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우의 행복한 도전 17] ‘김대중 정부 100대 과제’에 교육부안 모두 관철시킨 비결
[아시아엔=이기우 한국전문대학교육협의회 전 회장, 이해찬 국무총리 비서실장 역임] 1998년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전문위원 자격으로 참여하게 되면서 제일 먼저 한 일은 대통령이 5년 동안 추진해야 할 100대 과제를 만드는 일이었다. 부처별로 3~4개씩 만들라는 지시가 내려왔다.
과제를 만들기 위해 교육부의 두뇌라고 할 수 있는 과장과 국장을 전부 모았다. 그렇게 마라톤 회의를 하여 꼭 필요한 12개의 안을 만들었다. 12개 안 모두 교육부로서는 반드시 추진해야 할 사안이었기에 12개 모두를 보고하기로 했다.
그 당시 인수위의 위원장은 따로 있었고, 부위원장 격이 바로 이해찬 의원이었다. 하지만 이해찬 의원이 실질적인 주무위원이나 마찬가지였다. 마침내 보고를 하게 되었는데 각 부처의 전문위원들이 벌떼처럼 달려들어서 교육부의 안을 조목조목 반박하는 것이 아닌가. 물론 회의와 토론을 통해 더 좋은 안을 만들어 내는 과정은 필요했지만, 나중에는 이해찬 의원까지 나서서 교육부 안을 하나하나 지적하기 시작하자 나는 속에서 열불이 났다.
솔직히 말하자면 교육에 대한 경험도 없는 다른 부처의 위원들이 교육에 대해서 알면 얼마나 알겠는가 하는 마음도 없지는 않았기에 마음이 많이 상했다. 삐걱대는 소리를 내며 진행된 회의 마지막에 이해찬 의원이 왜 3~4개의 안이 아니라 12개나 되는 안을 들고 왔느냐고 몰아쳤다. 거기에 대해서는 더 이상 할 말이 없었다.
“새로 해 오세요.” “알겠습니다.” 교육부로 돌아오면서 나는 면목이 없었다. 내가 12개 안을 준비시켰는데 관철을 못 시켰으니 모두가 내 책임이나 마찬가지였다. 다시 국장과 과장 들을 소집했다. 하지만 아무리 다시 봐도 12개 안을 4개로 축소시킨다는 것은 불가능했다. 회의를 거듭한 끝에 안을 축소시키지 말고 12개 안을 4개 안 속에 녹여 넣겠다는 전략을 세웠다. 그러면 실질적으로는 12개 안이 모두 관철되는 것이나 마찬가지라는 판단이었던 셈이다.
다시 보고를 하게 되었는데 여기서 기절초풍할 일이 생겼다. 다른 사람들은 안이 어떻게 바뀌었는지 전혀 알지 못한 채로 4개 안을 통과시키려는 분위기였다. 그때 이해찬 의원이 제지를 했다. “이거 달라진 게 뭐 있어요? 저번 거에 비해 개수만 줄어들었는데?” 심장이 쿵 하고 내려앉는 기분이 들었다.
이해찬 의원을 다시 보게 된 순간이었다. 지난번에 그렇게 말이 많았던 다른 부처의 전문위원들은 아무도 몰랐다. 오직 이해찬 의원만이 이전 내용을 전부 기억하고 이 안이 달라지지 않았다고 정확하게 지적한 것이다. 그러나 나도 이대로 물러설 수는 없었다. 정책 입안자로서의 오랜 고민과 자존심이 담긴 안이었기에 12개의 과제를 꼭 통과시키고 싶었다.
“네, 다시 하겠습니다.” 그렇게 고개를 숙이고 나오면서 회의실 참석 인원에게 보여준 자료를 전부 다시 걷어 왔다. 보통 나눠 준 자료는 그대로 두고 내 자료만 챙겨 나오는데 거기 있던 자료 전부를 회수해 온 것이다. ‘좋다. 다시 검토해 보자’ 하고 돌아왔지만 다시 국·과장들을 불러 모을 수는 없었다. 밤을 새워 내용을 다시 마련했다. 12개의 안을 4개로 다시 만든 이 안이 교육부에 꼭 필요한 과제라는 판단이 없었다면 그렇게까지 추진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교육부를 대표하는 전문위원이라는 책임감으로 아무리 원점에서 재검토를 해도 크게 뺄 것이 없었다. 그렇다면 답은 하나였다. 보고서를 바로 내지 않고 버텼다. 시간이 지나자 인수위원회의 실무자가 교육부쪽 자료가 넘어오지 않는다고 야단이었다.
나는 태연하게 맞받아쳤다. “독촉한다고 그렇게 쉽게 만들어집니까?” “당장 내일이 당선자께 보고하는 날인데 어떻게 하실 겁니까?” 내 복안은 따로 있었다. 데드라인까지 버티다가 교육부의 안을 넘기면 자연스럽게 기존의 교육부 안이 100대 과제에 포함되어 통과될 것으로 생각했다.
예상대로 마지막 날 제출된 교육부의 안은 결국 100대 과제에 자연스럽게 포함되었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내가 모셔야 할 새 정부의 교육부 장관으로 이해찬 의원이 오게 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