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처님오신날, 황금불상 관련 달라이 라마의 말씀 새겼으면

달라이 라마가 인도 다름살라에서 열린 한 종교행사에 참석하고 있다. <AP/뉴시스>

달라이 라마·프란치스코 교황·설악 무산스님

[아시아엔=김덕권 원불교문인협회 회장] 우리나라 사찰에 가면 화려한 황금불상이 거창하게 모셔져 있다. 과연 바람직한 일일까? 불상의 기원은 부처님 열반 후 500년경 인도 간다라와 마투라 지방에서 여러 형태의 불상이 거의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났다. 그러니까 석가모니 당시부터 500년까지는 무불상(無佛像) 시대였다는 것이다.

불상은 굽타왕조를 거치면서 서서히 통일되기 시작했다. 그리고 부파불교(部派佛敎)의 출현과 함께 불교미술도 대승(大乘)과 소승(小乘)의 현격한 차이와 전래(傳來) 지역의 구분을 가져왔다. 중국에서는 대승사상과 함께 불상의 양식도 다시 한번 재정립됐다. 그러한 경로를 거쳐 한국에도 불상이 전래되고 삼국시대, 고려시대, 조선시대를 거쳐 오늘에 이르게 되었다.

무불상시대라 함은 부처님 열반 후 500년 동안 부처님의 모습을 그림이나 조각으로 표현하지 않고 탑, 보리수나무, 법륜(法輪), 사자상 등으로 대신하여 나타내던 시기를 일컫는다. 그런데 그것이 잘못 전해져서인지 불상을 모셔놓고 기복신앙(祈福信仰)으로 흐르게 된 것은 여간 안타까운 일이 아니다. 종교는 진리 그 당체(當體)를 믿어야 하는데 말이다.

한번은 달라이 라마가 대형 사찰이 만들어진 낙성식에 초대됐다. 엄청난 크기의 불상이 세워진 사찰이었다. 달라이 라마는 자신의 법문 차례가 되자 그 불상을 힐끗 쳐다보고는 뼈있는 농담으로 법문을 시작했다.

“이렇게 큰 불상이 어느 날 넘어져서 사람을 깔게 되면 ‘부처님이 사람 죽였다’ 하지 않을까요?”

이 말은 부처의 장엄을 곧 신심(信心)으로 착각하는 불자(佛子)들이 세계에서 제일 큰 불상 또는 동남아에서 제일 큰 불상 등 부처의 장엄에 목숨을 거는 것을 경계한 에피소드다. “이런 불상은 한낱 우상(偶像)이라”고 꾸짖는 말씀이 아닌가? 종교는 간단한 진리의 상징 정도로 장엄하면 좋을 것 같다. 불상이 없으니 장엄할 필요가 없고, 장엄한 불상이 없으니 불상이 넘어져서 사람을 죽일 염려는 더구나 없기 때문이다.

부처님은 태자의 자리를 버리고 나오신 분이다. 진리를 대각하신 석가모니는 입멸(入滅) 후 불상을 만들어 공양하는 행위를 용납하지 않았다. 그 영향으로 부처님 사후 500년간 정법시대에는 무불상시대던 거다.

500여년이 지난 상법(像法)시대 알렉산더 대왕의 침공 이후 간다라 지방에서 불상이 만들어졌다. 이로써 세상에 오셨던 위대한 인류의 스승으로서의 부처 모습은 사라지고 초인간적·초자연적 존재로 불상이 인식되기 시작한 것이다.

종교심벌은 크기의 대소에 방점을 찍으면 안 된다. 작아야 아름다운 것도 아니다. 종교가 크기 혹은 성장에 휘둘려 공감·연민이라는 본질을 놓치면 안 된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항상 강조하듯 “상대방과 손을 맞잡고 눈을 마주쳐야 한다.” 달라이 라마는 “나의 종교는 친절”이라고까지 하였다.

지난해 입적(入寂)한 설악 무산스님은 이를 더 쉽게 풀어서 “종교는 사람들 비위 맞춰주는 것”이라 했다. 서로 시선을 마주치며 경청하고 공감하기엔 작은 크기가 좋다. 종교가 장엄에 눈을 팔면 달라이 라마의 말씀처럼 깔려 죽을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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