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겪은 멕시코 공권력④] 재외공관, 현지 공권력 실상 정확히 알아야 교민 보호

해외에서 사업하는 것은 국내보다 몇 갑절 힘들다고들 한다. 언어가 안 통하고 문화가 다르며 특히 법과 제도보다 물리력이 우선인 국가에선 더욱 그렇다. 게다가 공권력이 불완전·불공정한 경우 숨이 턱 막힌다고 한다. 멕시코도 그런 국가 중 하나다. 1968년 올림픽과 1970년 월드컵을 치르며 남미의 선도국가로 알려진 이 나라는 실제 속을 들여다보면 성한 곳이 별로 없다는 게 교민들 이야기다. 현지에서 물류사업으로 성공한 기업인으로 불리는 홍금표씨가 멕시코 공권력의 민낯을 고발한 이유도 거기에 있다. <아시아엔>은 멕시코 산타마르타교도소에서 20개월째 억울한 옥살이를 하고 있는 양아무개씨 사건을 이해하고 해결하는데 도움이 되길 바라며 홍금표 대표의 기고문을 4차례에 걸쳐 싣는다.-편집자

[아시아엔=홍금표 멕시코 현지 기업인] “보석금이 현실적으로 조정되지 않으면 나는 전격 철수한다.”

내가 내밀 수 있는 이 마지막 카드는 어쩌면 오늘 먹힐지도 모른다. 오후 2시가 넘어가는 시각 교도소 밖은 전날과 다름없이 무척이나 더웠고 변함없이 한가하였다. 재소자들이 1000명이나 된다는데 가족들이 면회도 안 오는 것인지 사람이라고는 여기저기 몇명씩 밖에는 보이지 않았다. 워낙에 흉악범들이라 가족들도 아예 내놓은 때문일까.

오전 내내 Z에서 보낸 사람 몇명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이미 그들은 돌아간 상태였지만 틀림없이 합의서 서명 때문이었을 것이다. 새로운 변호사 이외에도 두세명의 동행이 더 있었고 아마 그들은 내일도 올 것이라 하였다.

구덩이에 묻혔을 Z의 여변호사에 대해 말했을 때처럼 조정관은 꼭 그런 말투와 표정으로 나를 대했다.

금액의 고하를 막론하고 우리 직원들 보석금을 그들이 대납한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있을 수도,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다. 아주 쉬운 그런 문제 하나 해결하지 못하고 그 따위 대납 보고나 하는 변호사들은 Z에게는 무용지물이나 마찬가지였다. 사실 조직 변호사의 가치도 그들에겐 늘상 빼앗는 수많은 목숨들 중 하나,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모양이다. 여 변호사의 처리 방법과는 달리 Z는 그를 공개장소에서 살해함으로써 지역신문과 방송에 크게 보도되게 하였다.

그것은 그들에겐 별로 쓸모 없는 물건을 영원히 정리하는 동시에 판사와 나에게 분명한 메시지를 보내는 일석이조의 효과적 방법이었다. 판사는 그 메시지를 알아들었겠지만 나는 여전히 그저 남에게 일어난 불행한 일로 치부하며 강 건너 불구경하듯 하고 있었다. 시원한 교도소 사무실에서 조정관의 얘기를 들으며 그제서야 나는 정신이 서늘하게 들었다.

그래도 며칠 보았다고 그는 Z의 새 변호사 이외에 조직원 몇명이 오전에 동행한 이유를 생각해보라고 하였다.

그들과 마주치지 않은 것은 천만 다행이었다. 월요일과 화요일, 지난 이틀처럼 새벽에 멕시코시티에서 출발하였다면 그날 오전 나는 그들과 Córdoba 교도소에서 조우하였을 것이다. 그들은 나에게서 쉽사리 합의 서명을 받아 내었을 것이며 나는 Z의 교체된 변호사와 동행한 조직원들에 의해 아마 다른 곳으로 옮겨졌을 것이다. 그리고는 감히 그들에게 저항한 대가로, Z의 변호사를 제거한 유사한 방법이 나에게도 적용되었을 것이다.

내가 보이지 않자 그들의 새 변호사는 결국 판사를 만났다. 판사는 월요일 밤 Z의 변호사가 살해된 사실과 그 주체와 의미도 충분히 이해하고 있었을 것이다. 면담신청도 하기 전인데 판사가 나를 찾고 있었다. 나는 준비한 시나리오를 복기하며 그 늙은 판사와 치를 최후의 일전을 머릿속에 그려보고 있었다. 최대한 침착하고 자연스러워야 할 것이었다.

각오를 단단히 하고 그의 방에 들어갔으나 상황은 아주 싱겁게 정리되었다. 굳이 마지막 카드를 내보일 필요도 없었다. 판사는 당황한 표정이 역력했으며 한편 겁에 질려 있었다. 나에게 먼저 겨누어졌던 Z의 칼끝이 그날 오전 나의 부재로 이미 판사에게로 향한 까닭이었다.

판사는 나에게서 합의서를 받아 최대한 빨리 Z의 조직원 2인을 방면하고자 하였다. 그러기 위하여는 우리 직원들 역시 신속히 석방되는 절차를 밟아야 내가 합의를 하여줄 것이었다.

이윽고 판사의 비서는 해당 정보를 나에게서 받아 직원들 석방에 필요한 서류의 빈칸을 정신 없이 채워가기 시작했다. 이제 지불해야 할 보석금이 남아 있었다. 판사의 입에서는 재차 확인할 수밖에 없는 아주 저렴한 금액이 튀어 나왔다. 직원 2인의 보석금은 1만페소(당시 한화 약 80만원)로 내가 그 즉시 지불 가능한 금액이었다.

이미 은행 마감시간이 지나고 있었으므로 판사는 직접 현찰을 받아 그 다음날 은행에 지불하고 영수증을 첨부하겠다고 하였다. 혹시 며칠 전 판사가 책정한 50만페소(한화 약 4000만원)를 현찰로 지불하였다고 가정하면 교활한 판사는 49만 페소를 착복하고 나머지 1만페소만 보석금으로 납부하였을 것이다. 50분의 1로 보석금을 낮추면서도 그는 전혀 부끄럼이 없었다.

아주 고귀한 스스로의 목숨을 건지기 위하여 최선을 다하고 있을 따름이었다. 그날 오후 나는 직원 2명의 석방에 필요한 모든 수속과 비용 처리를 판사의 적극적인 도움으로 신속히 마무리했다.

문제의 합의서 역시 판사 앞에서 일필휘지로 서명하였다.

이제 더 이상 내가 할 일은 없었고 빨리 거기서 벗어나기만 하면 되었다. 교도소를 뒤로 하고 나는 한없이 펼쳐진 옥수수밭 사이 협소한 도로를 전속력으로 질주하기 시작하였다. 어둑한 옥수수밭 이랑 사이로 불쑥불쑥 Z의 킬러들이 튀어나올 것만 같았다.

고속도로 진입로까지 20분도 채 안 되는 거의 일직선 국도는 마치 출구 없는 거대한 미로인 듯 가도 가도 끝이 없었다. 시티로 향하는 고속도로에 접어들었다. 아직 해가 있었고 저 오른편 위에는 피코 데 오리사바(Pico de Orizaba)의 만년설이 황혼의 노을빛으로 불타고 있었다.

그날 밤 9시 좀 지나 직원들은 전격 석방되었고 경호회사 직원 2인은 다음날 오전 Z의 조직원 2인과 함께 석방되었다.

그 수요일 오전, 나는 Z의 새로운 변호사를 꼭 만나고 싶었다. 그를 만나야 빠른 해결이 가능할 것 같았다. 그러나 내 의도와는 반대로 만날 수가 없었다. 출장의 여독과 며칠 동안의 정신·육체적 피로로 Córdoba 교도소 도착이 몇 시간 지체된 때문이었다. 그날 오전 그를 만났더라면 난 이미 저 세상 신세를 지고 있을 것이다. 원했던 그와의 조우가 이루어 지지 않아 결과적으로 나는 살아있게 되었고 예기치 않게 직원들도 수월히 석방된 선물을 덤으로 얻었다.(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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