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우의 행복한 도전 33] 3.1절 총리 골프사건과 교육부차관 ‘낙마’
[아시아엔=이기우 한국전문대학교협의회 회장, 이해찬 국무총리 비서실장 역임] 사람의 일은 정말 모른다. 표면적으로는 단순하게 보였을지라도 나름 우여곡절 끝에 교육부 차관으로 임명되었다. 이제 내가 할 일만 제대로 하면 된다고 생각하고 일에 매진하던 중, 우연히 이해찬 총리의 부산 일정에 동행하게 되었다. 이 일이 나를 완전히 다른 길로 이끌 줄은 그때는 알지 못했다.
사실은 갑작스러운 동행이었다. 2월 28일 오전에 총리가 3.1절 아침에 내려오니 같이 모시고 오면 좋겠다는 말이 부산 쪽에서 있었다. 비행기 예약이 안 되어 있어서 망설였다. 다른 사람들은 다들 예약이 되어 있었지만 나는 갑작스럽게 연락을 받은 것이어서 비행기표를 당일 아침에 구입하여 동행했다. 그런 요청을 거절할 수 없는 이유가 있었다.
앞서 말한 바와 같이 국무총리 비서실장에서 물러나 교육부 차관으로 임명을 받은 뒤, 이해찬 총리가 나를 대신할 후임이 없는 채로 총리직을 수행하고 있는 실정이었다. 전임 비서실장으로서 당연히 마음의 짐으로 남을 수밖에 없었다. 그 당시 이 총리는 장모가 병환 중이었음에도 1년 동안 부산에 못 내려간 상황이었다. 원래는 2월 25일에 내려가려던 것이 가족과 함께 가려고 일정을 조정하다 보니 공교롭게도 3월 1일로 변경되었다.
총리로서는 해외에 나갔다가 온 뒤였고, 국회 일정으로 몸도 안 좋은 상황에서 부산으로 장모를 뵈러 가는 김에 휴일이니까 골프 일정이 잡혀 있었던 것이다. 총리의 이 일정은 지역 신문을 통해 알려졌다. 결국 3.1절 행사가 진행되던 시각에 총리가 골프를 치고 있었다는 공격을 받으면서 걷잡을 수 없이 커다란 문제로 비화하고 말았다.
그뿐만 아니라 그때가 바로 철도 노조의 파업 첫날이기도 했다. 골프를 하지 않는 게 좋겠다고 말하지 못한 내 잘못이 컸다. 매우 후회스러운 상황이었다. 파문은 걷잡을 수 없이 커져만 갔다. 정치권과 언론의 본격적인 지탄이 이어졌다.
얼마 뒤 일요일, 청와대에서 연락이 왔다. 이해찬 총리가 앞으로 골프를 안 하겠다는 발표를 해 달라는 요청이었다. 나는 곧바로 총리 공관으로 갔다. 이해찬 총리는 마침 사모님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나는 연락받은 대로 말을 전했다. ‘총리 재직 동안은 골프를 안 치겠다고 말씀하시면 어떻겠냐’는 말이었다.
“직접 말씀하실 수는 없으니까 전임 비서실장인 제가 대신 발표하겠습니다.”
그러자 이 총리가 단호하게 말을 했다. “그러지 마세요. 내가 그만두겠습니다.” 깜짝 놀랐지만 총리의 성격을 알고 있는 내가 더 이상 어떻게 말을 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바로 옆에서 이 총리의 말을 듣고 있던 사모님이 말을 꺼냈다. “그래요, 당신이 그만두세요.”
적극적으로 말릴 줄 알았던 사모님이 오히려 이해찬 총리의 결심에 불을 당기고 있었다. 나는 곧바로 청와대에 들어갔다. 그리고 이 총리의 상황을 전달했다.
“정말입니까. 이 총리께서 정말 그러셨어요?” 모두들 믿지 못하는 눈치였다. “그분 성정에 거짓말을 하겠습니까.” 다시 총리 공관으로 돌아와 이 총리에게 청와대에 다녀왔다는 보고를 했다. 얼마 뒤 바로 해외 출장 중이던 노무현 대통령의 전화가 왔다. 옆에서 듣기로는 아마도 ‘그만두어서는 안 된다’는 설득이었던 것 같다. 그러나 상황은 여의치가 않았다. 나는 바로 모든 과정을 허심탄회하게 알리겠다는 마음으로 기자회견을 했다. 별 소용이 없었다.
나에게도 결단의 순간이 찾아왔다. 나와 이해찬 총리의 오랜 관계를 모르는 총리가 물러나야 한다는 목소리가 더 높아졌다. 나에게도 결단의 순간이 찾아왔다. 나와 이해찬 총리의 오랜 관계를 모르는 일반 사람들에게는 교육부 차관이 왜 총리 일정에 동행했는지 이해할 수 있는 여지가 없었던 것이다.
대통령의 원활한 국정 운영을 위해서는 이해찬 총리가 남아 있을 필요가 있었다. 총리의 부담을 덜어 주기 위해서 결국 나는 차관을 사퇴했다. 그러나 나의 사퇴로도 총리의 사퇴를 막을 수는 없었다. 하루의 시간차를 두고 이해찬 총리 역시 총리직에서 사퇴하게 되었다. 이렇게 해서 내 짧은 차관 시절이 끝났다.
골프 사건 이후에 총리직을 그만둔 이해찬 총리를 고등학교 동문들이 위로하는 자리가 있었던 모양이다. 나는 밤 10시쯤 와 달라는 전화를 받고 그 자리에 참석하게 되었다. 가 보니 이해찬 총리의 동문들이 죽 앉아 있었다. 이해찬 총리는 나를 자신의 옆자리에 앉혔다. 그리고 이야기를 시작했다.
“제가 여러분 앞에서 이건 이야기를 해야겠습니다. 우리 동문들 사이에서 이기우 차관 때문에 내가 이렇게 됐다, 이런 말이 있는데 사실은 반대예요. 나 때문에 이 차관이 날벼락 맞은 겁니다. 그러니 앞으로는 절대 이 차관 이야기는 안 나왔으면 좋겠습니다.”
아마도 이 총리는 다른 자리에서도 나에 대한 미안함을 사람들에게 표현했던 것 같다. 여러 경로를 통해 나에게도 그런 말들이 들렸다. 그해 11월, 이해찬 총리의 장모가 돌아가셨다. 부산으로 문상을 갔고 다시 이해찬 총리를 만나게 되었다. 자리를 지키다가 보니 그새 자정 가까이 돼 있었다. 여기저기서 조문객들을 응대하던 이 총리가 나에게 다가왔다.
“이 차관, 우리 술 한잔합시다.” 그렇게 오랜만에 이해찬 총리와 마주 앉았다. “내가 이 차관에게 잘못한 게 하나 있어요. 그때 내가 빨리 그만뒀어야 하는데 그걸 안 해서 이기우 차관한테 피해를 입혔으니 그게 아직도 미안해요. 나는 그만둬도 이기우 차관을 그때 살렸어야 했는데…….”
후회가 밀려오는 목소리였다. 그러나 지난 일은 지난 일, 나에게는 더 이상의 미련도 남아 있지 않았다. 오히려 이해찬 총리가 상사로서 끝까지 보여 준 신의에 감사했다.
“아닙니다. 미련을 가진 예전의 저는 이미 오래전에 정리했습니다. 걱정 안 하셔도 됩니다. 제가 술은 못하지만 오늘은 총리님께 술 한잔 따라 드리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