면 부럽기도 했다. 하지만 그것이 일을 그만두고 입시 현장으로 달려갈 정도의 강한 힘으로 작용하지는 않았다.

이때부터 진실(眞實), 성실(誠實), 절실(切實)의 ‘삼실철학(三實哲學)’이 자연스럽게 생겼다. 일을 어떻게 할 것인지, 인생을 어떻게 살 것인지에 대한 원칙이 정해진 것이다. 삼실철학으로 공무원 생활을 하다 보니 일이 재미있고 즐거웠다. 9급 공무원에서 승진의 사다리를 막힘없이 올라갈 수 있었다. 9급에서 7급으로, 5급으로 계속해서 올라갔다. 대학을 나오지 않았다는 것이 업무를 수행하고 승진하는 데 걸림돌이 되지 않았다. 그리고 어느 날 교육부 차관이 되었다.

물론 교육부 사무관 시절에 주경야독으로 대학 과정을 졸업했지만, 고졸에서 사무관을 시작했으니 고졸 하급 공무원에서 차관까지 오른 공무원의 신화라는 별명을 얻게 된 것이다.

공무원 생활을 마치고 인천재능대학교 총장으로 새로운 길을 시작했다. 영업부 대리의 심정으로 열심히 일하다 보니 어느덧 4년 임기의 총장을 네 번이나 연임하게 되었다. ‘4선 총장’의 신화가 또 따라붙었다. 14년 동안 총장을 하면서 하위권 대학을 1등 대학으로 만들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총장님, 자서전 안 쓰세요?”
오래전부터 주위에서 많은 사람이 자서전 쓰기를 권유했다. 이번에 서툰 글이지만 책을 내기로 결심한 이유는 세 가지이다.

하나는 이 시대 청춘들에 대한 격려와 위로이다. 50년이 넘는 세월 동안 ‘교육’의 범위를 벗어난 적이 거의 없다. 교육자로서 청년들에 대한 책임과 희망을 가지지 않을 수 없다. 그런데 현재 꿈을 잃은 청춘들, 어쩌면 더 이상 도전하지 않는 청춘들에게 꿈과 도전이 거창하거나 멀리 있지 않다는 것을 들려주기 위해서이다.

점심으로 라면을 맛있게 먹는 것도 꿈이고 도전이 될 수 있다. ‘겨우 라면’이 아니라, 이 라면이 내 조직 세포를 깨우는 자양분이 될 수 있으면 그것으로 내 하루의 도전은 성공한 것이고 꿈에 한발 더 다가선 것이다. 굳이 인생 설계라는 큰 무게로 자신을 짓누를 필요도 없다. 차라리 지극히 현실주의자가 되어 순간을 채워 나가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수많은 경로의 삶 중에서 실제 그런 삶이 ‘여기 있다’는 것을 전해 주고 싶은 마음이다.

또 다른 이유는 나를 위해서다. 워낙 대단한 분들의 삶이 많아서, 내 삶 자체가 자랑하거나 과시할 만한 인생이 못 된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그럼에도 부끄러움을 이길 수 있었던 것은 내 삶의 객관화 때문이다. 인간의 가장 높은 지능은 바로 ‘자기 객관화’라고 한다.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 소크라테스가 “너 자신을 알라.”라고 했듯이 말이다.

그 어려운 것을 시도함으로써 나도 잘 모르는 나 스스로를 조금이라도 더 잘 알아보기 위함이다. 내 지난 삶을 길게 펴놓고 돌아보니 수많은 인연과 선택의 기로에서 방황하던 나를 다시 만날 수 있었다.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의사 결정에 몸서리치기도 하고, 쉬운 길을 두고 올곧고 먼 길을 선택한 순간에 잠시 힘들어하기도 했다. 이 치열한 자기 검열을 계기로 나는 나 자신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었고, 능력과 한계도 동시에 깨달을 수 있었다.

세 번째 이유는 내 삶에 의미 있는 국면을 열어 준 소중한 분들에게 감사하기 위해서다. 뼈와 살을 단단히 만들어 주셔서 지금도 맨몸으로 한파를 견딜 수 있는 강철 같은 체력을 물려주신 부모님, 유년 시절 새로운 가능성의 세계를 열어 주신 고향 연초중학교 이명걸 선생님과 김영진 선생님, 그리고 부산고등학교·교육부·국무총리실·한국교직원공제회·인천재능대학교에서 동고동락했던 분들과의 기억을 반추함으로써 그 가치와 의미를 다시 새기고 싶다. 처음 만남은 하늘이 만들어 주는 인연이고, 그다음부터는 사람이 만들어 가는 인연이라고 했다. 서로에게 의미 있는 존재가 되기 위해 함께 노력하며 먼 길을 동행해 준 분들의 이름을 한 자 한 자 눌러 적으면서 감사한 마음을 더 오래 기억하고 새기고 싶다.

나는 무슨 일을 하든 늘 도전하는 그 마음이다. 그 도전은 무슨 일을 하든지 내 고향 거제와 함께 가는 것이다. 내가 태어나고 자라고 나를 성장시켰던 고향을 외면하고는 나는 잘 살았다고 자신할 수 없다. 아니, 태어난 강을 찾아 죽음을 무릅쓰고 거슬러 올라가는 연어처럼 거제에 치유와 재생을 산란하지 않고서는 내 삶이 완성되었다고 말할 수 없다.

돌이켜 보면, 삼실철학과 영업부 대리의 자세로 오늘 하루를 인생의 전부처럼 살아올 수 있었던 것은 어제의 나를 철저히 잊고 오늘 하루를 새로운 인생으로 시작했기 때문에 가능했다. 오늘의 태양이 어제의 태양과 같을 수 없듯이 또 다른 오늘 하루가 내 인생의 전부라는 마음을 다짐해본다.

Leave a Repl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