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우의 행복한 도전 35] ‘새로운 인연’ 인천재능대 박성훈 회장
[아시아엔=이기우 한국전문대학교육협의회 전 회장, 이해찬 국무총리 비서실장 역임] 차관직에서 물러난 뒤 나는 나름대로 또 다른 인생을 계획하고 있었다. 고향 거제를 위해 일해 보고 싶은 열망이 생겼다. 거제 연초중학교 총동문회 회장을 하고 거제도를 왔다 갔다 하면서 이런 마음이 더욱 솟아났다.
그러던 중에 재능그룹 박성훈 회장을 만났다. 박성훈 회장은 나를 보더니 대뜸 이렇게 말했다. “어떻게 그럴 수가 있나?” 나는 영문을 알 수 없어 눈만 깜빡거려야 했다. 사실 박성훈 회장은 부산고 선배로서 평소 교육에 대한 관심도 높고 남다른 교육 철학을 가진 분으로 예전부터 내가 존경해 왔었다.
교육부에 근무할 때부터 박성훈 회장은 내가 공직을 떠나면 당신이 이사장으로 재직하고 있는 재능대학(현재 인천재능대학교)에 총장으로 와 줄 것을 권했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한국교직원공제회 이사장 시절에는 내 사무실까지 직접 방문하여 총장으로 와야 한다면서 계약서까지 쓰자고 말하기도 했다.
공제회 이사장 임기가 3년이었는데, 3년이 지나면 반드시 재능대학으로 와서 도와 달라는 압력이었던 셈이다. 나는 박성훈 회장에게 이렇게 말했다. “회장님, 계약은 무슨 계약입니까. 제가 만약에 대학으로 가게 된다면 반드시 재능대학으로 가겠습니다.”
그 후 이번에는 차관에서 물러나자 다시 나를 찾아오신 것이다. 그런데 나를 만나자마자 어떻게 그럴 수 있느냐고 서운한 마음을 표현하니 어리둥절할 수밖에 없었다. 알고 봤더니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다. 교육부 차관에서 물러나자 4년제 대학을 포함하여 몇몇 대학에서 나에게 총장으로 일해 달라는 요청이 있었다.
내가 가진 교육과 경영 노하우를 좋게 보는 사람이 많았다. 그때 작은 문제가 생겼다. 4년제 대학 중 한 곳의 총장직 수락 요청에 나는 그 자리에서 곧바로 거절을 하지 않고 생각해 보겠다는 말로 우회적으로 거절의 뜻을 밝혔다.
하지만 그건 내 생각이었을 뿐이다. 내가 적극적인 태도를 보이지 않으면 자연스럽게 그쪽에서 내 뜻을 알아챌 것이라는 생각이었는데, 그쪽 대학 이사장은 내가 승낙한 것으로 오해한 것이다. 그 뒤 가까운 주위 사람들에게 이기우를 총장으로 모시게 되었다는 말을 하게 되었고 그 말은 곧 박성훈 회장에게까지 들어갔다.
그런 이유로 박성훈 회장은 내가 약속을 저버렸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공제회 사무실까지 찾아가 꼭 재능대학에 가겠다는 다짐을 받았는데, 이제 와서 다른 대학으로 가겠다니 박성훈 회장으로서도 오해할 만한 상황이 된 것이다. 그렇게 차관직에서 물러난 나를 찾아오신 박성훈 회장의 요청과 주변 지인들의 권유를 거절할 수가 없었다. 갑작스럽게 내 인생에 대학 총장이라는 새로운 문이 열렸다.
물론 재능대학을 선택할 때 고민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그러나 나는 자리의 크고 작음에 연연하지는 않았다. 나는 평생 나를 필요로 하는 곳에서 주어진 일을 제대로 하는 데 의미와 가치를 두고 살아왔다. 내 능력을 가장 잘 발휘할 수 있고 내 손길을 가장 필요로 하는 곳에서 일하고 싶다는 생각이었다. 그래서 어느 자리에 가든 인정을 받고 나를 발전시킬 수 있었다.
그 당시 내가 알고 있기로는 재능대학은 경쟁력이 낮은 대학이었다. 오히려 그런 면이 내 의욕을 자극했다. 우리는 흔히 최선의 선택을 가장 쉬운 길을 택하는 것으로 착각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내 인생에 비추어 보면 최선의 선택은 오히려 가기 어려운 길인 경우가 많았다. 우리는 눈앞의 평안 때문에 쉬운 길을 선택해 놓고서는 그것이 마치 최선의 선택이었다고 착각한다.
손쉬운 길은 손쉬운 결론만을 요구할 뿐이다. 그런 길은 몸은 편할 수 있으나 성취의 기쁨은 없다. 도전의 즐거움은 얻지 못한다. 내가 재능대학을 선택한 것은 바로 쉽지 않은 길을 개척하고 도전해 나가면서 신망을 얻을 수 있으리라는 기대 때문이었다.
차관직에서 물러난 나를 찾아온 박성훈 회장의 요청과 주변 지인들의 권유를 거절할 수가 없었다. 갑작스럽게 내 인생에 대학 총장이라는 새로운 문이 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