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우의 행복한 도전 32] 이해찬 총리 “이기우를 빼앗겼다”
[아시아엔=이기우 한국전문대학교육협의회 전 회장, 이해찬 국무총리 비서실장 역임] 1년 6개월이 넘도록 국무총리 비서실장직을 성실하게 수행하고 있던 어느 날이었다. 대통령 인사수석이 나를 찾아왔다. 곧 있을 인사이동에서 열네 개 부처 차관을 바꾸는데 교육부 차관직을 맡아 달라는 이야기였다.
후보 검증을 하다 보니 열세 명의 차관은 금방 결정됐는데 교육부 네 명의 차관 후보 중에 일을 맡길 사람이 없다는 것이었다. 인사위원 중 나를 잘 아는 사람이 한 명 있었고, 이기우 국무총리 비서실장을 교육부 차관으로 데려오면 잘할 거라는 추천이 있었다고 했다. 국무총리 비서실장인데 데려다 쓸 수 있겠느냐는 의문이 있었지만 일 잘하는 걸로 따지면 이기우밖에 없다는 말도 나왔다고 덧붙였다. 그래서 인사수석이 나를 한번 만나러 온 것이다.
사실 인사수석은 나를 만나기 30분 전에 이미 이해찬 총리를 만났다고 했다. 총리에게 비서실장을 교육부 차관으로 발탁하겠다고 하니, 총리로서는 거절하기가 쉽지 않았던 모양이다. 과거 노무현 대통령이 나를 교육부에 중용하려던 적이 있었다. 그때 이미 한 번 비서실장으로 뺏어 온 전력이 있으니 이번에도 또다시 대통령의 뜻을 막을 명분이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이 총리로서는 비서실장을 주기가 싫은 마음을 감출 수가 없었던 것 같다.
결국 공은 나한테 넘어오고 말았다. 이해찬 총리가 겨우 꺼낸 말이 당사자한테 물어보라는 말이었다는 것이다. 지금 와서 하는 말이지만 그 당시 인사수석은 이런 말도 덧붙였다.
“노 대통령께서 앞으로 교육부 장관 바뀌면 이 실장을 장관으로 쓰라는 말씀도 하셨습니다. 이 실장이 차관으로 계시다가 장관 하면 좋지 않겠습니까?”
그 말을 듣고 마음이 흔들리지 않았다면 거짓말일 것이다. 한 나라의 교육 전반을 책임지는 수장으로 그동안 내가 교육부에서 쌓아 온 역량을 펼칠 수 있는 기회가 열린다는데 마다할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그런 이유로 나는 “절대 안 됩니다”라고 단호하게 대답하지 못하고 조금 약해진 마음으로 “안 됩니다” 정도로 대답을 하고 말았다. 말의 내용은 거절이었지만 강하게 의사 표명을 하지 못했던 것이다. 인사수석은 내 심중을 눈치챈 것 같았고, 결국 나를 만나고 가서 곧바로 대통령께 보고를 했다.
마침내 나는 교육부 차관으로 발령을 받게 되었다. 그것이 2006년 2월의 일이다. 이해찬 총리는 답답하고 서운한 속을 감출 수가 없었던 것 같다. 수석비서관들과 장관이 참석하는 아침 회의 석상에서는 마이크를 잡고 이런 말까지 한 적도 있다.
“내가 이기우 실장을 뺏기고 아직도 안타까운 마음이 남아 있습니다.”
이해찬 총리가 가진 나에 대한 신뢰는 그만큼 컸다. 물러나면서 내가 아무리 후임 비서실장으로 여러 명을 추천해도 결국 총리직이 끝날 때까지 그 자리를 공석으로 남겨 둔 분이 바로 이해찬 총리였다.
아마도 많은 사람이 이런 이야기를 들으면 참 행복한 고민이라고 말할지도 모르겠다. 여기저기서 나를 찾는 사람이 많고, 차관은 물론 장관까지 예정되었을 뿐만 아니라, 어떤 상사는 내가 떠났다고 그 자리에 다른 사람을 앉히지도 않고 나에 대한 무한한 신뢰를 보여 주었으니 말이다. 맞는 말이다. 나 역시 내 능력을 인정받는 것 같아서 큰 기쁨으로 감사하는 마음을 가졌다.
하지만 이 과정에는 나만의 에피소드가 하나 더 있다. 실은 나에게 장관이라는 중책이 주어진다면 내가 하고 싶은 부처가 따로 있었다. 그것은 바로 해양수산부 장관이었다. 내가 이러한 마음을 처음 밖으로 표현한 것은 한덕수 경제부총리를 만났을 때였다. 교육부 차관으로 가기 전 한덕수 부총리에게서 만나자는 연락이 온 적이 있다. 한 부총리는 여러 이야기 끝에 나에게 이렇게 물어 왔다.
“실은 내가 이해찬 총리를 대신해서 이 자리를 만들었어요. 총리께서 말씀하시길, 이 실장이 나중에 장관을 하게 되면 어떤 장관을 하고 싶은지 물어봐 달라고 하셨거든요.”
이해찬 총리는 내가 당신의 비서실장으로 고생했으니 직이 끝난 뒤에는 장관 자리에 적극 추천할 생각이었던 것 같다. 그래서 한 부총리에게 대신 내 의중을 묻도록 했다. 그때 내 대답은 바로 해양수산부 장관을 하고 싶다는 말이었다. 한 부총리는 그 말에 놀라는 눈치였다. 아마도 당연히 교육부 장관직을 예상했던 것 같다.
“제가 거제도 촌놈이고 부산에 오래 있었잖습니까. 바다와 관련된 일을 해 보고 싶습니다.” 이미 그런 일이 있었기에 나로서는 국무총리 비서실장으로 내 역할을 성실하게 마치고 나면, 그다음에 해양수산부로 가게 될 것이라고 생각하고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그런데 대통령이 다시 나를 부르게 되었고, 결국 나는 교육부 차관으로 가게 되었다. 그러니 내심 아쉬운 마음을 감출 수가 없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깐, 나는 곧 마음을 정리했다. 교육부 차관으로 발령을 받은 이상 이전의 나를 미련 없이 정리하고 다시 새로운 나로 태어나야 했다. 이전의 나를 깔끔하게 정리한 후 맡은 일을 수행하는 나의 특성이 이번에도 발휘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