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우의 행복한 도전⑦] 고향 거제교육청서 뼈 아픈 체험

필자가 공무원으로 첫 근무지는 부산 대연동우체국이었다. 우체국 청사는 이후 현재의 모습으로 바뀌었다.

“그러나 평생 잊을 수 없는 고마운 시간이었다”

[아시아엔=이기우 한국전문대학교육협의회 회장 역임, 이해찬 전 국무총리 비서실장] 결핵성 늑막염에 걸려 1년을 휴학한 뒤 다시 2학년으로 복학했지만 공부가 쉽지는 않았다. 상의할 어른도 없었고 신경을 써줄 만한 가족도 멀리 떨어져 있었다. 그뿐만 아니라 막상 공부를 하려 해도 언제 늑막염이 재발할지 몰라 공부 자체가 두려운 상태였다. 친구네 집 다락방에 기거하며 혼자 학교를 다니는 것도 마음을 잡기가 어려운 조건이었다. 대학 준비는커녕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태로 졸업을 맞이하게 되었다. 남들이 대학 간다니까 엉겁결에 원서나 써 보자는 마음이었지만 꼭 어느 대학에 가겠다는 목표도 없었다.

돈을 모아서 입시 준비를 다시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던 차에 공무원을 준비하는 친구를 우연히 만나 시험을 같이 치게 되었다. 그 당시에 부산고를 다닐 정도의 실력이면 9급 시험에 합격하는 일이 별로 어렵지는 않았다. 그렇게 해서 처음 근무하게 된 곳이 바로 부산 대연동 우체국이었다. 그 당시 9급으로 들어가면 조건부 서기보로 6개월을 지내야 했다. 하숙방이 필요해서 같은 우체국 서기보로 있는 선배와 함께 방을 쓰게 되었다. 그런데 서기보 월급으로는 한 달 하숙비가 해결이 안 되는 것이 아닌가. 자연스럽게 돈을 벌려면 고향으로 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숙비를 아껴 저축할 요량이었다.

필자가 교육공무원이 돼 처음 근무한 곳은 거제교육청이었다. 이후 거제교육지원청으로 이름이 바뀌었다. 그는 여기서 평생 잊지 못할 소중한 교훈을 얻었다. 

다시 시험을 치고 교육행정 공무원이 되었다. 자청해서 거제교육청으로 보내 달라고 했다. 그렇게 거제교육청 서무계 서기보로 자리를 바꾸게 되었다. 이때 일을 제대로 배우고 제대로 할 마음을 가졌으면 좋았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그때까지 대학을 포기하지 않고 있었기에 얼른 돈을 벌어서 대학 공부를 시작하겠다는 생각뿐이었다. 그러니 일이 손에 잡힐 리가 없었다. 마음은 늘 딴 곳에 가 있었다. 지금 생각하면 얼굴이 화끈거리지만 그때는 정말 그랬다.

그렇게 몇 개월이 지났을 때였다. 어느 날 출근해서 깜짝 놀라고 말았다. 내 책상이 사라진 것이 아닌가? 알고 보니 근무 태도가 성실하지 못한 나를 마땅치 않게 생각하던 상사가 나를 시설계로 전출 보낸 것이었다. 시설계로 가서 내가 한 일이라고는 하루 종일 책상에 앉아 서류 베껴 쓰는 일이 전부였다. 그 당시만 해도 복사기가 없을 때라서 서류 사이에다 먹지를 넣어 사람이 직접 눌러서 써야 복사본을 만들 수 있었다. 내가 맡은 일이 바로 그 일이었다.

사실 내게 그 일을 맡긴 것은 나가라는 말이나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나는 바로 그때 제대로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그래, 지금까지 내가 대체 무슨 생각으로 일했던 거지?’ 반성하는 마음이 밀려왔다. 책상이 사라진 일은 나에게 충격인 동시에 정신을 차릴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갑자기 모든 것이 선명해지면서 정신이 번쩍 들었다.

참회하는 심정으로 매일 책상에 정자세로 앉아 서류를 베껴 썼다. 소처럼 내게 맡겨진 서류를 꾸역꾸역 베껴 나갔다. 이건 누가 나에게 맡긴 일이 아니라 나 스스로가 나에게 내린 형벌임을 곱씹었다. 그러면서 내 속마음을 들여다보았다. ‘그래, 지금 정신 차리지 않으면 앞으로 무슨 일을 한다 한들 과연 누가 나를 믿을까. 제대로 하지 않으면 이 순간은 내 인생에서 씻을 수 없는 기억으로 남을 거다. 내가 이런 식으로 일을 그만두면 평생 욕을 먹는 것은 물론이고, 나에게는 실패의 기억으로 남게 될 텐데 앞으로 어떤 일을 하더라도 지금 순간의 기억이 멍에가 되겠지. 이 순간에 이걸 극복하지 못하면 안 된다. 열심히 하자. 그저 묵묵히, 열심히, 내 진짜 모습을 보여 주자.’

그 뒤로 정말로 3개월간 화장실 가는 시간만 빼고 정자세로 앉아서 서류 베껴 쓰는 일만 했다. 동료 직원들과 상사들은 내가 며칠 버티지 못하고 사표를 쓰고 나갈 것으로 생각했던 모양이었다. 처음에는 여기저기서 나를 보고 쑥덕거리는 소리가 들렸지만 차츰 그 소리가 사라져 갔다. 나를 보는 직원들의 눈길이 달라졌다고 느껴지던 어느 날, 출근해 보니 내 책상이 다시 원래의 서무계로 돌아와 있는 것이 아닌가. 자그마치 3개월이 지난 뒤였다. 나에게는 그 3개월이 평생 잊을 수 없는 기억으로 남아 있다. 왜냐하면 그 뒤의 내 성실한 공무원 생활은 서류를 베끼던 그 책상 앞의 반성과 마음가짐에서 출발한 것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책상이 사라진 그날은 내가 진짜 공무원으로 태어난 첫날이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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