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우의 행복한 도전 30] 이해찬 “100년에 한번 나올까 말까 한 공무원”

노무현 대통령(오른쪽)은 이해찬 국무총리를 전적으로 신뢰하고 권한을 대폭 위임했다. 또 이해찬 총리는 이기우 비서실장을 전적으로 믿고 맡겼다. 이 총리는 이 실장더러 “백년에 한번 나올까 말까 한 공무원”이라고 말했다.

[아시아엔=이기우 한국전문대학교육협의회 전 회장, 이해찬 총리 비서실장 역임] 나와 관련하여 많은 사람에게 회자된 말이 바로 ‘100년에 한번 나올까 말까 한 공무원’이라는 말이다. 바로 이해찬 총리가 한 말이다. 물론 총리 시절에 한 말이 아니라 이미 교육부 장관 시절에 나를 경험하고, 장소를 바꾸어 가며 많은 사람 앞에서 세번이나 한 말이다. 그러한 믿음은 국무총리 비서실장으로 일할 때에도 고스란히 적용되었다.

나 역시 수석비서관 세 명에게 말했다. “당신들이 잘한 것은 직접 총리께 보고하세요. 안 되는 것만 나한테 가져오면 내가 처리하겠습니다.”

이런 믿음과 지지로 일을 나누어 하게 되니 총리실이 안 돌아갈 리가 없었다. 비서실 직원 88명이 각자 제 나름대로 기가 살아서 일을 하게 되었고, 결과적으로 직원들이 정말 좋아하면서 일을 하는 분위기가 자연스럽게 형성되었다.

한번은 총리가 밖에서 나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들어와 나를 부른 적이 있다. “이 실장, 이 실장이 일을 하면서 강하게 해야 하는데 너무 부드럽게 한다는 이야기가 있는데 어떻게 생각해요?”

나는 정색을 하며, 그러나 정중하게 대답했다. “총리님, 저 그건 못 바꾸겠습니다. 그런 소리 들어도 부드럽게 하겠습니다. 목에 힘 빼고 하겠습니다. 목에 힘준다고 일이 잘되는 건 아닙니다. 제 힘은 빼면 뺄수록 직원들이 더 협조해 주고 도와줍니다.”

총리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총리가 실세 총리가 될 수 있느냐 없느냐는 사실 대통령이 총리에게 어떻게 힘을 실어 주느냐에 달려 있다. 그 당시 노무현 대통령은 수석비서관 회의를 따로 하지 않고, 국무회의만 한 번씩 주재했다. 그 대신 총리가 수석비서관 회의를 주재하도록 했다. 그 결과를 일주일에 한 번씩 총리가 대통령에게 보고했으니 실세 총리 역할을 톡톡히 했던 셈이다.

13대 국회(1988-1992) 의원 시절 이해찬(왼쪽)과 노무현. 이들의 신뢰는 이때부터 20년 이상 줄곧 이어졌다. 

심지어는 국정원에서 대통령에게 하는 일일 보고를 총리가 대신 받을 정도였으니 더 이상 무슨 말이 필요하랴. 나는 비서실장으로서 이 모든 일을 책임지고 조율했다.

총리가 하는 일 중에는 오래된 문제의 매듭을 푸는 일도 있었다. 그 당시 부지 선정으로 말이 많았던 방폐장 문제는 물론 각 행정 부처에서 그동안 해결하지 못하고 꼬인 일들은 전부 총리실로 왔다. 오죽하면 그때의 총리실을 ‘하수 종말 처리장’이라고 했을까. 총리는 관계 부처 장관 회의를 통해, 한 번에 안 되면 몇 차례에 걸쳐 토론해서 결론을 내리고 이 모든 일을 해결해 나갔다.

회의를 통해 결론이 나면 이해찬 총리는 대통령에게 업무 보고를 하러 청와대로 들어갔다. 이 총리는 애연가였는데 대통령께 업무 보고를 하면서도 담배를 피웠다. 그러면 노무현 대통령은 “내도 한 대 주소.” 하며 같이 담배를 피우면서 그 업무 보고를 들었다.

이해찬 총리의 가장 큰 장점은 절대로 왔다 갔다 하는 법이 없다는 것이다. 자신만의 기준이 정해져 있고, 그 기준을 따라 일을 처리해 나갔기에 아랫사람이 일하기가 너무나 편했다. 밖에서 만나는 다른 부처의 사람들은 나만 보면 이해찬 총리와 일하느라 얼마나 어렵겠냐고 위로를 건넸지만 그건 이해찬 총리의 한쪽 면만 잘못 알고 하는 말이었다.

원칙이 있고 가는 길이 확실한 보스의 생각, 뜻에 맞추어 거짓말하지 않고 진심을 다해 성실하게 일하면 도대체 문제가 생길 리가 없다. 국무총리 비서실장을 하면서 총리에게 꾸중 한번 안 들었다고 하면 아마 모든 사람이 거짓말이라고 하겠지만 정말 그랬다. 보통은 아무리 생각이 분명한 사람이라도 밖에 나가서 윗사람을 대면하고 돌아오면 방향이 바뀌기 마련이다. 이 총리는 그런 것이 없었기에 일이 편했고 바로 그런 이유로 비서진으로 있었던 사람들과 몇십 년 동안 좋은 관계를 유지할 수 있었다.

돌이켜 보면 기획관리실장으로 일할 때는 사실 장관이나 차관이 수시로 바뀌다 보니 업무 내용이나 모든 노하우를 나만큼 아는 사람이 없었다. 장차관을 모시면서 정성을 다해 업무 내용을 잘 파악하도록 하는 것이 내 주된 일이었다. 반면에 비서실장은 그야말로 총리가 국정을 잘 수행할 수 있도록 보필하는 자리이기에 정책을 다룬다기보다는 윤활유 같은 역할을 하는 자리였다. 성실한 자세로 모든 걸 도와준다고 생각하고 일을 하다 보니 비서실장이라는 자리에 꼭 맞는 자질을 발휘하게 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예를 들어 총리께 보고를 하러 들어온 담당자들에게 이런 식으로 조언을 했다. “총리님은 보고받는 내용을 꿰뚫는 부분이 아주 탁월하고 빠릅니다. 그러니까 그분이 질문할 때 ‘이분이 뭘 알아?’ 이런 생각으로 대답을 어중간하게 하면 큰코다칩니다. 정말 확실히 아는 것은 확실하게, 어중간하게 아는 것은 꼬리를 내려서 ‘다음에 더 정확하게 파악해서 잘하겠습니다.’ 이런 식으로 보고해야 슬기롭게 보고가 되는 거지, 억지로 총리를 가르치려고 하면 안 됩니다.”

이렇게 조언을 해 주면 사람들이 다 고마워했다. 그 밖에도 장관이 총리에게 업무 보고를 하면 비서실장은 뒤에 앉아 그 전부를 듣게 될 때가 부지기수였다. 교육부에서는 오직 교육에만 신경을 썼다면 총리실에서는 정부 각 부처의 모든 일이 총리에게 보고가 되다 보니 국정 전반에 걸쳐 이 기간 동안 공부를 정말 많이 하게 되었다. 세상을 바라보고 국가가 돌아가는 과정을 종합적으로 몸소 체험하면서 내 개인에게는 엄청난 성장의 기회가 된 것이 바로 이 시절의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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