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금표의 멕시코통신①] 연간 2만명 피살, ‘날강도·떼강도’에 ‘속수무책’

멕시코 수도 멕시코시티 중심가 소나로사(장미구역)에서 천사탑을 바라보고 찍었다. 저녁놀과 크리스마스 꽃으로 유명한 포인세티아의 붉은색이 묘하게 어울린다. <사진 홍금표 제공>

인구 1억3000만명(세계 10위), 국토면적 1억9643만㏊(세계 13위), 미국·브라질과 함께 신대륙에서 가장 다양한 환경을 볼 수 있는 나라, 멕시코다. 아즈텍문명 후계자로 한국보다 20년, 32년 전 올림픽과 월드컵을 개최한 나라, 멕시코. 1만2000명의 교민이 거주하며, 한국과는 연간 무역량 200억달러(수출 147억달러, 수입 53억달러, 2020년 기준)로 교역국 순위 4위인 이 나라에 대해 우리가 얼마나 알고 있을까? <아시아엔>은 홍금표 판트란스 대표를 통해 멕시코의 명암과 허실을 찾아가본다. 홍 대표는 1984년 멕시코에 정착해 온 이후 물류유통업체 판트란스를 25년째 운영하고 있다. 특히 멕시코 정부의 국책사업 인프라 분야에 많은 기여를 해왔다. 멕시코 6개 정유공장의 현대화 프로젝트 물류와 특수설비 운송을 도맡아 해왔으며 멕시코시티의 다양한 루트에서 고가도로 건설에 사용된 초중량 상판의 운송에도 적극 참여해 왔다. 홍 대표는 이 과정에서 겪은 다양한 경험을 <아시아엔> 독자들과 공유할 예정이다. <편집자>

[아시아엔=홍금표 멕시코 ‘판트란스’ 대표, 민주평통자문위원 역임] 하루에도 오륙십명이 피살되는 나라가 멕시코다. 콜롬비아 마약 카르텔이 몰락한 후 멕시코가 대체 생산지 역할을 하면서 그 이권을 두고 조직간 살벌한 전쟁이 치열하다. 그들끼리 죽고 죽이고 더불어 일반인들 역시 그 틈바구니에서 무수한 희생자를 내고 있다.

거의 40년 가까운 세월을 그래도 용케, 어찌 보면 목숨을 부지해 왔다는 표현이 맞을 정도로 크고 작은 일신상의 사건이 여럿 있었다. 대부분 내가 죽었을 확률이 더 많았는데 다행히 그리되지 않았다. 초월자 그분의 절대적 은혜를 입고 있음을 나날이 더 확신하고 그저 감사할 뿐이다.

얼마 전엔 우리 회사가 참여한 ‘멕시코 마야철도 프로젝트’에서 사고가 있었다. 나의 생명과 직접 연관 있는 건은 아니지만, 우리 회사가 운송중인 기관차를 총기로 중무장한 일련의 세력들이 협박해 강제로 움직인 사건이었다.

결론은 우리 회사와 동 운송계약을 맺은 ‘V’ 국적 포워더인 ‘M’ 중개업체의 범죄적 농간이었다.

그들은 워낙에 실무 경험이 미비했다. 그러다 보니 화물이 멕시코에 도착하고도 장기간 통관을 못하고 항구 내 야드에 대기하게 되었다. 이로 인해 막대한 스토리지 비용을 비롯, 그들의 고객인 중국업체와도 납기로 인한 또 다른 문제가 발생했을 것이다. 사실 프로젝트 화물의 어설픈 물류코디는 한화로 수억원 이상의 손실을 쉽게 입히기도 한다.

이 프로젝트에서 우리 회사의 계약은 베라크루스 주 Coatzacoalcos 항구에서 약 400km 떨어진 Triunfo 현장까지 6기의 기관차를 운송하는 것이었으나 이같은 일련의 문제로 부두 내 기본 작업에만 장비를 투입했을 뿐, 하세월 기다릴 수 없어 일정기간 대기했다가 전격 철수하고 말았다.

석달 후, 그들은 간신히 통관허가를 얻었고 어찌 보면 계약기간이 이미 만료된 상황에서 우리 회사는 장비를 재투입해 운송을 시작했다. 그 무렵, 문제의 ‘M’ 중개업체는 상황이 어렵다는 이유로 대금지불을 계속 미루고 있었다. 하지만 이는 운송대금을 떼먹기 위한 사전 연극이었음을 얼마 지나지 않아 알게 되었다.

멕시코 내 특수물류 업계에서는 수금 관련 이를테면 불문율이 있다. 선수금의 수취는 당연한 것이지만 각 화물의 잔금 역시 현장 하역 전에 반드시 개별 수금해야 한다는 사실이다. 그렇지 않으면 떼일 가능성이 많고 또 미수금액이 계속 모이면 총량이 불어나 수금이 더욱 어려워지는 때문이기도 하다.

물론 단골 고객인 경우는 예외가 되지만 일반적으로 이 틀 안에서 움직이게 된다.

지난 9월 30일 늦은 밤 현장 책임자인 F로부터 한통의 휴대전화가 걸려왔다. 그는 우리 회사에서 15년 가까이 근무한 현지인으로 임기응변에 능하고 나름 회사에 기여해온 직원이었다. 얘기인 즉 바로 그 시간 지역 검찰의 무장 수사관들이 몰려와 명령서를 내밀면서 강제로 현장까지 기관차를 운송하라고 협박을 한다는 것이었다.

좀더 상황을 살펴보고 다시 보고한다 했는데 어쩐 일인지 그 이후론 일체의 연락이 없었다.

시간은 이미 자정을 넘어 10월 1일 새벽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나는 F에게 수십통의 전화를 했다. 그러나 그는 단 한번도 응답하지 않았다. 현장의 다른 직원들과도 연락이 되지 않아 뜬눈으로 밤을 새운 나는 오만가지 걱정으로 가슴이 다 타 들어갈 지경이었다.

그러던 중 오전 5시30분경 내 휴대폰이 울렸다. F로부터였는데 화물을 현장에 포지션했고, 이제 철수한다는 정말 어이없게도 간단·명료한 보고였다. 물어보니 그 옆에는 ‘M’ 포워더의 멕시코인 동업자가 있었고 나는 그 친구와 한참에 걸쳐 설전을 벌였다.

결론적으로 나는 “너희들이 저지른 행위는 형사범죄이며 우리의 대응을 기다리기 바란다”고 수차례 강조하고 전화를 끊었다.

처음에 ‘M’의 멕시코인 동업자는 우리에게 빚이 없다고 억지를 부리더니 잠시 겁을 먹었는지, “그러면 밀린 운송료를 지불하겠다”고 말을 더듬으며 머뭇거렸다. 하지만 단지 그 뿐이었다. 화물이 이미 그들 손아귀에 있는 관계로 그냥 떼먹어도 문제 없을 거라 여긴 모양이었다!!

사실 이 일이 발생하기 전 ‘M’ 포워더는, 항구에 대기하던 마지막 6번째 기관차를 우리 몰래 타 운송업체에 넘겼다. 우연히 이 사실을 알게 된 우리는 현장 약 70km 지점에서 밀린 비용의 지불을 요구하며 운송 중단이라는 극단적 방법으로 맞서고 있었다. 돈을 떼먹겠다는 의도가 명백했기 때문인데 벌써 대기 기간이 1주일이 넘어가고 있었다.

전체 6기 중 그렇게 강제 이동된 5번째 기관차를 포함 기 입고된 3번째와 4번째의 밸런스 수금이 밀려있었고, 입고하면 바로 지불하겠다는 그들의 지속적 감언이설이 효과가 없자 결국 택한 방법이 그같은 범죄수단이었다.

이후 현지 검찰에서 확인해 보니 그런 명령서는 존재하지도 않았고 무장 검찰요원들 역시 파견한 적이 없었다. 그렇다면 그들은 경호 용역회사에 소정의 비용을 지불하고 그런 무장 서비스를 몇 시간 제공 받았을 것이다. 당연히 불법이고 범죄이다. 하지만 1년에 2만명 이상 피살되는 멕시코에선 사실 이런 행위는 범죄의 축에도 끼지 못한다.

‘M’ 포워더는 적어도 우리와는 많이 남는 장사를 했을 것이다. 밀린 운송료를 갚는 대신 공권력을 빙자한 협박으로 1/20~30에 불과한 비용으로 기관차를 현장에 입고시켰으니 말이다.

그 며칠 후, 이 범죄에는 우리 회사 현장 책임자인 F의 개입이 있었음을 알게 되었다. 위기감을 느꼈는지 그는 바로 퇴사를 했다. (계속)

 멕시코 시리즈 필자, 판트랜스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