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우의 행복한 도전 36] “재능대는 하위권인데 왜 가시려 합니까?”

인천재능대는 이기우 총장이 처음 취임할 때만 해도 문제투성이 하위권 대학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아시아엔=이기우 한국전문대학교협의회 전 회장, 이해찬 국무총리 비서실장 역임] 2006년 7월 1일, 재능대학에 부임했다. 부임 전 내 밑에서 일했던 교육부 국장에게 내가 이만저만해서 재능대학에 가게 되었다고 말한 적이 있다. 그의 첫마디가 놀라웠다. “차관님, 그 대학은 하위권 학교인데 거길 왜 가려고 하십니까?”

나는 이미 재능대학에 가기로 결심한 터라 그런 말이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하지만 막상 대학에 와 보니 내 생각이 빗나간 것을 알 수 있었다. 재능대학은 인천이라는 지역을 기반으로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지역에서 학생들에게 잘 알려지지 않았다. 입시 지원율도 저조했다. 직원들의 업무 처리도 미숙했다.

학교 구성원들의 자신감도 많이 떨어져 있었다. 예산 관리 역시 문제가 많았다. 재정은 늘 어려워서 재단의 도움을 받지 않으면 안 되었다. 교직원 상호 간의 신뢰 수준도 낮았다. 교수는 직원의 능력을 평가절하하고, 직원은 권위적인 교수에게 협조적이지 않았다. 직원들 간에도 노조원과 비노조원으로 나누어져 서로 대립하는 상황이었다. 교육 시설도 충분하지 않았다.

대학 운영이 왜 이렇게 되었을까. 설립자가 대학을 설립하고 나서 그 당시 일부 사립대학들의 병폐였던 가족 중심의 폐쇄적 경영을 하다 보니 학교 발전이 많이 뒤처졌다. 설립자 사후에는 2세가 경영에 참여하면서 가족 구성원 간에 갈등이 생겨서 운영상의 큰 어려움을 겪었다. 그 어려움이 지속됨에 따라 학교 재단은 운영권을 교육 문화 기업인 ㈜재능교육에 넘기게 되었다. 그 대학이 재능대학의 전신인 대헌공업전문대학이다.

1997년에 재능교육에서 대학을 인수하고 이듬해에 대학 이름을 대헌공업전문대학에서 재능대학으로 바꾸었다. 하지만 그 안에 있는 내용을 그대로 인수받은 것이 문제였다. 특히 인적 구성이 결정적인 문제였다. 직원들 중에는 전 재단이 세운 대헌공고나 대헌공업전문대를 졸업했거나 설립자의 친인척 등의 연으로 얽혀 있는 사람이 대부분이었다. 이렇게 학연과 인척 관계로 얽히고설키다 보니 구성원들끼리 ‘좋은 게 좋다’는 식으로 적당주의가 자리 잡고 있었다.

‘재능대학이 생각보다 문제가 많구나. 근본적인 개혁이 필요하니 마음을 단단히 먹어야 되겠네.’ 하면서 나는 스스로에게 다짐해 보았다. 학교의 전반적인 상황이 이렇다 보니 학교의 문제점을 새로 온 총장에게 보고할 수 있는 시스템이나 여건 자체가 마련되어 있지 않았다.

심지어 업무 보고를 할 때 어떤 부서는 변변한 보고서 자료도 없이 메모 용지 한 장 달랑 들고 브리핑하는 게 전부인 경우도 있었다. 그래서 나는 학교의 전반적인 문제점을 속속들이 파악하기 위해 감사를 실시하기로 결심했다. 대학의 문제점을 객관적이고 공정하게 파악하려면 강도 높은 감사 이외에는 달리 방법이 없었던 것이다.

나는 행정 감사 제도를 법인 정관에 두고 모든 분야의 감사를 시작했다. 외부 감사가 아니라 법인에서 하는 자체 감사였다. 나와 함께 일했던 사람 중에 교육부 직업교육정책과장 출신이 있었다. 그 당시에 일을 그만두고 캐나다로 이민을 가서 살고 있었는데 행정 감사의 귀재였다. 그에게 도움을 요청하며 “감사의 전권을 줄 테니 눈치 보지 말고 소신껏 평가해 주세요!”라고 부탁하면서 감사 임무를 맡겼다.

1개월 정도 전면적인 감사를 실시하고, 대학 행정의 정상화를 위해 2개월이 지난 뒤 다시 1개월간의 감사를 더 실시했다. 총 2회의 감사가 진행된 것이다. 교직원들은 감사가 처음 시작될 때 ‘대학의 최고경영자가 새로 왔으니 업무를 파악하기 위해 감사를 실시하겠지’ 하면서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하지만 두 번째 감사가 진행되면서 교직원들도 긴장하기 시작했다.

회계 부분뿐만 아니라 학사 행정 등 대학 업무 전반에 걸쳐 종합적인 감사가 실시된 까닭이다. 일반적으로 외부 감사가 나오면 감사에 적발되지 않기 위해 무엇이든 자꾸 숨기게 마련이다. 그러나 나는 내부 구성원들이 감사에 자연스럽게 협조할 수 있는 구도를 만들었다. 1차 감사에서 회계 비리 의혹이 있던 직원들에 대한 정보를 가지고 있었다.

직원들도 2차 감사가 실시되면서 ‘의례적인 감사가 아니구나. 제대로 된 감사가 될 것 같다. 어차피 진실이 밝혀질 텐데 괜히 진실을 은폐하려고 해서는 안 되겠구나’ 하는 분위기가 확산되어 갔다. 어느덧 관련된 교직원들이 진실을 덮으려는 시도가 소용없다는 것을 깨닫고 사실대로 진술함으로써 협조하기 시작했다.

감사의 진정성이 먹혀들어 가면서 ‘잘됐다. 이번 기회에 제대로 시스템을 갖춰서 우리도 뭔가 해 보자.’라고 생각하는 교직원이 점점 늘어나기 시작한 것이다. 감사 기간 동안 감사 내용은 철저한 보안 속에 이루어졌다. 감사 내용은 감사를 받은 당사자들의 입을 통해 간헐적으로 전달되었을 뿐 감사의 전반적인 내용은 철저히 비밀에 붙여졌다.

행정처장조차도 감사 내용을 알 수 없었다. 이러한 보안이 오히려 감사에 대한 신뢰감을 높여 주었다. 마침내 감사 결과를 받아 보았다. ‘아, 재능대학이 예상보다 어려움이 많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그 당시의 관행은 재능대학에 국한된 사항이 아니었을지 모른다. 한 교수가 했던 말이 생각난다.

“그때 우리 학교는 특성화 사업을 해 본 경험이 적어서 제대로 된 가이드도 없었어요. 주무부처인 산학협력처조차 회계 집행에 적합한 업무 매뉴얼로 가이드를 해 주지 못했으니까요.”

사정이 이러하니 교수들의 프로젝트 정산 내용 중에서도 간이 영수증 등 쓰임이 부적절하고 방만한 경우가 많이 나타났다. 근거 규정 없이 “내 프로젝트 예산 내가 쓰는데 무슨 문제냐?”라고 하면서 자의적으로 회계 집행을 한 것이다.

사실 나는 적당히 타협하고 넘어갈 수도 있었다. 그러나 내가 원칙을 중시하다 보니 기본을 제대로 세우지 않으면 좋은 학교로 도약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안일과 적당주의의 관행을 뛰어넘어 감사 결과에 따라 단호한 조치를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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