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우의 행복한 도전 29] 이해찬 총리 “이 실장, 나와 역할 분담을 합시다”

이기우 총장은 1998년 이해찬 교육부 장관을 만나 20년 이상 깊은 인연을 잇고 있다. 사진은 지난해 12월 찍은 거다

[아시아엔=이기우 한국전문대학교육협의회 전 회장, 이해찬 국무총리 비서실장 역임] 이해찬 장관이 국무총리로 가면서 나는 국무총리 비서실장으로 발탁되었다. 바로 2004년 7월의 일이다. 그 과정에서 우여곡절이 많았다. 노무현 대통령과 독대를 한 뒤 대통령으로서는 나를 기용할 생각이 더욱 확고해졌던 것 같다.

나중에 내 뒤에 바로 대통령을 만난 사람의 이야기에 따르면 “이제 교육 문제 자신 있다”고 대통령이 직접 말했다는 소리가 있을 정도였다. 이렇게 해서 여기저기 내가 교육부 차관으로 내정되었고 곧 발표가 날 것이라는 소문이 돌기 시작했다.

그런데 바로 이 시기에 이해찬 총리 보좌관 이강진 수석에게 전화가 왔다. “국무총리 비서실장으로 와 주세요.”

이해찬 장관과의 인연도 있었고, 더군다나 차관급 국무총리 비서실장이라는 자리였기에 바로 가겠다고 답할 수도 있었지만 나는 교육부 차관 자리에 미련이 있었다. 이 때문에 이강진 수석의 전화를 받고 바로 승낙을 할 수가 없었다.

“고맙습니다. 그런데 고민을 좀 해 봐야 할 것 같습니다.” 차관으로 내정이 되었다는 내 속의 말은 하지 못하고 고민의 시간이 계속되었다. 그러던 차에 인연이 있던 국회의원을 우연히 만날 기회가 있었다. 이분에게 속사정을 털어놓으니 한마디로 시원하게 정리해 주었다.

“이사장님이 교육 부분은 다 꿰고 있지 않습니까. 차관 자리는 알고 있는 걸 펼치는 자리이고, 국무총리 비서실장 자리는 또 다른 부분을 경험하는 좋은 기회라고 생각합니다. 무조건 그 자리로 가세요.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그의 충고에 힘을 얻어 나는 이강진 수석에게 비서실장으로 가겠다는 의사표명을 했다. 그런데 문제가 있었다. 청와대에서 승낙이 떨어지지 않았다. 청와대에서는 총리실에 다른 사람을 찾아보라는 말을 전했고, 총리로서도 포기할 수 없는 인사였던지라 갈등이 생긴 것이다.

“아니, 총리 시키면서 내 마음대로 비서실장 하나 못 씁니까?” 이해찬 총리는 쉽게 고집을 꺾을 분이 아니었기에 인사 결정은 계속 미뤄지는 상황이었다. 안 되겠다 싶은 생각이 들었다. 나는 잘 알고 지내던 청와대 총무비서관을 통해 대통령께 국무총리 비서실장으로 가겠다는 내 뜻을 전달했다. 대통령께서 양보를 해 주셨으면 좋겠다는 마음을 밝힌 것이다. 그렇게 해서 마침내 국무총리 비서실장으로 발령을 받게 되었다.

나중에 대통령은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함께 일했던 사람을 이렇게 끈질기게 찾아서 같이 일하려고 하다니, 공무원 사회에 이런 아름다운 일도 있군요.”

우여곡절 끝에 대통령에게 발령장을 받고 돌아오니 이해찬 총리가 반가운 얼굴로 나를 맞이해 주었다. 집무실에서 차를 마시면서 총리가 말을 꺼냈다. “이렇게 합시다. 오늘부터 이기우 실장이 잘하는 건 이 실장이 하고, 내가 잘하는 건 내가 하도록 합시다. 역할 분담을 하자 이 말입니다. 그 대신 이 실장이 한 일은 다 내가 한 일로 하겠습니다.”

말의 뜻인즉 전폭적으로 나를 믿어 줄 테니 소신껏 일을 하라는 것이었다. 그렇게 이해찬 총리는 나를 완전히 신뢰하고 있었다. 총리가 교육부 장관이었던 시절, 늘 장관에게 반대하거나 입바른 소리를 한 사람이 바로 나였다. 그것이 결과적으로 신뢰를 준 것이다.

이기우는 언제든지 바른말을 하고 정직하다, 일을 맡기면 틀림없이 완수한다는 믿음이 없었다면 가능한 일이었을까. 내 마음에도 총리의 진심이 전해졌다. 감동이 깊게 밀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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