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세 한 달 조양호 대한항공 회장이 남긴 것들···인생무상, 그리고

조양호 대한항공 회장

[아시아엔=김덕권 원불교문인협회 명예회장] 7일이면 대한항공 조양호 회장이 향년(享年) 70세로 생을 마감한 것이 1달이 된다. 조 회장의 완전한 해탈천도를 기원하는 심고(心告)를 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공과(功過)가 있겠지만 대한항공을 세계적인 항공사로 키운 공로가 생각나서였다.

당시 필자가 운영하는 덕화만발 가족들의 ‘카톡’이 연이어 올라왔다. 대개는 ‘회자정리(會者定離)’라거나, 아니면 ‘공수래공수거(空手來空手去)’, 또는 ‘자살’이 아니겠냐는 짧은 글들이었다. 그래서 필자도 한줄 올렸다. ‘인생무상(人生無常)’이라고.

회자정리는 ‘만난 사람은 반드시 헤어지게 된다’는 뜻이고, 공수래공수거는 ‘세상에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간다’는 의미다. 그리고 인생무상은 ‘사람의 일생이 덧없이 흘러감을 두고 이르는 말이다.

조양호 회장은 1949년 3월 인천에서 한진그룹 창업주인 고(故) 조중훈 회장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그리고 1999년 대한항공 대표이사 회장에 오른 인물이다. 그러나 부친이 세운 한진그룹 전체를 맡지는 못했다. 조 회장이 그룹의 주도권을 잡는 과정에서 형제간의 경영권 다툼이 벌어졌기 때문이다. 한진가(家) ‘왕자의 난’이라고도 불리는 이 다툼에서 한진그룹은 차남 조남호의 한진중공업, 3남 조수호의 한진해운, 4남 조정호의 메리츠금융으로 나뉘었다.

또한 조양호 회장 만년에는 가족들로 인한 문제가 끊이지 않았다. 2014년 장녀인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이 이른바 ‘땅콩회항 사건’으로 모든 직책에서 물러났고, 2018년에는 차녀인 조현민 전 대한항공 전무의 ‘물컵갑질’로 한진가가 질타를 받았다. 게다가 조회장의 부인 이명희씨의 갑질 논란은 온 세상을 놀라게 했다. 조 회장도 배임 횡령 등의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결국 이런 사건이 연이어 터져서인지, 지난 3월 말 대한항공 주총에서 조 회장은 주주의 반대로 대표이사 연임에 실패하는 아픔을 겪어야 했다.

하지만 조 회장은 40년 넘는 세월을 항공업계에 몸담으며 1970~1980년대 오일쇼크와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 등 숱한 고비를 넘겼다는 평가를 받았다. 또한 대한항공 창사 50주년인 올해 글로벌 항공업계 최대 행사인 IATA 총회를 서울에 개최하는데 성공했으나 행사 개최 2개월을 앞두고 세상을 떠난 것이다. 그야말로 ‘인생무상’이 아닌가?

승려 일연(一然)의 <삼국유사>(三國遺史)에 나오는 설화(說話) 하나가 있다. 어느 날, 신라 고승 원효대사에게 친구인 사복(蛇腹)이 찾아왔다. 사복은 원효스님에게 집에서 오래 기르던 ‘암소’가 간밤에 죽었으니 장사(葬事)를 도와달라고 했다. 스님은 무슨 말인지 알아듣고서 곧 사복의 집으로 갔다.

바로 돌아가신 그의 어머니를 함께 장사지내고 스님이 축원을 하자 사복이 뭘 그렇게 말이 기냐고 타박을 한다. 사복이 딱 두 줄로 말을 줄인다. “생자필멸(生者必滅) 회자정리(會者定離)” 모든 생명은 반드시 죽음이 있고, 만남이 있으면 이별이 있다는 것이다. 이 말을 마친 사복이 순식간에 땅 속으로 사라졌다.

불가(佛家)의 가르침에 ‘제행무상(諸行無常), 제법무아(諸法無我), 일체개고(一體皆苦)’라는 세개의 법칙이 있다. 부처님 말씀을 요약한 진리요 가르침의 핵심을 짚은 것이다. 이를 우주만유를 관통하는 불가의 ‘삼법칙'(三法則)’이라고들 한다.

세상에 영원히 변하지 않는 존재는 없다. 무상(無常)이다. 모든 존재는 인연(因緣)으로 생겨난 것이므로 자아(自我)라고 내세울만한 실체가 없는 것이다. 상(相)이 없다는 것이다. 즉, 객관적 대상이라는 게 사실은 다 허상(虛相)에 지나지 않는다는 뜻이다. 제법무아다. 사람들이 이 무상과 무아를 깨닫지 못하는 데서 모든 고통과 고뇌가 따른다는 것이 일체개고다.

사복이 원효대사와의 장례 대화에서 이 가르침을 스스로 깨달았다면 어쩌면 원효보다 한수 위가 아닐까 싶다. 우리와 영원히 함께하는 것은 없다. 생(生)의 마지막 앞에서는 더욱 그렇다. 내가 모아들인 부(富)가 산해(山海)처럼 많고, 쌓아올린 명예나 지위가 하늘만큼 높아도, 생의 마지막에 동행할 수는 없다. 단 하나도 가져갈 도리가 없다.

오직 가져갈 수 있는 것은 ‘평생 지은 공덕(功德)이요, 평생 닦은 마음의 힘’ 밖에 없다. 그래서 무상, 무아, 자비는 유일하게 변하지 않는 가치요, 우리의 마지막 길에도 함께하는 벗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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