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우의 행복한 도전 28] 노무현 대통령과 눈 마주친 사건

이기우 교육인적자원부 신임 차관이 노무현 대통령(마주 앉은이)이 지켜보는 가운데 인사말을 하고 있다. 당시 함께 차관에 임명된 사람들은 이기우 차관을 비롯해, 박영일(과기), 장인태(행자), 유진룡(문광), 김종갑(산자), 이규용(환경), 김성중(노동), 김창순(여성) 등 차관과 청장으로 문원경(소방방재), 이만기(기상), 김인식 (농진), 서승진(산림), 전상우(특허), 문창진(식약), 박종구(국무조정실 정책차장) 등이다. <사진 사람사는세상 노무현재단> 

[아시아엔=이기우 한국전문대학교육협의회 전 회장, 이해찬 국무총리 비서실장 역임] 한국교직원공제회 이사장으로 가자마자 한 몇 가지 일 중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이 라마다프라자제주호텔을 개장한 일이다. 호텔이 공제회 소유이니 이사장이 대표인 셈이다. 제주 도내에 있는 호텔 중에서도 라마다프라자호텔은 시설 면에서 월등히 투자를 많이 한 최고급 호텔이지만 그때까지만 해도 경쟁 호텔에 비해 아직 인지도가 낮은 편이어서 고객 유치가 쉽지는 않았다.

나는 백방으로 뛰어다녔다. 이 와중에 우근민 제주도지사를 통해 대통령이 참석하는 행사를 유치하게 된 것이다. 제주 4.3 사건과 관련해서 제주 지역 리더 400명 정도를 모아 진행하는 오찬 행사였다. 행사 유치 경험도 없고 이제 새로 문을 연 호텔에 어떻게 믿고 행사를 맡기냐는 주위의 반대가 있었지만, 우근민 지사가 나를 믿고 적극 추천해서 성사된 일이었다.

제주라마다호텔에서 열린 제주도민과의 대회장에 입장하고 있는 노무현 대통령과 부인 권양숙 여사

호텔로서는 큰 기회였다. 사장과 임원들 그리고 직원들은 준비 때문에 난리가 났다. 대통령이 참석하는 행사이니 음식부터 의전까지 더욱 철저해야 했다. 그런데 의전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이상한 일들이 생겼다. 원래는 대통령이 호텔에 도착하면 제주도지사와 이사장인 내가 대통령을 모시고 연회장으로 올라가기로 되어 있었는데, 행사 이틀 전날 따로 연락이 왔다. 나를 빼고 도지사와 도의회 의장이 모시기로 했다는 것이다. 일리가 있다고 생각하고 그렇게 하라고 했다.

교육인적자원부 차관에 임명되어 노무현 대통령으로부터 사령장을 받고 있다. <사진 사람사는세상 노무현재단>

이번에는 행사 들어가기 전 대통령이 20여 명의 내빈과 갖는 티타임 명단에 내가 빠지게 됐다는 전언이었다. 원래 있던 명단이 왜 하루 전에 조정되었는지 물어봄 직도 했지만 나는 그런 일에 워낙 철저하게 단련되어 있었기에 이번에도 그렇게 하라고 순순히 수긍했다. 물론 호텔 사장이나 간부들은 화를 낼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이럴 수가 있습니까. 사람 놀리는 것도 아니고요.” “아닙니다. 내가 노무현 대통령을 아예 모르면 한번 만나고 싶어서라도 뭐라고 하겠지만 아무 관계 없어요. 얼굴 못 뵈어도 좋습니다.”

그것보다 더 기가 막힌 일은 오찬 과정에서 원래는 대통령 테이블 근처에 배정된 내 자리가 대통령 테이블로부터 몇 줄이나 뒤쪽, 그것도 대통령을 등지고 앉는 구석 자리로 재배정된 일이었다. 대통령과 눈도 마주치기 힘든 자리였다. 나는 이번에도 그러려니 하고 자리에 앉았다. 결정적인 사건은 행사가 끝난 뒤에 일어났다.

행사를 다 마치고 대통령이 떠나기 전에 테이블에 앉아 있던 사람들이 테이블 앞으로 나와 대통령과 악수하는 시간이 있었다. 대통령은 40여명 되는 인원과 악수를 나누며 행사장 바깥으로 나가는 길이었다. 사회석에서는 “지금 대통령께서 행사장을 떠나고 계십니다”라는 말로 상황을 안내하고 있었다. 나는 악수하는 자리 쪽으로 나설 수가 없는 위치였기에 한참 뒤에서 박수를 치고 있었다. 그때 신기하게도 손을 흔들며 연회장을 빠져나가던 대통령의 눈이 나하고 딱 마주치게 되었다.

그러자 문을 나가려던 대통령이 나를 발견하고는 곧장 안으로 들어오는 것이 아닌가! 나 역시 놀란 마음에 사람들을 헤치고 대통령 쪽으로 나갔다.

“아니, 이 실장?” “네, 대통령님.”

이것은 대통령 경호 사상 하나의 큰 사건이나 마찬가지였다. 보통 행사가 끝나면 사람들이 절대 대통령에게 접근을 못 하게 되어 있다. 그런데 행사를 다 끝내고 나가려던 대통령이 아는 사람을 봤다고 참석자들을 헤치고 다시 돌아온 것이다. 대통령과 함께 밖으로 나가게 되었다. 대통령은 반갑게 물었다.

“제주도 사람도 아닌데 여기 어떻게 와 있습니까?” “제가 이 호텔 대표 아닙니까. 여기가 한국교직원공제회 사업체입니다.” “아, 그래요! 참, 내가 이 실장을 청와대 관저에 한번 부르라고 했는데?” 그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의전비서관이 뛰어나오면서 말하는 것이었다. “네, 아직 연락 못 했습니다.”

나는 “아이고, 뭐 그게 급합니까. 저는 괜찮습니다.” 하면서 대통령이 차에 탈 때까지 배웅했다. 그렇게 대통령과 몇 마디를 나누고 대통령의 차는 떠났다.

이렇게 무사히 행사를 다 마치고 돌아오자 직원들과 간부들이 여기저기서 환한 눈빛으로 나를 보는 것이 느껴졌다. “우리 이사장님이 대접을 받는 거 보고 정말 좋았습니다!”

그 뒤 비서실에서 정말로 연락이 왔다. 토요일에 관저에서 대통령 내외분과 식사를 하게 청와대로 들어오라는 전갈이었다. 대통령과 영부인을 모시고 마주 앉아 셋이서 식사를 했다. 대통령은 예전 국회의원 시절의 이야기를 하면서 그때 나 때문에 업무 파악하는 데 큰 도움을 받았다는 이야기를 풀어놓았다. 그러고는 두 시간 동안 교육 문제에 대해서 꼼꼼하게 질문하시는 것이었다. 내가 아는 한도 내에서 성심껏 답변을 드렸다. 아마도 이때 대통령은 차관이든 장관이든 나중에라도 꼭 나를 등용하려는 마음을 갖게 된 것 같았다. 어쨌든 나는 그 두 시간이 즐거웠다.

노무현 대통령처럼 가식이 없는 사람이 또 있을까. 정말 순수하고 인간적인 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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