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우의 행복한 도전 21] ‘교육부 꽃’ 기획관리실장, 이해찬 안을 김덕중이 관철시켜
[아시아엔=이기우 한국전문대학교육협의회 전 회장, 이해찬 국무총리 비서실장 역임] 많은 사람이 알기로는 이해찬 장관이 나를 워낙 아꼈기에 교육부 기획관리실장으로 발령한 사람도 이해찬 장관으로 알고 있다. 하지만 여기에는 약간의 착오가 있다. 물론 애초에 나를 기획관리실장으로 발탁하려고 했던 분은 이해찬 장관인 것이 맞다. 그렇지만 내가 기획관리실장으로 발령받은 것은 그 한참 뒤의 일이다.
저간의 사정은 이러하다. 어느 날, 교육부 차관이 이해찬 장관이 나를 기획관리실장으로 앉히려고 한다는 말을 전했다. 나로서는 정말 꿈에도 생각지 못한 자리였다. 감사했지만 조금 벅찼다고 할까. 교육부에서 장관, 차관 다음이 바로 기획관리실장이라는 자리이다. 나는 차관한테 이렇게 말했다.
“차관님, 제가 어떻게 기획관리실장을 한단 말입니까. 지금 현직 실장이 제 선배인데. 아닙니다, 그 자리는 제가 갈 자리가 아닙니다.”
며칠이 지나고 다시 차관이 나를 불러 하는 말이 아무리 생각해도 내가 실장을 해야 한다는 말이었다. 그래도 역시 안 한다고 말하니 차관이 대뜸 화를 냈다. “그럼 항명하겠다는 겁니까?”
그때는 이미 장관이 총무과장을 시켜서 원래 있던 기획관리실장을 한국교직원공제회 이사장으로 보내려고 일을 착착 진행하고 있던 터였다. 밖에는 내가 기획관리실장으로 내정됐다는 소문이 파다하게 퍼진 뒤였다. 여기저기서 축하 전화가 걸려 왔다.
그런 와중에 장관이 바뀌게 된 것이다. 장관이 바뀌니까 그 당시 한국교직원공제회 이사장으로 있던 분이 자신과 친한 연줄을 타고 전화를 걸어 이야기를 꺼냈다. 장관도 바뀌었는데 그 인사를 꼭 진행해야겠냐고 말이다. 이러저러한 경로를 거쳐 내 인사에 관한 말은 새로 부임한 김덕중 장관에게까지 전해졌다. 얼마 지나지 않아 장관이 나를 불렀다.
“이 국장, 실장으로 내정되어 있는데, 안 하려고 애를 썼다는데 지금도 그 마음에 변함이 없습니까?” “네, 저 진짜 안 하고 싶습니다. 국장 더 하고 싶습니다.” “그래요?”
결국 내 인사는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게 되었다. 이미 장관직을 떠난 이해찬 장관으로서는 자신이 장관을 그만둔 것도 마음이 좋지 않은데, 자기가 해놓고 나간 인사가 도루묵이 되자 더욱 화가 난 것 같았다. 그래서 어떻게든 나를 자기 가까운 곳에 데려가려고 힘을 썼고 결국 당에서 연락이 왔다. 수석전문위원 자리를 하나 만들어 놨으니 당으로 들어오라는 이야기였다.
나는 그동안의 사정은 알지 못했지만 가야겠다는 결심을 굳히고 준비를 마쳤다. 마침내 당에서 공식적으로 공문이 왔다.
그러자 김덕중 장관이 다시 나를 불렀다. 그 당시 나는 교육자치지원국장으로 일하고 있었는데 여전히 교육부 내에서 나에 대한 의존도가 높은 상황이었다. 김덕중 장관이 나를 불러 진지하게 말을 꺼냈다.
“꼭 가야 되겠어요?” “네, 제가 교육부 대표 선수로서 당으로 가서 교육부 일을 돕겠습니다.” “좀 더 신중하게 생각해 보면 안 되겠습니까?” “네, 장관님이 그렇게까지 말씀하시면 더 생각해 보겠습니다.”
장관은 그래도 미덥지 못했는지 그다음 날 다시 나를 불러 이번에는 분명하게 나를 잡았다. “가지 말고 나 좀 도와주세요. 아무리 생각해도 이 국장이 빠지면 내가 힘들겠습니다.” “그러면 저쪽에 1급 자리 하나를 놓치게 되는데 괜찮으시겠습니까?” “1급 자리 하나 놓쳐도 이 국장 없으면 일이 안 되겠어요.” 결국 그 파견 자리는 보건복지부 쪽으로 넘어갔고, 계속 국장으로 일한 지 4개월 만에 나는 마침내 김덕중 장관 밑에서 기획관리실장으로 발령을 받게 되었다.
순리를 따르며 최대한 선후배의 도리를 지키려 노력한 끝에 얻은 결과였다. 이제는 더 이상 자리를 거부할 수 없게 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고졸 출신 9급 공무원이 교육부의 쟁쟁한 고시 출신 공무원들을 제치고 서열 3위, 교육부의 꽃 기획관리실장에 오르게 된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