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찔레꽃’ 흰 수건 동여매고 밭 매던 내 어머니 향기

찔레꽃

[아시아엔=김덕권 원불교문인협회 명예회장] 아주 오래전 우리 어머니는 서울 신당동 중앙시장에서 쌀장사를 했다. 키가 자그마한 어머니는 언제나 머리에 흰 수건을 둘러쓰시고는 쌀 먼지 속에 사셨다. 어머니의 몸에서는 늘 찔레꽃 향기가 은은하게 풍겼다.

생각해 보면 여인은 가슴을 설레게 하는 존재다. 하지만, 엄마는 그리움의 존재다. 어쩌면 여인은 소유하고 싶은 존재이나 엄마에게는 소유당하고 싶은 마음이 강하게 하는 마음의 고향 같은 분이다.

옛날에 홀어머니를 모시고 사는 젊은 청년이 있었다. 어느 날 그는 어머니 곁을 떠나 깊은 산속으로 들어갔다. 부처님의 제자가 되어 도(道)를 닦기 위해서였다. 한참 동안 산길을 헤매던 청년은 우연히 스님 한 분과 마주쳤다.

“스님, 어디를 가야 부처님을 만날 수 있을까요?” 스님은 물끄러미 청년을 훑어보며 이렇게 말했다. “지금 즉시 집으로 돌아가면 누군가 옷을 절반만 걸치고 신발을 거꾸로 신은 채, 자네를 마중 나올 걸세. 그 사람이 바로 부처님이시네!”

청년은 스님에게 연거푸 절을 올린 뒤 곧장 집으로 향했다. 청년은 집으로 돌아오는 길 내내 부처님을 만난다는 생각으로 들떠 있었다. 청년이 집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한밤중이었다. 그는 잔뜩 설레는 마음으로 대문을 두드렸다.

이때 그의 어머니는 아들이 돌아온 소리에 너무나 반가운 나머지 허겁지겁 방문을 뛰쳐나왔다. 옷은 절반 정도만 대충 걸친 데다 신발은 거꾸로 신은 채 말이다. 젊은이는 그런 어머니의 모습을 보고서야 뜨거운 눈물이 솟구치는 동시에 스님의 말뜻을 깨달을 수 있었다.

해마다 5월이면 그 운명의 실타래에 묻어나는 그리움을 마주한다. 카네이션을 단 가슴이 아름답게 다가온다. 비록 향기 없는 조화라 할지라도 가슴에 단 카네이션이 아름다운 이유는 꽃이기 때문이 아니라 그 꽃을 자랑스럽게 달고 있는 어머니의 젖가슴 때문이다.

김경희 시인의 ‘찔레꽃’이란 시다.

닮은 듯 닮은 얼굴 누군가 그려 보니
흰 수건 동여매고 밭 매던 내 어머니
살며시 그 품에 안겨 밤새도록 우누나

엄마 품 그리워서 턱 괴고 바라보니
천사의 웃음으로 한없이 웃어 주신
찔레꽃 향기로 오신 보고 싶은 어머니

옛부터 오뉴월에 피는 꽃이 향기가 제일 짙다고 한다. 그중에서도 장미과에 속하는 ‘찔레꽃 향기’가 으뜸이다. 찔레꽃은 어딘가 모르게 때 묻지 않은 듯 마치 수줍은 시골 새색시처럼, 화려하지도 빼어나지도 않으면서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는 것 같다.

향기 또한 어질고 착한 듯 수수하고 고와서 소녀 같은 청초함이 묻어나 오랫동안 취해도 싫증이 나지 않는다. 찔레꽃은 자리를 가리지도 않는다. 진흙 구덩이든, 비탈 언덕이든 어디서나 잘 자라고 잘 피어난다. 찔레꽃의 꽃말은 ‘온화, 신중한 사랑’이다. 이 순박한 꽃에도 슬픈 전설이 있다.

옛날 고려시대에 조공(朝貢)으로 여러 처녀들과 함께 몽골로 끌려간 소녀 ‘찔레’는 고향과 부모에 대한 그리움으로 수많은 세월을 보내다 어렵사리 고향으로 돌아왔다. 그러나 부모형제는 어디론가 사라지고 소식조차 알 길이 없었다.

찔레는 가족을 찾아 밤낮없이 이곳저곳 헤매며 애타게 찾았건만, 결국 가족들을 찾지 못하고 실성한 듯 울부짖다 그만 죽고 말았다. 그 뒤부터 그녀가 가족을 찾아 헤매던 골짜기 개울가마다 그녀를 닮은 하얀 꽃이 하나 둘 피어났다. 그때부터 사람들은 그 하얀 꽃을 ‘찔레꽃’이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그래서 하얀 찔레꽃을 ‘한 많은 찔레꽃’이라 부르기도 했다. 비록 밭 언저리 가시넝쿨 속에서 잡초처럼 피어나지만, 그 수수한 아름다움은 다른 꽃에 비할 수가 없다. 원래 장미꽃의 어머니를 찔레꽃이라 한다. 그래서 그런지 장미의 화려함도 좋지만, 찔레꽃의 수수함은 더 좋은 것 같다. 찔레꽃 향기는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을 만큼 짙고 신선하다.

그 옛날 찔레나무의 연한 순은 배고팠던 어린 시절, 한창 자라나는 어린이들에게 맛좋은 간식거리였다. 지금은 누가 먹으라고 권해도 거들떠보지도 않겠지만, 실제로 찔레순은 다양한 약효를 지닌 식품이다. 일례로 찔레 순을 많이 먹으면 겨우내 몸 안에 쌓여있던 독소를 제거해주는 약효가 있다 한다.

찔레꽃의 열매를 ‘영실(營實)’이라 한다. 영실은 생리통, 생리불순, 변비, 신장염, 방광염, 각기, 수종 등에 치료 효과가 뛰어난 약재다.

지금 벌판엔 찔레꽃이 활짝 피었다. 어머니의 몸에 아련히 스며있던 찔레꽃, 엄마의 향기는 디시 찾을 길이 없다. 6월에 피는 찔레꽃 향기에 취해 꿈속에서라도 엄마의 체취를 더듬어 보면 얼마나 좋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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