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우의 행복한 도전 24] “이기우 통하면 안 되는 일 없어···그가 못 하면 정말 할 수 없는 일”
[아시아엔=이기우 한국전문대학교육협의회 전 회장, 이해찬 국무총리 비서실장 역임] 1998년도에 교육세 문제로 청와대에 협의하러 들어간 적이 있다. 바로 교육세 폐지 때문이었다. 교육세라는 것은 안정적인 교육재정 확보를 위해 꼭 필요한 것인데 이를 없앤다는 것은 교육부로서는 도저히 받아들이기 힘든 일이었다.
결과적으로 교육세를 없애지 않게 된 것은 이해찬 장관의 공이었다. 하지만 그 진행 과정에서 부처 합의가 되지 않아 애를 먹었고, 청와대에서 이 문제로 부처 1급들만 모아서 회의를 하게 된 것이다. 청와대 관계자는 교육부 대표로 국장 자격인 내가 나오자 무척 놀라는 눈치였다. 평상시에도 내가 어떤 문제든 한번 잡으면 결코 놓지 않고 뜻을 관철시킨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부담스러웠던 것 같다. 내가 발언할 차례가 되자 나는 교육부를 대표해 거침없이 말을 시작했다.
“이거 없애면 안 됩니다. 김대중 대통령이 교육을 망친다는 그런 비판도 나올 수 있는 사항입니다. 교육세를 대통령이 없앴다? 그러면 엄청난 부담이 됩니다. 여기 계신 분들이 아무리 국가 재정 문제를 잘 해결한다지만 교육계 정서는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이거는 함부로 해서는 안 됩니다.”
그러자 비서관이 어쩔 수 없다는 듯이 말했다. “네, 그러면 오늘 결론을 내리지 말고 다음에 다시 회의하도록 합시다.” 물론 그 뒤로 회의는 다시 열리지 않았다. 그대로 교육세 폐지 문제는 별도의 언급 없이 없었던 일이 된 것이다. 이유는 간단했다. 청와대 비서관이 보기에도 내 말이 틀린 것이 없다고 판단한 것이다. 평상시 일을 하면서 대충대충 넘어가 본 적이 없는 내 이미지가 큰 도움이 되었다고 생각한다.
이렇게 일을 확실하게 처리하는 것은 민원을 해결할 때도 똑 같았다. 보통 민원을 받아 합리적인 과정을 거쳐 해결이 잘되면 서로 좋을 뿐만 아니라 아무런 문제가 안 생긴다. 그러나 해결이 안 되었을 경우는 어떻게 될까. 이런 경우 별다른 설명도 없이 유야무야 넘기는 경우가 많다. 바로 이때가 조심해야 할 때다. 이 순간 결정적으로 상대방의 신뢰를 잃게 된다. 나는 다르게 생각했다. 민원 요청이 들어왔을 때, 일이 잘 풀릴 때보다 잘 풀리지 않았을 때 어떻게 하느냐가 중요하다. 언제나 그렇다. 잘 될 때보다 잘 안 될 때가 더 중요하다.
예를 들어 어느 지역 고등학교 교감 선생님을 승진시켜 달라는 누군가의 요청이 있다고 하자. 그해에 교장 승진 자리가 일곱 명이 있는데 이 사람이 평가 결과 10위라면 아무리 합리적인 노력을 해도 안 된다. 안 되는 일은 안 되는 것이다. 민원을 넣었던 사람에게 미안하다고 한마디 하고 넘어가면 될까? 아니다.
그러면 안 된다. 부탁하는 당사자는 ‘백(back)’이 들어가면 될 수 있을 것으로 믿고 부탁했을 것이다. 그런데 잘 안 되었다고 하면 민원을 넣었던 사람은 ‘이 양반한테 부탁해서는 안 되겠다. 다음에는 더 센 사람한테 해야겠다’라고 잘못 생각할 것이다.
나는 달랐다. 이미 안 되는 일로 판명된 경우라도 거기에서 그치지 않았다. 안 되면 왜 안 되는지, 어떻게 해야 만회할 수 있는지를 마치 의사가 수술하듯이 정확하게 진단해서 알려 주었다. 이 경우 백이면 백 민원을 넣었던 사람이 감동을 받았다. 당연히 소문이 날 수밖에 없었다.
“이기우를 통하면 안 되는 일이 없다.”, “이기우가 못 하면 정말 할 수 없는 일이다.”라는 말은 바로 이런 과정을 거쳐 탄생했다. 이 말은 내가 부정한 방법으로 무소불위의 힘을 휘둘렀다는 뜻이 결코 아니다. 잘되는 일보다는 오히려 안 되는 일이 어떻게 해서 안 되는지, 안 되는 일을 되게 하려면 어떤 합리적인 과정이 필요한지를 그 누구보다 성실하게, 진심을 담아 알려 주는 일을 자처했기에 얻게 된 평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