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우의 행복한 도전 25] “하루가 인생의 전부···원망은 흐르는 물에”

노무현 대통령이 서명하는 동안 문희상 비서실장, 유인태 정무수석, 송경희 대변인이 지켜보고 있다.

[아시아엔=이기우 한국전문대학교육협의회 전 회장, 이해찬 국무총리 비서실장 역임] 내가 등불로 삼는 좌우명이 몇 개 있다. 그중 하나가 바로 “하루가 인생의 전부다”라는 말이다. 사실 덧붙일 것이 별로 없는 말이다. 말 그대로 매일매일의 하루를 전부인 것처럼 생각하면서 최선을 다해 산다는 뜻이다. 최선을 다해 하루를 사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말은 쉽지만 실천이 어렵다. 매일 결심을 새롭게 다져야 하고, 자신을 성찰해야 하며, 특히 감사하는 마음으로 하루를 맞이해야 이렇게 살 수 있다.

그런데 이게 전부는 아니다. “하루가 인생의 전부다”라는 말은 분명 중요한 말이지만 여기에 그쳐서는 안 된다. 만약 하루를 인생의 전부처럼 열심히 살았는데 생각처럼 결과가 나오지 않는다면 어쩌겠는가? 이럴 때가 힘든 순간이다. 매번 열심히 한 만큼 좋은 결과가 나온다면 좋겠지만 삶이 늘 그렇지는 않다. 그렇게 안 되는 경우도 많고 오히려 예상보다 더 나쁜 결과가 나오기도 한다. 이런 때에 어떤 마음 자세로 대처하느냐에 따라 “하루가 인생의 전부다”라는 말의 무게가 달라진다. 흔들림 없이 연장될 수도 있고 아니면 아주 손쉽게 무너질 수도 있다.

2003년 3월의 어느 일요일이었다. 처리해야 할 일이 있어 일요일임에도 기획관리실장 사무실에 출근하여 일을 하고 있었다. 업무가 있을 때는 일요일에도 나와 일하는 것이 나에게는 일상적인 일이었다. 잠깐 쉬는 틈에 우연히 TV를 켜고 보는데 차관급 인사 발표 기사가 뉴스 자막으로 나오고 있었다. 나는 전화기를 들어 아내에게 전화를 했다.

“여보, 차관 발표 났어.” 실은 그때가 한창 교육부 차관 인사 결과가 발표되려던 무렵이었다. 인사 발표 전에 분위기라는 것이 있어서 나 역시 내심 기대하고 있던 것도 사실이었다. 밖으로 말은 안 하고 있었지만 내 그런 예감이 아내에게도 전해졌을 것이다. 아내는 당연히 내가 된 줄 알고 기뻐했다.

“정말요? 축하해요!” “아니, 내가 된 게 아니고 ◯◯◯씨가 됐어.” 나는 기분 좋은 듯 그렇게 말했다. 일순 어색한 정적이 흐르고 아내는 크게 실망한 눈치였다. 게다가 내 태연한 목소리를 듣더니 더 이해할 수 없다는 듯이 말했다.

“진짜예요? 어떻게 다른 사람이 됐는데 그렇게 기분 좋은 듯이 이야기할 수 있어요?” “후배지만 나보다 일을 더 잘할 사람이니까 축하할 일이고, 나는 그 골치 아픈 차관 직책 수행 안 해도 되니 좋은 거지.” 내가 계속 웃으며 말하니까 아내가 전화를 탁 하고 끊어 버렸다.

나라고 왜 더 높은 직급으로 승진하고 싶지 않았겠는가. 게다가 이전 정권에서 장관과 차관이 같은 지역 출신이면 안 된다는 상피제 때문에 여러 번 차관이 될 기회를 잃었던 나로서는 ‘이번에는…….’ 하는 기대가 없었다면 거짓말이다. 하지만 TV를 통해 나 말고 다른 사람의 이름이 흘러나오는 순간, 나는 곧바로 이전의 나를 잊었다. 차관이 되고 싶어 하던 나를 말이다.

내가 조직 생활을 하면서 지치지 않을 수 있었던 비결은 하루를 열심히 사는 것에도 있었지만, 만약 그렇게 했는데도 결과가 예상처럼 나오지 않았을 경우 예전의 나를 빨리 정리하는 방법에도 있었다. 필요하다면 예전의 나를 철저히 죽일 수 있어야 한다.

예전의 나는 오늘의 나와 라이벌이다. 남보다는 나라는 라이벌과의 싸움을 잘해야 한다. 어제의 나는 예상된 노력과 예상된 결과를 추구하는 낡은 존재이기에 이 라이벌을 죽여야 새로운 나로 매일을 새롭게 살아갈 수 있는 것이다. 이것은 수많은 경험을 통해 숱하게 단련된 나만의 대처 방법이다. 100% 차관이 될 것이라고 믿었던 그 예전의 나를 TV 자막을 보는 순간 딱 잘라냈다. 그러고는 버렸다. 예전의 나를 죽이니까 금세 현실을 인정할 수 있었다.

현실을 인정하니까 내가 스트레스를 받을 이유가 전혀 없었다. 나는 주어진 시간을 다시 열심히 살면 되니까 말이다. 어쩌면 그날 하루만큼은 술이라도 마시면서 서운함을 표현하면 좋았을지 모른다. 하루 정도는 말이다. 그러나 나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감사의 마음은 바위에 새기고 원망의 마음은 흐르는 물에 새겨야 한다. 나는 그렇게 믿는다. 내가 조금이라도 원망하고, 실망하고, 좋지 않은 마음을 갖게 된다면 그 핑계로 최선을 다해 하루를 살 수 없게 된다. 감사를 잊어서는 안 되지만 원망은 빨리 잊어야 한다. 원망은 흐르는 물에 새기면 된다. 물이 흐르면 원망은 자연스럽게 없어진다.

그날 저녁 우리 부부는 지인 내외와 함께 저녁을 먹었다. 마침 그날이 내 생일이어서 저녁 약속이 잡혀 있었던 것이다. 우리는 맛있는 음식을 먹고 일상적이면서도 소소한 대화를 나누며 즐거운 시간을 가졌다. 그냥 헤어지기가 아쉬워 음식점 건너편 노래방에 들러 한 시간 동안 노래를 불렀다. 그리고 집으로 돌아와 기분 좋게 잠들었다.

인간에게 매일 하루라는 시간이 공평하게 주어진다는 것은 생각만으로도 얼마나 가슴 벅찬 일인가. 감사하기에 열심히 살아야 한다. 하루를 온통 그런 마음 자세로 살 수 있다면 그 또한 감사한 일이다. 긴 인생을 내다보고 늘 계획을 세워 사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긴 인생도 당장 오늘 하루가 쌓여서 만들어지는 것이다. 나는 앞으로 똑같은 느낌으로 살 것이다. 이 결심은 결코 흔들리지 않을 것 같다.

Leave a Repl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