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겪은 멕시코 공권력③] 최대 범죄조직, 고용 변호사 2명 쥐도새도 모르게 살해

해외에서 사업하는 것은 국내보다 몇 갑절 힘들다고들 한다. 언어가 안 통하고 문화가 다르며 특히 법과 제도보다 물리력이 우선인 국가에선 더욱 그렇다. 게다가 공권력이 불완전·불공정한 경우 숨이 턱 막힌다고 한다. 멕시코도 그런 국가 중 하나다. 1968년 올림픽과 1970년 월드컵을 치르며 남미의 선도국가로 알려진 이 나라는 실제 속을 들여다보면 성한 곳이 별로 없다는 게 교민들 이야기다. 현지에서 물류사업으로 성공한 기업인으로 불리는 홍금표씨가 멕시코 공권력의 민낯을 고발한 이유도 거기에 있다. <아시아엔>은 멕시코 산타마르타교도소에서 20개월째 억울한 옥살이를 하고 있는 양아무개씨 사건을 이해하고 해결하는데 도움이 되길 바라며 홍금표 대표의 기고문을 4차례에 걸쳐 싣는다.-편집자

‘교도소 조정관’ 판사는 범죄집단 피고용인?

[아시아엔=홍금표 멕시코 현지 기업인] 무슨 일이 있는 걸까? 정확히 약속을 했으니 계속 기다리는 수밖에는 달리 방법이 없었다. 서로의 길이 어긋날까 봐 오후 1시까지 교도소 사무실 밖 햇볕 아래서 Córdoba의 그 습한 더위를 나는 온몸으로 감당해 내고 있었다. 그러나 그들은 끝내 나타나지 않았다.

교도소 사무실 안은 냉방이 잘 되어 있어서 시원하기 짝이 없었다. 조정관은 주위를 의식하지 않고 계속 자기 일만 하고 있었다. 한참을 서 있었더니 그래도 의자를 하나 내주며 어제 찔러 준 급행료에 대한 호의를 보였다. 오늘 오전 저쪽 변호사들과의 약속을 잘 알고 있던 늙은 조정관은 내가 방문한 까닭도 잘 알고 있을 터였다. 별안간 그는 내 귀를 의심할 말을 툭 내뱉었다. “아마 Z의 변호사들은 오지 못 할거야. 어젯밤 피살되었어.”

출근 전 조간신문에서 남자 변호사의 피살기사를 보았다는 조정관의 말을 쉽게 믿을 수가 없었다. 30분 이상 직접 얼굴을 대하며 합의서 서명과 보석금 얘기를 나눈 게 바로 하루 전인 어제였다. 게다가 그들은 조직 Z의 변호사들이다. 그들의 구역에서 감히 누가 그런 행위를 할 수 있단 말인가. 잠시 혼란스러워 하며 내가 믿으려 하지 않자 조정관은 그 지역의 사건사고만 매일 업데이트 하는 정부 사이트에 접속하였다. 살인사건만 모아 놓은 사이트는 또 따로 있었다.

그가 살해된 어젯밤 이후에도 꽤 많은 사람들이 피살된 것인지 그 기사 앞에는 벌써 10여명이 더 업데이트 되어 있었다. 컴퓨터 모니터 속의 그는 어제 본 옷차림 그대로 얼굴을 이쪽으로 하고 엎어져 있었다. 그 남자변호사라는 것을 바로 식별할 수 있었다. 검정색 Suburvan 옆에 쓰러져 술 취해 자는 듯, 난사당한 흔적도 없이 그는 자연스러운 자세로 죽어있었다. 아마 기다리고 있던 살인자에 의해 심장 부근에 두세발 맞았을 것이다. 모니터 속 사진 아래에는 간단한 설명도 곁들여 있었다.

“Z의 변호사로서 조직의 몇몇 소송 건을 담당하고 있었으며 주점에서 나온 후 차에 오르기 전 살해됐다.”

조정관은 조직의 변호사들과도 필요한 연락을 주고받는 모양이었다. 사이트에 올라와 있지 않은 Z의 여자 변호사는, 오늘 아침부터 휴대폰이 계속 꺼져있다고 하였다. 저간의 경우를 보아 틀림없이 어느 구덩이에 묻어 버렸을 것이라며 그는 무심한 어조로 지나가는 듯 말을 이었다.

그러면서 오늘은 일찍 돌아가고 내일 오전에 오면 Z쪽에서 다른 변호사가 오든지 아니면 무슨 해결방법이 제시될 수도 있을 것이라고 하였다.

말하는 분위기로 보아 최소한 이 조정관은 조직의 일원은 아닌 듯하였다. 그랬다면 나도 Z의 여자 변호사처럼 지금쯤 어느 구덩이 신세를 지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도대체 그 두 변호사는 왜 피살된 것일까. 누구에 의해 살해된 것일까. 같은 조직에서는 그럴 이유가 없지 않을까.

그렇다면 Z의 영역에서 누가 감히 그런 짓을 할 수 있을 것인가.

위험의 그림자는 나에게도 드리우고 있었다. 그런데 나는 그런 상황을 전혀 눈치도 채지 못하고 있었다. 시티로 돌아오는 그날 오후 내내 태평하게도 나는 Z 변호사들의 피살 이유에 대해서만 이런저런 추리를 해 보고 있었다.

그 다음날, 조정관과의 대화에서 모든 상황이 이해되었다. 그리고 그들 죽음의 내막이 나의 안위와도 연관되어 있음을 비로소 알게 되었다. 육체적 피로가 내 한계를 넘어서고 있었다. 한국 출장에서 돌아오자마자 왕복 10시간이나 되는 Córdoba를 벌써 이틀째 당일치기로 다녀오고 있었다.

변변히 먹지도 못하고 또 그 습하고 머리 꼭대기를 태울 듯한 직사광선과 더위는 어떤가. 시티의 집에 돌아오면 씻지도 못하고 고꾸라지듯 그대로 침대에 쓰러졌다. 새벽 4시. 알람은 울려대고 있었지만 마치 납덩어리를 팔다리 여기저기에 얹어놓은 듯 도저히 일어날 수가 없었다. 눈을 뜨고 보니 커튼 너머에는 해도 이미 떠 있었다. Z의 새로운 변호사를 만날 수 있는 시간대가 이미 한참 지나고 있었다.

아무리 악셀을 눌러 밟아도 오후 2시나 되어야 Córdoba 교도소에 도착할 것이었다. 낭패한 마음에 조바심이 일었으나 달리 방법이 없었다. 소득이 별로 없더라도 그날은 판사만이라도 만나보기로 하였다. 굳이 서두를 필요 없이 늦으막한 아침 시간에 Córdoba 교도소로 출발하였다.

내 머리는 온갖 생각으로 채워졌다. ‘Z의 변호사 피살사건으로 상황은 한층 더 불확실해질까’ ‘모든 게 다시 원점으로 돌아간 셈이다.’ ‘Z쪽에서는 어떤 변호사가 올 것인가.’ ‘내일이라도 새로운 변호사를 보게 된다면, 또다시 우리 직원들 보석금을 그쪽에서 내라고 버텨야 할 것인가.’ ‘아니면 보석금을 한푼도 깎아 주지 않는 판사를 상대로 다시 네고를 시도해야 하는가.’

하지만 어떤 결론도 내려지지 않았다.

그때였다. 옆에서 누군가 내게 속삭이는 듯했다. “이 보세요. Z는 멕시코 최대의 범죄 집단이에요. 도덕적 논리와는 전혀 상관없는 피비린내 나는 이익집단일 뿐이에요. 자신들의 이익이 침해당하는 제안을 그들이 받아들일 수 있다는 것은 참으로 순진한 계산이 아닌가요. 당신 목숨은 당신에게나 소중한 것이지 그들에겐 늘상 수시로 빼앗는 수많은 생명 중 하나에 불과한 것이에요. 당신이 어제 그들을 상대로 무슨 짓을 한 것인지 이해가 되나요?”

환청이었다. 그럴 것이었다. 정말 내가 그들을 상대로 무슨 대책 없는 짓을 한 것인가. 이제 그들을 다시 마주한다는 것은 아마도 내 목숨을 담보해야 하는 일일지도 모른다. 결국 판사와의 보석금 네고밖에는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다는 결론이었다.

판사를 만나게 되면 일단 감사 인사를 먼저 하자. 그리고 감당할 수 있는 금액으로 보석금이 재조정되기를 간청하자. 불가능하다는 얘기가 나오면 이제부터의 절차는 직원 가족들에게 맡기고 나는 철수한다고 이야기 하자. 직원 가족들이 단돈 십 원도 쉽게 만들 수 있는 처지가 아니라는 사실은 판사도 알 것이다. 실제로 내가 이 사건에서 손을 뗀다면 Z조직원들의 석방이 한없이 늦어진다는 것은 굳이 다른 설명이 필요 없지 않은가. 내가 합의를 해 주어야만 Z의 조직원 2인이 석방될 수 있는 구조이기 때문이었다. Z는 전날 피살된 조직의 변호사들을 통해서 그들이 제시한 합의서에 바로 서명이 되지 않은 이유를 알았을 것이다. 어느 가소로운 한국인이 멕시코 최대 범죄조직 Z에게 보석금을 대납하라고 한 이유가, 바로 판사가 책정한 오십만 페소, 그 거액의 보석금 때문이란 사실도 알았을 것이다.

Córdoba 교도소에 수감되어 있는 조직원들의 석방이 늦어진다면 그 책임은 Z가 볼 때 판사에게도 있을 것이고, 판사도 바보가 아닌 이상 그 사실을 너무도 잘 알고 있을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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