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우의 행복한 도전 26] 노무현 대통령과 어려울 때 함께한 인연
[아시아엔=이기우 한국전문대학교육협의회 전 회장, 이해찬 국무총리 비서실장 역임] 앞서 차관 발표가 나기 전까지의 뒷이야기에 대해서는 말을 하지 않았는데 이야기를 조금 더 설명할 필요가 있겠다. 2002년 11월로 거슬러 올라가야 할 것 같다. 그 당시 부산에서 골프를 칠 일이 있었다. 친구와 동행하여 비행기에 탔다. 좌석을 확인하고 자리에 앉아 있는데 출입문 쪽에서 대통령 후보였던 노무현 후보가 비서관을 대동하고 타는 것이 아닌가.
신기하게도 비행기에 탄 사람들이 아무도 아는 척을 하지 않았다. 그때는 야권 단일화 합의 과정 중이었다. 노 후보는 대통령 후보자 중 가장 낮은 지지도를 얻고 있는 상황이었기에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래도 이건 아닌 것 같았다. 나는 안전벨트를 풀고 일어섰다. 그러자 옆에 앉은 친구가 말했다.
“이 실장, 뭐 하려고?” “저기 노무현 후보잖아. 인사드려야지.” “에이, 다 모른 척하는데 왜 이 실장이 아는 척을 해?” “난 저분과 인연이 있어. 남이야 뭐라든 나는 인사를 해야지.”
말 그대로 노 후보와 나는 조금 특별한 인연이 있었다. 노 후보가 종로 보궐선거에서 국회의원으로 당선될 당시, 인연이 닿아 여러 사람과 밥을 한 끼 같이 먹은 적이 있었다. 그게 전부였는데 국회의원으로 당선되고 전화가 왔다. 반쪽짜리 국회의원인데 상임위를 어디로 하면 좋겠느냐는 질문이었다. 그 당시 나는 기획관리실장이자 국회통으로 국회의원을 많이 만나고 있었으므로 교육위원회로 오시라고 권했다.
“교육위원회로 오세요. 교육은 대한민국의 모든 분야와 연결됩니다. 또 더 큰 일을 하시려면 교육에 대해서 기본적으로 알고 계시는 게 좋으니까 공부한다 생각하고 오십시오. 제가 도와드릴게요.”
그 말 때문인지는 몰라도 정말로 노무현 의원은 교육위를 선택했다. 기회가 있을 때마다 정책에 관한 자료를 만들어서 성실하고도 자세하게 설명해 드렸다. 노 의원 입장에서는 그게 고마웠던 것 같다.
세월이 흘러 노 의원이 대통령 후보가 된 것이다. 나는 어려울 때일수록 신의를 지켜야 한다고 믿는 쪽이다. 아무도 아는 척을 안 한다고 해서 나까지 그러면 안 되는 일이었다. 곧바로 노무현 후보에게 다가가 정중하게 인사를 올렸다. 노 후보는 반갑게 나를 맞아 주었다.
“어디 가십니까? 후보님.” “김해에 일이 있어서. 이 실장은요?” “저는 놀러 갑니다. 나중에 제가 모시러 오겠습니다.”
웃으며 인사를 나눈 뒤, 비행기에서 내리게 되었을 때 다시 노 후보를 찾았다. 그리고 나갈 때까지 동행했다.
“아직도 실장 하고 있습니까?” “뭐, 만년 실장 아닙니까?” 농담처럼 그렇게 대답했더니 노 후보가 미소를 지었다. 그렇게 인사를 나누고 헤어졌다. 이때까지만 해도 노 후보로 단일화 될 줄 몰랐다. 한 달이 지난 뒤 놀랄 만한 일이 벌어졌다. 노 후보가 대통령으로 당선된 것이다. 대통령이 되리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그 후 나는 모든 것을 잊고 지냈다. 그런데 노 대통령을 근거리에서 도왔던 친한 친구가 얼마 뒤에 직접 나를 찾아와 이런 말을 하는 것이 아닌가.
“내가 노 당선자 집에 갔는데 술자리에서 이러시더라. ‘이기우는 뭐를 하는고?’ 이렇게 말이야.”
나를 기억하고 계시다는 말이었다. 그러나 나는 그런 말을 듣고도 가만히 있었다. 평생을 살면서 단 한 번도 인사에 관한 청탁을 해 본 일이 없다. 언제나 나를 필요로 해서 데려다 쓰려는 사람이 먼저 있었기에 그 자리에 간 것이지 내가 원해서 가게 해달라고 청을 넣은 적이 없다. 그것이 내 자부심의 근간이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 3월 초에 차관 인사 발령이 있었던 것이다.
다시 5월에 이 친구에게 전화가 왔다. 이번에는 꼭두새벽이었다. “어젯밤에 열두시 가까이 노 대통령 하고 친구들 하고 청와대에서 한잔하고 나왔다. 바로 여관 갔다가 사우나 하고 나와서 전화하는 거야.”
친구의 말에 의하면 지난 저녁의 술자리는 부산상고 동기들을 초청한 술자리였다. 이 자리에서 노 대통령이 포도주를 제법 많이 마셨는데 내 친구에게 이렇게 말했다는 것이다.
“내가 이기우 실장한테 참 미안하다. 교육위 시절 신세를 많이 졌다. 누구보다 잘 안다. 차관 인사 때문에 미안하다.”
나중에 전해 듣기로는 노 대통령이 차관 후보자들의 면면을 보고받는데 참모들로부터 이기우가 차관이 되면 장관이 바지저고리가 된다는 식의 반대가 있었다고 한다. 중앙인사위원회에서 차관 후보에 올랐던 사람들 10명이 각각 40명에게 다면 평가를 받았고, 내가 최고점으로 96점이 나왔다. 40명 모두 이기우가 당연히 차관이 될 것이라고 적었다.
그런데 바로 이런 상황이 오히려 임명의 반대 근거로 활용되었다. 이 모든 상황을 잘 알면서도 어쩔 수 없이 다른 사람을 차관으로 임명했던 노 대통령의 여한이 그날 술자리의 아쉬움으로 나타난 셈이었다. 비슷한 이야기를 아주 오랜 시간이 지나고서 다른 경로를 통해서 또 전해 들을 수 있었다. 그 당시 노무현 대통령이 나에 대해 참 안타까워했다고 말이다.
차관이 되지 못한 그 일은 그날 그 시간부로 훌훌 털어 버렸다. 거기에 대해 아쉬운 것은 추호도 없었다. 다만 내가 이 일을 이렇게까지 적은 것은 노무현 대통령이 고마워서이다. 사람이 사람을 기억하고 인정해 준다는 것, 그것이 고마웠다. 노무현 대통령은 그렇게 신의가 있는 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